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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로즈파피(Rosepoppy) 다시보기(10회~12회)

by 허슬똑띠 202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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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베이(Rosebay)와 양귀비(Poppy)의 특성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

 

 

그는 살길이 생겼구나 싶어 뭐든 말만하라면서 재촉했다. 가람은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해가면서 연습했던 각본대로 둘러댔다.

“마약 사범 거물을 뒤밟다보니 30여 년 전 광주시에서 일어났었던 교통사고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소. 그것은 일상적인 사고가 아니고, 보스를 살해하기 위해 사고로 위장했던 거였소. 중요한 것은 옛날 당신차가 다른 데도 아니고 그 사고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요. 게다가 차에다 마약까지 소지하고 다니는 것을 보니 당신이 그 일을 주도했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드러난 셈이란 말이오.”

그러자 공봉춘은 펄쩍 뛰었다.

“난 마약의 마자도 모르고 당시 그곳에 간 적도 없어요, 절대로!“

“허어! 이러지 맙시다. 솔직히 털어놓기만 하면 눈 감아 줄 수 있다고 했잖아요!”

가람은 강온을 조절하며 그를 달랬다. 그러자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그 때 고년이 수상하다 했더니만 나를 물 먹이려고 작정했었나 보구나, 이년이…“

“이거 참… 비 맞은 중놈처럼 쭝얼거리지 말고 다 털어놔 보란 말이요!”

가람이 언성을 높이자 화들짝 놀랐다가 옛날을 더듬어 올라갔다.

 

“언젠가 딱 한 번 조카가 차를 빌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 날이 아닌가 싶네요. 그년이 그곳에 갔었으니 내차가 거기에 있었겠지요?”

“조카 이름이 뭔데요?”

“남민희라고, 거 있잖아요. 에오슨지 뭔지 하는 회사에 떡하니 회장으로 앉아있는 그 여자 말입니다.”

“남? 뭐라고요?”

드디어 남민희라는 이름이 튀어나왔으나 가람은 짐짓 딴청을 부렸다.

“그럼 남민희라는 조카가 그런 일을 벌였단 겁니까?”남민희라는 이름이 자꾸 거론되자 그는 쌍심지를 돋우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민희 고년은 정말 못돼 먹은 계집년입니다. 지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면서도 지 일만 딱 챙기고는 남보다도 더 모른 척했어요. 그년이 어릴 적부터 그러긴 했는데, 글쎄 요따위 일도 있었습니다. 집에 화재가 나서 의붓아버지가 타죽고 난 뒤에 말입니다, 아 글쎄 나중에 알고 보니 눈깔 뒤집히게 무지막지한 보험금을 타먹었었더라고요.

분명 요망스런 꽁수를 썼겠지요? 후후 참 웃기는 일이죠? 의붓아버지 재산이 졸지에 그년에게 홀라당 가버리고 말았으니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입니까?”

그는 눈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다른 곳으로 훌쩍 이사 가더라고요. 그건 좋은 데 새 집에 이사 가고 나서 누님이 느닷없이 병으로 쓰러지더니 몇 개월 버티지 못하더라고요. 그 때도 고년은 제 어미 병간호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았더랬습니다. 저게 자식인가 싶어 한 소리 했지만 귓구멍이 막혔는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디다. 화가 치밀어 올랐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이 말에서 그녀의 또 다른 성품을 알아낸 셈이었으나 늘어지는 말이 가람의 조급증을 증폭시켰다. 빨리 나머지 것들을 꺼내도록 재촉했다.

“참 못되게 굴었군요. 다시 핵심으로 돌아갑시다.”

“맞아요. 바로 그날이었을 겁니다. 차를 빌려갔던 고년이 난데없이 2살짜리 어린 애를 데려왔었으니 여지없을 겁니다. 이년이 그것도 모자라 맡아달라는 거지 뭡니까. 돈은 주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는 어처구니없었다는 듯 또 인상을 썼다.

