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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6회)

by 허슬똑띠 202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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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묘연한 자금의 행방

분홍 빛이나 엷은 비취색 그리고 쪽빛 등 여러 색의 조그만 전구가 실내를 비추고 있지만 다소 어둑하게 보이는 공간이었다. 섹스폰 경음악이 은은하게 울리고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피아노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넓직한 유리로 장식된 창 안쪽으로 넓직한 홀이 자리 잡고 있는데 빙 둘러 가며 편안한 의자들이 충분한 공간을 두고 배치되어 있었다. 홀 끝 편에는 낮은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드레스 입은 여인이 보였다. 그리고 작은 출구가 나있는 주방과 홀 주변을 따라 둥그런 형태로 설치된 스탠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스탠드 벽면 쪽에는 많은 종류의 위스키와 와인들 그리고 칵테일 잔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홀에는 많은 좌석에 손님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며 담소하고 있는데 실내 분위기에 맞게 그다지 떠들썩하지는 않았다. 남자들끼리 앉아 있기도 하고 여자가 끼어 있는 자리도 있었다.

주방으로는 깔끔하게 머리를 빗겨 올리고 검은 색 근무복장을 한 웨이터들이 음식접시를 들고 분주하지는 않지만 날렵한 동작으로 주방과 홀을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스탠드에는 몇몇 남녀가 의자에 걸터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안쪽에서는 남자 2명 여자 1명의 바텐더가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부 분위기에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듯 스텐드 구석 쪽에는 얼굴이 하얗고 생김생김이 번듯한 사내가 혼자 앉아서 붉은 칵테일 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반대편 구석에서는 그를 바라보며 웨이트리스들이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윤아! 저 사람은 맨날 봐도 영화배우 강동빈보다 훨씬 멋진 것 같아, 그렇지 않니!"

"그래, 저 코를 좀 봐! 어쩜 꼭 대리석을 깎아 놓은 것 같아."

"매너는 또 어떤데! 그런데 그보다도 말이지, 모르는 게 없더란다!"

"오호 그래! 그런데 뭐를 그리 잘 알아?"

"저 사람하고 한 두번 함께 왔던 자산관리회사 부장이 그러던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또 저 번에는 바텐더한테 들은 얘긴데, 칵테일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가 자기가 두손 두발 다들었다누만."

"이건 완전 설상가상, 설상가상? 아니지 금상첨화네."

"정말 그런 것 같에. 얘! 그런데 다 좋은 데 분위기가 좀 침침하지 않니?"

"글쎄?"

 

잠시 후 그 사내가 바의 출입구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의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여전히 맑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전혀 취기가 어려있지 않았다. 뒤돌아 서더니 입구 상단을 올려다 보았다. 그곳에는 파란 형광램프로 '배첼러스 멤버 클럽' 이라 새겨져 있고 그 주위로 분홍형광램프가 감싸고 있었다. 한눈에도 명품인 것을 느낄 수 있는 품격있는 옷차림이, 훤칠한 키에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준수한 외모를 더욱 받치고 있었다. 그는 이내 화려한 네온 사인들 속의 사람들 틈으로 파묻히더니 서서히 인파 속에서 사라져 가버렸다.

 

밤늦게까지 차량과 사람들로 혼잡스럽던 도심의 거리는 새벽이 되면서 나름 정적을 만끽하고 있었다. 높은 빌딩들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윤곽을 나타내고 있고 사이사이에 빨간 불빛들이 깜빡거리고 있다. 거리에는 무심한 신호기가 제 혼자서 차례로 파란 등, 화살표시 그리고 빨간 등을 표시하고 있으나 수시로 이를 무시한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텅빈 거리를 질주하면서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을 도심의 휴식을 방해했다. 그들로 인하여 발생한 엉첨난 굉음이 조용한 공간을 뒤흔들어 놓다가 서서히 잦아들고는 했다.

대로변 옆으로 난 2차선 도로를 조금 들어간 곳에 크기가 고만고만한 건물들 사이로 10여 층짜리 번듯한 건물이 나타났다.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옥상 부분의 경고등 만이 깜빡거릴 뿐 건물 전체는 깊은 정막과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 건물의 5층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무실. 역시 어둠이 자리 잡고는 있으나 창밖에서 비추는 수 많은 가로등 불빛으로 집기비품이나 파티션 등의 윤곽들은 거의 대부분 보이고 있었다. 다만 침묵 속에 잠긴 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낮이 오기만 기다리는 듯하였다. 출입문이 있는 쪽에는 비상출입구를 나타내는 파란 표지판이 날이 새는 일정을 지켜주듯 고요한 공간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듯한 실내의 공기를 가르듯 창가 쪽 한 곳에서 훤하게 불빛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모든 정막을 깨듯 윙윙 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범은 창을 등지고 있는 한 책상 위의 컴퓨터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본체가 스스로 작동하고 모니터가 켜지면서 훤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컴퓨터의 부팅이 끝나자 마치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조작하는 것처럼 모니터 내의 화살표가 이리 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터넷 뱅킹화면이 조금씩 형성되더니 완전한 모습이 나타났다. 사람이 앉아서 동작하는 것처럼 커서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한 동안 혼자 신나게 작동했다. 그러다 얼마 후 사라지면서 모니터가 스르르 꺼짐과 동시에 본체의 작동 불빛도 꺼졌다. 다시 희끄므레한 어둠 속에 잠기는 사무실.

