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스텔라의 죽음
이후 두 사람은 다시 정자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한 끝에 한 병원에서 멀쩡하게 보관되어있는 냉장시설을 발견했다. 둘은 얼싸안고 환호를 질렀다. 이들을 난자가 있는 곳까지 옮기는 것이 급선무였다.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데 군복을 입은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직 젊어 보였다. 라온의사와 스텔라의사냐고 묻더니 도와줄게 있는가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다소 의심이 들었으나 군인답지 않게 상당히 싹싹하게 굴어 믿기로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한명이 냉장차를 준비하겠다며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과 함께 냉장시설에서 정자가 실린 박스를 꺼내왔다. 냉장시설차가 있을 까닭이 없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급한 마음에 앞뒤가리지 않고 난자가 있는 것으로 내달렸다. 그곳에 도착하여 시설로 들어선 순간 그들은 두 사람을 포박하여 밖으로 끌어내렸다. 도와준 감사의 마음으로 두 사람 다 스스로 늙어죽도록 해주겠노라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는 늦으리였다. 밖에서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추론해보았다. 그들은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정상정자와 난자를 찾아 파괴하는 임무를 맡은 이 팬데믹의 주범 하수인들임이 틀림없었다. 얼마 후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그들의 희망도 사라졌다.
섬광이 일어나는 순간 안돼 하며 라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폴라가 놀라 뒤따라 일어나며 그를 부축했다. 라온은 침실임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축 내 쉬었다. 폴라는 그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짐작한다는 듯 음료수 한잔을 가져다주며 이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라온은 이 꿈을 꾸고 난 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 며칠 동안 침대에 꼼짝달싹 못하고 누어있었다. 냉동난자와 정자가 파괴되어 그런 걸까? 라온은 비몽사몽간에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수심에 가득 찬 폴라가 정성껏 그를 간호했다. 라온은 논물이 고인 그녀의 얼굴을 힘들게 어루만지며 곧 좋아질 것이니 안심하라고 했다.폴라는 자신의 초능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며 기어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의 눈물이 라온의 얼굴을 적시었다. 이것이 기적을 일으켰을까? 몽롱했던 정신이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기억이 떠올랐다. ‘챌린지 원 투 쓰리’ 라는 영화의 내용이었다. 우연히 그것을 보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었다.
그 영화에서 나오는 젊은 남녀의 스타일을 되새겨보았다. 그들은 도둑이었으나 그저 그렇고 그런 도둑이 아닌 과학기술능력으로 무장하였으며 갖가지 현대적 기술 장치를 갖춘 동굴 속에 비밀 기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기술로 만든 기기들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는 미스터리 하면서도 환상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는 어릴 적 그 영화를 보고 자신도 그들을 따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으나 영화와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큰 점을 인식하고난 뒤로는 그런 생각을 잊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챌린지에서 나온 여자주인공처럼 자신에게도 그 여주인공보다도 더욱 특별한 여주인공인 폴라가 나타남으로써 영화가 현실화 되려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는 폴라와 더불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하면서도 지구 자체를 훔치는 대도 그 이상의 대도가 될 예정이다. 그동안 인지상정 때문에 무척이나 고민했으나 폴라를 너무 믿었고 그녀에 대한 사랑도 넘치고 넘쳐흘렀다. 더구나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일가친척도 거의 없는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폴라요 다음으로는 세 아이들이란 점에 방점이 찍혔다. 한번 이런 생각이 들자 폴라의 계획에 대한 믿음은 더 굳어져갔다. 가끔 두 사람의 자손들이 지배하게 될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떠올리며 흥분도 되었다. 라온은 벌떡 일어섰다
라온의 확고한 결심을 들은 폴라는 이제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겠다면서 이것들을 위해서 전에 말했던 난파 외계우주선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라온은 집에서 현재 작동되고 있는 기기들을 관리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침입에 대비하기로 했다. 폴라가 떠나고 난 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녀를 홀로 보낸 것이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불길한 예감이 맞아 떨어졌을까.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폴라는 예전의 상태와 다소 달랐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필요한 기술을 챙긴 뒤에 빠져나오는 순간 흙가루와 모래가루를 동반한 광풍이 그녀를 덮쳤다는 것이다. 급하게 우주선이 있는 동굴 안으로 피신했다가 폭풍이 지난 뒤 나왔을 때만 해도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라온은 폴라에게 진찰을 받아보자고 했으나 폴라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아진 듯해서 안심하고 넘어가버렸다.
폴라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실행의 순간이 숨 가쁘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드는 상황이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서재에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쓰러졌다. 라온은 놀라 그녀의 상체를 들고 얼굴을 관찰했다. 핏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라온이 긴급전화를 하려하자 그녀는 이미 가망이 없으니 그냥 두라고 했다. 라온은 안 된다고 고집하자 휴대폰을 잡은 그의 손을 잡고 신음하면서 우주선에 갔다가 만난 광풍 속에 자기에게 치명적인 미세한 금속물질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라온을 만나 지낸 날들이 너무 행복했노라면서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자기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더라도 자기에 대한 사랑은 절대 버리지 말아달라고 하며 애원하였다. 그러면서 힘겹게 진실이 담긴 홀로그램을 보라고 하였다. 무슨 말을 하느냐고 울부짖는 라온을 올려다보며 자기를 위해 울지 말라는 한마디를 남겨 놓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안 돼!”
라온이 울부짖으며 그녀를 품안에 꼭 껴안을 때 방문이 왈칵 열렸다. 아이들이 ‘엄마 안 돼!’ 라고 소리 지르며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순간 뿌옇게 안개가 이는 듯하더니 폴라의 모습이 그 속으로 빨려들 듯 모습이 희미해져갔다.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안개 속으로 모두 뛰어들었는데 폴라가 이승을 떠나면서 아이들을 데려갔는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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