“고년은 워낙 반반해서 사내자식들이 졸졸 따라다녔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놈팡이하고 일을 저지르고 애까지 낳았을 거라고요. 차를 빌려갔던 건 어디서 남모르게 낳은 아이를 키우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 가지고 데려오려 그랬던 거겠지 하고 말았지요. 그땐 이런 요상한 일 때문이란 걸 어이 알았겠습니까. 어쨌거나 애를 데려온 게 진짜 그거하고 상관이 있는 건가요?”

 

그는 이 말을 해놓고 아차 하는 듯 했다. 공연히 잘못했다가는 조카에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 모양이었다. 그녀의 성격이나 사회적 지위로 봐서 그럴 만도 했다. 가람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기막힌 연극을 통하여 당일 남민희가 외삼촌 차를 빌려서 그곳에 갔었던 사실과 덤으로 그녀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었다는 것까지 밝혀냈다. 공봉춘은 남민희가 직접 사고 장소에 갔었던 것은 생판 모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잇따른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수시로 찾아와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는 했는데 차가운 성격답지 않게 매우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나자 이제부터는 손수 키우겠다면서 그 아이를 데려갔는데 아마도 그녀에게 입적시켰을 것이라고 했다. 진상은 거의 다 밝혀진 셈이다. 가람은 잘못 짚은 것 같은데 라고 부러 난감해 하는 척하다가 죄를 덮어준다면서 그를 보냈다.

 

마고도는 가람이 자신들보다 한 수 위의 방법을 쓴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엔 수사관 흉내를 냈던데...”

“남정균사장신상에 관련된 건이라 기자라고 하면 있는 그대로 말을 하지 않을 거라 판단해서 그랬습니다.”

가람은 죄송하다며 변명했다. 이 경위와 오 경사가 조사한 내용가 대부분 일치했으나 이번에는 가람으로부터 유의미한 정보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공봉춘을 찾아냈는가 물었더니 역시 취재원 보호명목으로 공봉춘을 알려 준 사람신상은 비밀로 했다.

“그 아이가 제갈사장의 교통사고 당시 찾지 못했던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미고도의 날카로운 질문에 가람은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제가 남회장 사건을 취재하다가 남회장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나름 추리해보았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흥미로울 것 같아 마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이름으로 검색해서 나온 사건들 중 맨 처음 건은 의붓아버지의 화재로 인한 사망이었다.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해 보인다. 의붓아버지의 생명보험 가입, 집을 화재 보험에 가입한 것까지는 그녀가 보험사에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보험금의 수혜자가 어머니도 아닌 그녀였던 점이다. 그러나 경찰수사결과 화재사고에 별 다른 특이점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하므로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다음 그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선계윤실종사건이다.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었어도 그녀는 나름 큰돈을 모아두었다. 보험회사에 입사한 뒤 주식에 눈을 뜬 이후 의붓아버지 사망과 집의 화재로 챙긴 보험금으로 과감히 투자했다. 영리하기도 한데다가 투자 감각이 남달랐고 운도 기막히게 따라주어 단 기간에 어지간히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곧이어 부동산으로 갈아타고 난 뒤에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으로 가만히 있어도 자산은 끊이지 않고 불어갔다. 미래를 위한 또 다른 계획에 들어갔다.

 

보험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선배로부터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부자들의 신상을 파악했다. 그 정보를 통해 한 갑부를 찍어 그의 신상명세를 확인한 다음 인턴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아들 선계윤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고혹적인 체향으로 그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여 사귀게 되었고 아주 깊은 관계로 발전하였다. 당초 선계윤과 결혼하면 그를 뒷받침해서 개인병원으로부터 출발해 종합병원으로 키워나가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녀의 꿈이 허황된 것만도 아니었으리라. 선계윤의 병원개업에 소요되는 자금은 충분했을 테고 그때껏 발휘했던 투자 수완을 감안한다면 종국에는 그녀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도 남았으리라. 필경 그보다 더한 야심도 지녔을 법했다.