 

외부에서 들리는 자동차의 소음이 점차 늘어나면서 사무실 창밖이 조금씩 밝아 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더욱 밝아진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작업자들이 들어 오면서 실내 등이 모두 켜졌다. 한동안 작업자들의 청소작업이 진행되었다. 청소가 끝나고 얼마 후 출근하는 직원들이 제법 넓직한 사무실로 들어 오면서 잡스러운 소음들이 커져갔다. 많은 직원들이 몰려 들어 올 때 고참인 듯한 한 남자가 많은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 와서 사무실 중간쯤, 창문을 뒤로 하고 있는 책상으로 갔다. 책상 앞쪽에 '차장 고백종'이라는 명패가 놓여진 것이 보였다.

옷걸이에 상의를 걸치자 마자 컴퓨터를 켜고 난 후 밖으로 나가 커피 한잔을 들고 와서는 컴퓨터의 각종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자리에서 작업을 하던 고백종이 전화를 받으며 열심히 메모를 했다. 그리고 이내 인터넷 뱅킹시스템을 오픈시켰다. 고백종이 뱅킹시스템을 오픈시키는 순간! 동시에 엉뚱한 곳의 컴퓨터 모니터에도 똑같은 뱅킹시스템이 떴다. 그런데 그 모니터 앞에 앉아서 빙긋히 웃고 있는 사내는 바로 배첼러스 멤버스 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바로 그가 아닌가?

고백종이 인터넷으로 자금 이체작업을 하면서 해당 항목을 입력할 때 마다 동시에 그 사내의 모니터 속의 뱅킹시스템에도 자동적으로 입력되면서 채워지곤 했다. 다만 틀린 점이 있다면 고백종의 모니터에는 일부 문자나 숫자가 별표시로 나타나지만 오른편 모니터에는 고백종이 두둘기는 자판의 문자나 숫자가 그대로 표시되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체 이체 작업을 마친 고백종은 기분좋은 표정으로 결재판을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얼마 후 모든 직원들이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오는 고백종. 결재서류를 들고 터덜터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한참 동안을 컴퓨터로 문서작업에 열중하는데 그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고 난 그가 '그럴리가' 라면서 고개를 쩔래쩔래 흔들며 급하게 컴퓨터의 다른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느라 정신이 없지만 모두 표정들은 멀쩡했다. 그런데 고백종의 표정만 점차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갈수록 안절부절하는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까지 맺히기 시작했다.

가끔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닦아 내곤 했다. 그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은행의 인터넷 뱅킹화면이 떠 있는데 그가 정신 없이 계속 스크롤하는대로 화면이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고백종이 신음하듯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정말 이게 어찌된 거야 정말로!'

스크롤 되던 인터넷 화면이 한 곳에 멈추자 인출난에 그려진 숫자에 붙은 영의 개수가 꽤 길어 보였다.

'씨발! 분명 지시한 계좌로 자금을 이체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생판 모르는 곳으로 간거야? 계좌번호를 잘못 쓴 건가? 아니야! 그럴리 없어. 여태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는데…….

어휴 일억이천 만원이라, 이거 누구집 애이름도 아니고. 까닥하면 내가 다 뒤집어 쓰게 생겼네.'

계속 중얼거리다가 손을 뻗어 전화를 들었지만 머뭇 머뭇하다가 이내 전화기를 도로 내려 놓았다. 다시 중얼거리는 고백종

'아니! 전화로 떠들어 대면 안되지! 그렇다고 이렇게 있어봤자 해결될 일도 아니잖아, 이 빙신아!'

급하게 컴퓨터를 아웃 시키면서 벌떡 일어섰다. 옷걸이에서 급하게 상의를 끌어 내려 걸치고 황망하게 사무실을 나서면서 앞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화난 듯 내뱉었다.

"나 거래은행 좀 갔다 올게! 부장님이 찾으면 그렇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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