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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인류리셋음모에 관한 보고서(제19회)

by 허슬똑띠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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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하는 급성노화와 불임증 2

 

밤이 되어도 집으로 가지 못한 채 두 사람은 병원에서 간단히 식사를 끝낸 뒤 휴게실로 가 소파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두 사람 모두 불임치료 전문의였다. 그동안 일과 연구에 매달리면서 아이를 갖는 것을 미뤄두었었는데 기껏 애를 갖자고 의견합치를 보자마자 이런 일이 터진 거였다. 커다란 TV 화면에서는 끊임없이 불임을 동반한 급성 노화증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각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들은 매번 그랬듯이 슬픔을 달리 표현한 씁쓰레한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절대 절망하지말자는 암묵적인 결연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기는 했지만.  두사람 역시 불임이 된 상태이기는 한데 다행인지 몰라도 급성 노화만은 예외였다. 그러자 정부기관이 요청해와 한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신체 전체를 완전 스캔하여 꼼꼼하게 분석해서 그들에세 존재할지도 모를 노화 억제요소를 찾아내려했으나 실패했다.

 

TV에는 이어서 이러한 병이 유행하기 전에 채취하여 둔 정자와 난자를 냉동 보관했던 설비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느 것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에는 전원공급 장치가 망가져있었다. 스크린은 그 내부를 비추고 있는데 내용물은 모조리 상하여 엉망인 모습이었다. 여기 오버랩 되어 리포터가 나타났다. 문제는 이런 공격에서 벗어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곧이어 아나운서가 등장하여 냉동보관중인 정자와 난자를 파괴한 범인을 찾아내는 데 총력을 기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을 잡으면 파괴이유와 나아가 치유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라고 했다. 그들도 그런 희망을 가지고 진찰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들리는 소식은 완전 절망적인 것뿐이었다. 라온은 그런 피곤한 소리가 귓전에 맴돌 때마다 공연한 짜증으로 무능한 정부들에게 내뱉는 말이 습관화 되어 버렸다.

'에구 그 인간쓰레기들을 찾는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면 뭐하누. 시간만 아깝지. 차라리 멀쩡한 냉동정자나 난자를 찾으라고!'

 

다른 뉴스는 아예 취급을 하지 않고 노화와 불임에 관련된 보도만 계속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집에서나 병원에서 숨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추었다가 시체 안치소, 그리고 화장장의 모습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이곳을 빈틈없이 메운 관들과 이를 다루는 나이든 사람들의 피곤에 찌든 모습도 이어졌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오버랩 되면서 방영되었다. 여기에 리포터의 멘트가 덧붙여졌다.

‘노화로 인한 주검이 제때에 처리되지 못 할 정도로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반면 사람들의 숫자는 이에 반비례하여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처절한 상황입니다. 로봇들의 지원을 받아도 일손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리포터가 사라지고 각 병원들의 텅 빈 신생아실이 나타나면서 인구구성 대비표가 그려졌다. 1년 사이 1세 이하의 인구는 전무하고 60세 이상의 인구가 30%나 감소했다. 화면과 함께 리포터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신생아의 탄생은 없고 급격히 노화되어 사망하는 인구는 늘어남으로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와 함께 그나마 남아있던 청년층의 숫자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어 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갈수록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세간에는 차라리 핵폭탄을 일거에 터뜨려 모두 함께 자멸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조소처럼 떠다닌다고 하기도 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벌어질 레야 벌어질 수가 없을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많은 핵무기나 기타 생화학무기들 역시 냉동정자나 난자처럼 누군가 의해 작동불능이거나 아예 완전히 결단 난 상태였다. 나아가 관련한 생산시설 역시 단시일 내에 회복불가능 할 정도로 산산조각 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라온과 폴라는 가공할 각종 무기들의 파괴, 정자와 난자의 유실행위는 급성 노화와 불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거대한 음모에 의해 제2 노아의 방주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간접 증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사람만의 추측일 뿐이었고 이런 생각도 잠시였다. 모든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이라든가 의심스럽게 여겨지는 지구상의 모든 기기들을 살펴보았으나 불임과 속성노화를 촉발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급성 노화와 불임 현상은 우연하게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연결 지을만한 것은 어지러울 정도로 더럽혀지고 있는 지구환경 탓이었다. 이는 현재 만연하고 있는 치명적인 병을 유발하는 변형 바이러스 생성의 원인도 제공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다만 핵무기 등을 파괴한 목적은 의문으로 남았다. 연일 별로 쉴 틈도 없이 끊임없는 진찰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종 판단을 내렸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종말을 이대로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만 급성노화를 벗어나게 해준 그 누군가의 아마도 신이겠지만 무언의 지시를 어기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쳤던 것이다. 꼭 그들의 자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러고 싶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들도 불임이었으므로. 따라서 다른 사람이 남겨둔 정자와 난자라도 찾을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인류의 핏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견을 폴라에게 말하니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로 두사람은 병원을 떠났다. 수많은 환자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치유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장난 같은 진찰놀음은 전혀 의미가 없기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단단히 떠날 채비를 했다. 튼튼한 신형 지프차에 탐색을 위한 장비들과 관련정보를 담은 컴퓨터기기 등을 실었다. 굳은 의지로 단단히 무장하고 나서 냉동정자와 난자가 완벽하게 보관되어 있을지 모를 곳을 찾아 길을 떠났다. 빠짐없이 수록한, 이것들을 보관하고 있던 시설의 소재지를 꼼꼼히 확인하면서 낱낱이 찾아 다녔다. 엔간한 도시들은 차츰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거리는 을씨년스럽기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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