 

스탕달은 ‘아름답다는 것은 바로 행복의 약속이다’라고 갈파했다.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특출한 미모에다가 금상첨화 격으로 이를 최대한 활용할 줄도 아는 명석한 두뇌까지 지녔으니 그야말로 필요충분조건의 무기를 지닌 셈이었다. 선계윤에게는 그러한 그녀의 꿈이 도리어 독이 되지 않았나 보였다. 제어하기 어려운 그녀가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애시 당초 그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서 즐기는데 이용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임신하자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아이를 떼어내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녀를 멀리했다. 자신만만했던 그녀는 뜻하지 않은 선계윤의 이와 같은 태도에 이글거리는 증오의 불길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끝내 혼자서 아이를 떼어내고 그와 완전히 결별할 모종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이는 깊은 밤 깊은 곳이라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프랑스 처녀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파리로 입성한 한 미군병사와 사랑하다가 임신하였으나 그 미군이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떠나가자 그녀는 증오심에 불타 혼자서 아이를 떼어낸다. 그후 그녀는 미모를 이용하여 대부호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부호의 개인비행기조종사가 옛날 자신을 버린 미군병사였다.

 

오비이락일까? 선계윤이 실종된다. 경찰수사를 기반으로 한 어느 신문기사는

그와 사귀고 있었던 남민희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았다고 했다. 갑자기 휴가를 냈었으나 그 기간 한 번도 집에서 외출하지 않았음이 증명됨으로써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이외에 그녀의 집안을 수색해보아도 선계윤과 관련된 물증은 일절 나오지 않아 무혐의로 끝났다. 그 뒤로 수사는 답보를 거듭하다 흐지부지되어 사건은 미궁에 빠진 셈이라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이것만으로 본다면 일견 하자가 없는 듯 했지만 가람은 그녀가 실종사건에서 백퍼센트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보았다. 수사기록에 선계윤에게 살의를 품을 만한 인물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해서였다. 집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가장 쉽게 집으로 그를 유인할 수 있었던 남민희가 여전히 유력한 용의자로 남는다. 더구나 그녀는 혼자 살고 있었다. 지나친 처사일지 모르겠으나 그녀가 선계윤을 살해했다는 기본가설을 세웠다. 그녀로 하여금 선계윤을 살해하도록 만든 확실하고도 유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그녀가 어떤 수법으로 그를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었을 가에 대해 추리해보았다.

 

일단 누구의 눈에도 띠지 않게 선계윤을 집으로 유인한다. 이어서 독이 든 음식 나부랭이로 간단히 살해한다. 관건은 사체처분이다. 선계윤이 한동안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실종신고가 접수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되기까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꼼짝하지 않고도 그의 자취를 물샐틈없이 지워버리는 모순을 어떻게 구상해냈을까? 가람은 비행기 바퀴에 대한 모순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비행기 이착륙 시에는 바퀴가 있어야 하는데 공기저항을 줄이려면 바퀴가 없어야 된다.’ 이게 바로 모순이었다.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는데도 시간 좀 걸렸더랬다. 이착륙할 적에 사용하던 바퀴를 비행할 땐 동체 안으로 쏙 집어넣으면 그만이었던 것을 말이다. 그 여자는 교활하기 그지없고 두뇌회전도 기막히게 빠르다고 했으니 이런 역발상으로 엽기적인 방안을 강구해냈을 것이라 추측된다. 국내 추리작가가 쓴 수출살인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외국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본모델을 관찰하던 어느 수사관은 그게 인조모조품이 아님을 느낀다. 한쪽 다리뼈에 거의 드러나지 않은 실금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또 한 가지 확인한 것은 그것이 국내에서 제조되어 수출된 상품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그것을 구입하여 국내로 들어와서 수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멀리 않은 과거에 실종되어 찾지 못한 여인을 주목한다. 결국 그녀와 사귀던 남자의 주변을 추적하다가 그가 범인임을 밝혀낸다는 줄거리였다. 그녀는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대단합니다. 상당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기자의 추리대로라면 남회장이 범죄피해자이기 전에 범죄자이겠군요. 이 추리가 완벽하다면 남회장을 살해할 의도를 품은 용의자도 추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마고도는 살짝 박수를 치며 가람을 추켜세웠다.

“정영길씨 건은 어떻게 보았나요? 외견 상 그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정황은 희박한 것 같은데...”

