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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인류리셋음모에 관한 보고서(제20회)

by 허슬똑띠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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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맥을 잇게 하려는 피나는 노력

 

이러다보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여 찾아간 지역 역시 상당부분이 폐허로 변해있었고 사람들의 돌봄도 끊겨 점차 자연으로 회귀하려 준비 중이었다. 다행히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더라도 냉동보관소에 들어가는 입구는 무참하게 망가져있었기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폴라가 특별히 고안해낸 생체 인식기로 샅샅이 수색해볼 수는 있었다. 실망의 연속이었다. 절망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스멀스멀 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년 내내의 지난한 탐사도 헛되어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무정한 세월은 덧없이 흘렀다.

그날도 두 사람은 소득 없는 발걸음을 끝내고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낡아빠진 건물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잡동사니들만 그득 쌓여있었다. 어째든 변함없이 화창하게 내리 비추는 햇빛을 받고 있는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다른 도시와 그다지 달라 보이는 모습은 없었다. 옥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서로를 바라보던 두사람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따사한 햇볕만이 그들을 위안해주었다. 이때 멀리 흐느적거리며 이 건물 방향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노화로 인하여 육신이 낡을 대로 낡아 염라대왕의 사자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비참한 광경이었기에 그가 두사람을 찾으리라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없었다. 그는 두사람이 보일 정도의 위치에 서더니 뜻밖에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순간 폴라가 무슨 영감을 받은 듯 저 사람으로부터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속살거리는 바람에 불쑥 일어섰다. 라온은 즉시 폴라의 손을 잡고 냅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건물을 나와 입구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무표정하게 두사람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유라온씨와 폴라리스 스텔라씨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사유를 물어보려하자 고개만 끄덕이더니 말없이 뒤돌아서서 그들보고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가자 아까 보았던 고급주택가의 입구가 나타났다. 그는 주택가에 들어선 이후에도 꽤 걸어갔다. 간간히 나이가 무척이나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지나치거나 집에서 짐을 가지고 나와 차에 싫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기운도 없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로 그들이 있던 건물까지 힘들여 왔는지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그러던 차에 아직은 깔끔하게 보전되어 있는, 주위의 집들보다 훨씬 큰 저택이 나타났다. 그는 대문 앞에 섰다. 대문 너머로 넓은 정원이 보였다. 가쁜 숨을 내쉬던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작은 리모컨을 꺼냈다. 스위치를 누르자 대문이 열렸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예전에는 잘 가꾸었을 정원인데 여기저기 심어져있는 꽃들은 시들시들했고 잔디밭에는 잡초들만 무성했다. 정원을 지나 웅장한 건물 앞에 도달했다.

저택의 문으로 올라가는 바로 옆 계단에는 고급승용차가 세워져있음에도 그가 힘들어하면서도 걸어왔었던 것은 아마도 운전할 기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한편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웅장한 저택내부의 시설에 감탄 하면서 그의 안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5층까지 내려갔다. 문이 열려 내린 곳에는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가 좌측 벽면에 붙어있는 키보드의 번호판을 소리 내어 눌렀다. 라온은 재빨리 그 번호를 머릿속에 입력시켜두었다. 문이 열려 내부로 들어가 그가 멈추어 가리키는 육중한 설비를 바라본 두 사람은 저절로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예감이 맞아 놀라서라기보다는 그들이 찾아 헤매던 바로 그것이 거기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만들어진 개인 냉장시설이었다. 냉장시설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며 살펴보았는데 기술적으로도 완벽했을 뿐더러 이상 없이 작동도 잘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욕심이 잘못되었음을 사죄했다. 사실 두 사람이 그의 사죄를 받아드릴 까닭이 없었지만 고개를 숙여 이에 답했다.

실제 그의 나이는 40세였는데 날 때부터 성불구였다. 그래도 화려한 가문의 힘 덕분에 결혼한 후에 만약에 대비해 해서 부인의 난자를 냉동 보관해두었다고 했다. 그가 나이가 들어서라도 치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서라고 했다. 그는 부모의 지원으로 집안에 이 설비를 갖추었다. 비록 씨 없는 수박과도 같던 그였지만 그의 아내와 행복한 생활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내는 해외의 친척을 만나고 오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그의 부모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게 변하고 자신의 상태도 달라진 것이 없자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옴이 느껴지자 특이하게 급성노화를 면한 폴라와 라온이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두 사람이 불임증도 예외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두사람이 결코 늙지 않을 것으로 여겨져 그들에게 이를 넘기기로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의 마음이 변할지도 몰라 그렇다고 말했다. 절망의 바다에 떠다니다가 반쪽희망의 방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젠 멀쩡한 정자만 찾으면 되었기에 그에게 이곳을 완벽하게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하려하는데 돌연 흐느적거리더니 두 사람이 그를 잡을 새도 없이 쓰러졌다. 바닥에 누운 그의 목에 손을 대보았으나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 잠시 고개 숙여 그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하고 이것을 활용할 방도를 생각해보았다. 문제는 정자였다. 그래도 이집이 향후 새로 탄생하게 될 인류의 보금자리로 삼기에 적절할 뿐만 아니라 다른 유용한 시설도 갖추어져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집안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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