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로 들끓는 정국
15. 저출산 대책 법률
민주화 정부가 들어 서기 전에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속전속결로 단시일 내에 경제를 부흥시켜야 하는 국가의 중대사를 방해하지 말고 그냥 음산한 기운에 눌려 조용히 있으라는 뜻으로, 국회를 태평로에서 아주 음기가 강한 여의도 북단으로 이전하였다는 확인되지 않는 일화가 그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볼 때 여의도 남북으로 널찍하게 길게 들어서 있는 도로가 그 음기를 다 날려 보내는 듯하였다. 그러다 보니 남쪽 끝에서도 한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진 국회의사당에서는 그 이후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으로 향하는 대로의 양편으로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각종 기업체의 빌딩, 증권회사의 빌딩 등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맨해튼을, 한국의 월가를 상징한다는 여의도는 모두가 국회의사당으로 통하는 것일까? 그 넓은 길에는 언제나 꼬리를 물고 오가는 차량들로 메워져 있고 여의도 공원을 가로 지르는 지하 차도를 건너면 의사당 앞 역시 하루 동일 셀 수 없이 많은 차량들의 행렬들로 북적인다.
그 건물 위에 대포가 놓이기도 했던 국회는 다소 균형이 잡히지 않은 둥근 테의 모자를 쓰고 있어 도도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좀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건물 앞에는 잔디밭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데 웬만한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의사당 건물 안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실에는 의안을 심의하기 위하여 여야 국회상임위원들이 주욱 앉아있었다. 의장이 회의개최를 선언했다.
"지금부터 장경호의원이 발의한 '출산 장려법'에 대해 심의하겠습니다. 장의원! 입법 취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그러자 장의원이 말을 꺼냈다.
"여러 위원님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15명으로 지금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산율인 2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수수방관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적극적인 방안의 시행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이 법안을 발의하게 된 것입니다. 주된 골자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누구든 육아 및 교육 걱정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영유아 보육원을 만들고 기타 적령기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장의원이 발언이 끝나자마자 야당의원들의 공세발언이 이어졌다.
"저도 장의원님의 입법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법안 내용 중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던데요? 가칭 '꿈나무 희망천사원'이라는 영유아 보육원을 국가에서 운영하자는 건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보육원 운영하기 위하여는 재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운영시스템의 내용을 보면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제주의 국가도 아닌데 영유아원에서 어릴 때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는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자 발의 당사자인 장의원이 이에 대해 응수했다.
"문제될 거 없습니다. 어차피 국가에서 영유아들을 보살펴 주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데 그 아이들을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교육하고자 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겁니까?"
이 말에 이어서 곧장 여당의원의 찬성발언이 이어졌다.
"맞습니다! 효율적인 교육 달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자 의원 몇 명은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떠들고 또 몇 명은 좋은 법안인데 또 왠 트집이냐고 하면서 떠들어 대자 회의장 분위기는 갑자기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의장은 일단 회의를 보류한다면서 의사봉을 타봉 했다.
'출산장려법'안에 대한 논의가 보류되고 나서 각종 매스컴에서도 법률의 취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전국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많은 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직접 행동에 나서면서 더욱 시끄러워졌다. 국회의사당 앞 보도와 그 뒤의 건물들 주위에 가득 찬 사람들이 들고 있는 각양각색의 현수막들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마이크로 떠드는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금번 국회에서 입법 발의한 출산 장려법안의 일부 내용은, 그야 말로 독재국가적인 발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발상을 내놓은 국회위원을 규탄 합니다.'
투명 방패로 온몸을 막고 있는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이 국회주변을 에워싸고 시위대가 국회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국회 앞의 전철역 출입구에는 그 곳을 봉쇄하고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시위진압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16. 저출산대책위원회
새로 지은 높은 건물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사이로 오래된 5층짜리 건물이 하나 보였다. 건물 2층에는 '저출산대책을 위한 대토론회'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 건물의 왼편에 나 있는 출입구에는 세로로 '사단법인 저출산대책위원회' 라고 쓰인 명판이 붙어있는데 사람들이 연신 입구로 들어갔다.
건물 2층의 회의장 앞에는 단상이 설치되어 있고 대형 스크린이 내려져 있었다. 단상 좌우로 각각 태극기와 위원회기가 놓여 있고 한 쪽으로 치우쳐서 연단이 놓여 있었다. 단상에는 몇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옆 사람과 얼굴을 가까이 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웅성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들어오는 사람이 뜸해지는 한 순간 마이크 테스트 하는 음성이 들리면서 회의장 분위기가 가라앉고 이내 사회자의 안내 멘트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토론회는 먼저 K경제연구소의 연구보고가 있겠고 그 다음 오늘의 주제를 놓고 자유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모두 일어서서 국기를 향하여 서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단상 앞부분의 불빛이 꺼지고 천정에서 내려온 스크린에는 프로젝터에서 쏟아져 나온 자료들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스크린 옆쪽에 있는 탁자에서 보조원 한 사람이 노트북을 조작하고 있는 가운데 단상 한편으로는 연구원이 레이저 지시봉으로 스크린의 자료들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었다. 빨간 점이 스크린 위를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수놓고 있었다.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저 출산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전체인구는 감소하고 노령인구의 비율이 급속히 상승하는 기형구조의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스크린에는 삼차원 도형으로 주요 연도별 출산율이 나타났다.
"저 출산의 현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통계로 살펴보면, 1984년 이후 가히 기하급수적 하락을 보여 2009년 현재 1.15명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입니다. 이는 현재 인구의 현상 유지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만약 이러한 추세를 막지 못할 경우, 과장되게 표현 한다면 우리 한민족의 인구는 2500년에는 30만 명 수준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서 연구원이 청중을 들러보자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나며 분위기가 어수선 해졌다. '정말 심각하구먼', '정말 큰일이네!', '에이 그래도 다행이네 뭐! 500년이나 걸린다니'라는 얘기가 심각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했다. 그런 웅성거림에 관계없이 보고서의 프레젠테이션은 계속되었다.
"물론 과장되기는 했지만 그만큼 저 출산 현상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늦기 전에 단순히 현상의 외적인 면만 보지 말고 보다 심도 있는 내부 파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이렇게 저 출산 대책위원회가 발족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 위원회를 이끌고 계시는 회장님 이하 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는 순간 몇몇의 박수가 나오더니 순식간에 퍼지면서 요란하게 박수소리가 터졌다. 박수 소리가 뜸해지자 연구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희 연구소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국민연금 및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 제도를 대폭적으로 개혁하여 움추러든 마음을 펴게 하는 한편, 둘째는 결혼촉진을 위한 방편으로 신혼부부에 대한 과감한 주택보급 정책을 강력히 시행함으로써 출산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토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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