마고도는 기대감 섞인 표정으로 가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체 없이 가람은 추리를 이어나갔다. 경찰수사에는 그가 출장을 가면서 데리고 간 애인을 호텔 객실에서 마시던 술병으로 머리를 쳐 즉사케 한 것으로 돼있다. 범행시각은 새벽이었으나 아침에 비서가 전화하자 그 시각 일어난 것처럼 신고했다. 정회장 본인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발뺌했으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완벽한 현행범이었다. 사람이란 치솟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사회적 지위를 망각하고 부지불식간에 상상외의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을 참작한다면 그럴 만 할 수도 있었다. 허지만 살해된 여인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은 주목하지 않는 듯 하다. 정영길과 남민희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고 들었다. 현 남정균 회장은 정영길 사망 후 그녀가 외삼촌에게서 입양했던 아들이니 당시까지는 무자식이었다. 만에 하나 그 여인이 아이를 낳는다면 남민희는 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지 않을까? 즉, 석녀라는 꼬투리를 잡혀 이혼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다. 그녀가 만만히 물러서지는 않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자칫하면 그녀가 꿈꿔왔던 것이 일시에 엉망으로 틀어지게 될 수도 있다.

 

임신이라는 사실은 범죄를 꾸미게 만드는 충분한 빌미가 된다. ‘범죄를 통해 얻게 될 기대효용이 합법적인 대안활동으로 얻게 될 효용보다 클 때 범죄는 발생한다.’ 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의 말을 적용해보자. 범죄를 통한 임신의 해소는 다른 어떤 대안보다 훨씬 더 큰 기대효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있을 터이다. 어제의 동지가 철천지원수로 변모됐다. 이번엔 간접살해를 획책했을 것으로 보았다. 전문가를 고용하여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 속에 정영길을 처박았을 것이고 결국 정영길의 종말과 임신의 해소라는 두 가지 소기의 성과를 얻어냈을 것이다. 덧붙여 가람은 사건 당시 남민희의 심리상태를 나름대로 그려낸다. 이른 아침 남민희가 전신타월을 걸치고 막 욕실을 나온다. 음악을 틀어놓고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보며 큼지막한 솔로 머리손질을 하기 시작한다. 음울한 팝송곡이 실내를 짓누르고 있었으나 도리어 그 곡에 맞춰 콧소리를 낸다. 손질이 끝나자 그녀는 벌떡 일어선다. 그 바람에 타월이 흘러내리며 미끈한 알몸이 드러난다. 그녀는 비너스 조각상처럼 유혹 그 자체이다. 거기에 도취된 듯 거울에 전신을 비추어보면서 중얼거린다.

‘흥! 내가 애를 못 낳는다고 다른 년한테서 애를 낳아 데려오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지. 끝까지 데리고 이끌어 나가려 했더니 그런 식으로 나를 배반했다 이거지?’

누구든 그녀의 약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배어있다. 이어서 몇 번이나 되 뇌인다.

‘이젠 때가 되었어!’

마침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정영길이 살인을 저질러 경찰신문을 받고 있다는

비서실 직원의 다급한 통보다.

 

“하하하~ 제기자는 소설을 그것도 추리소설을 쓰면 꽤나 히트를 칠 것 같네요. 논리도 아주 근사해요. 특히 ‘범죄를 통해 얻게 될 기대효용이 합법적인 대안활동으로 얻게 될 효용보다 클 때 범죄는 발생한다.’라는 범죄심리학적 문구도 아주 적절했습니다.”

“하찮은 추리를 칭찬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조용진이 죽은 것도 단순한 식중독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것도 남회장의 소행으로 볼 만한 근거가 있나요?”

“제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조용진이 회사로 가끔 전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남화징앞으로요. 당연히 비서실에서 연결을 해주지 않았겠지요.

먼저 그가 남회장에게 전화를 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30여년 전 한 회사에서 근무했었다고 해도 강산이 수차례 변한 지금에는 격이 엄청나게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조용진이 아무리 바보라도 해도 그걸 생판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면 두 사람 사이에는 해결되지 않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조용진의 전화가 비서실에서 차단되었지만 여러 번 오다보니 아마 비서실에서 남사장에게 직보하지 않았을까요? 남회장에게 직접 말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남사장을 통해 남회장에게 그 야기가 들어갔겠지요.”

“흠~ 흥미로운 추리입니다. 혹시 두 사람 사이 숨겨진 비밀을 밝혀냈나요?”

“아닙니다. 순전히 제 뇌피셜입니다.”

 

가람은 계속 그의 추리를 이어갔다. 남정균을 통해 조용진이 전화했었다는 말을 듣고 난 남회장은 그를 달랠 방법을 구상했을 것이다. 그러던 참에 바이오부문의 개발 계획을 보고하던 연구소장이 말이 떠올랐다. 보톡스를 만들어 내는 균에서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그 균은 바로 상한 식품에서 흔히 생성되는 보툴리누스 식중독 균이었다. 그녀는 먼저 조용진을 만나 좋게 달래보기로 한다. 그래서 남장을 하고 직접 그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의 태도로 보아 끝내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많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들어주겠노라며 안심시킨 뒤 미리 준비해간 물건을 그에게 전해주고 나온다. 그것은 보툴리누스균을 주사기로 왕창 집어넣은 통조림과 이를 안주 삼아 마실 소주일 것이다. 조용진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말을 들은 데다 생각지 않은 술까지 생겨 기분 좋게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을 먹는다. 뉴스기사에 뜬 대로 그는 식중독을 일으킨 끝에 사망한다.

 

이야기 끝에 가람은 뜻하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조용진이 죽고 난 며칠 뒤 양평에서 있었던 가정집 가스폭발사고 알고 계신가요?“

“그런 사고야 그리 특이한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럼 그것도 남회장이 저지른 일이란 말인가요?”

“이것도 제 뇌피셜인데요, 조용진이 혼자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친구를 끌어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람의 추리를 듣고 난 마고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조리 있는 그의 추리가 단순한 상상에 지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이 사건에 집착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고도는 이렇게 확신하며 마무리 짓기로 하고 다르게 떠보았다.

“그러면 이들 중에 과연 남회장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을지, 만일 있다면 어떤 식으로 남회장에게 복수를 한 건지도 생각해보았나요?”

가람은 선계윤의 가족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계윤같은 경우 그의 부친이 부유했기 때문에 그때 경찰의 수사를 물적으로 많은 지원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런 결과가 없자 당시 경찰의 수사에 불만이 많았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사설탐정 같은 것을 고용해서 조사해 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여 포기했을 텐데 최근에 그의 형제가 에오스그룹기사를 보고 그 사건을 떠올리게 되고 다시 시도를 했을 수도 있다. 고용한 사람이 탐문조사 끝에 조용진이라는 인물이 누군가로부터 거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름 추적해보았을 것이다. 조사결과 남회장이 조용진에게 덜미를 잡혔는데 그것은 바로 남회장이 선계윤을 죽인 간접증거라고 본 것이다.

 

조용진은 화공약품을 취급하는 친구로부터 어떤 여자가 이상한 화공품을 사가지고 가더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동물의 사체를 급속하게 부패시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인데 그녀가 그게 왜 필요했을까? 그때가 선계윤의 실종시기였을 것이고 그래서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런데 친구의 말로는 얼굴을 최대한 가렸는데도 얼핏 보니 엄청난 미모였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었던 터라 조용진은 남민희가 회사에 들어왔을 때 그녀로부터 돈을 뜯어낼 기회로 보았다. 그녀가 선계윤과 사귀었다는 것을 알고 짐짓 그녀가 화공약품을 사갔던 것을 들먹이며 당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다 안다고 슬쩍 떠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얼굴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의 끈질긴 협박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고 그에게 거액을 주고 입막음한 것으로 추정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탐정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나서 남민희가 살인자라고 확신한다. 한데 뜻하지 않게 조용진이 죽자 남민희가 선계윤을 죽였을 것이라는 확신은 철썩 같이 굳어진다.

“합당한 추리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 이후 텀이 좀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먼저 어떤 방법으로 복수할 것인가로 고민했겠죠. 그러다가 암살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명사수 스나이퍼를 구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습니까? 그 다음은 저격타이밍 잡는데도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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