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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14회)

by 허슬똑띠 202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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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의 꼬리를 잡다.

 

17. 저출산의 미래상 계속

 

이 화면이 조금씩 사라짐과 동시에 한 연구소에서 리포터와 인터뷰하고 있는 연구원의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나다가 선명해진다. 연구원이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침을 튀겨가며 성토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지나치게 기계에 의존하여 안일함만을 추구하는 자아 혼돈의 시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성적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각종 첨단기기들이 넘쳐나니까 당연히 결혼에 대한 자극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초래 되는 겁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을 양육하며 보내는 시간은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데 방해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적, 정신적 손해를 감수하려는 자발적인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그러자 리포터가 웃으면서 묻는다.

"그러면 연구원께서는 이런 생활용품을 사용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그러자 연구원이 겸연쩍은 미소만 흘리고 있다.

이번에는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군중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허공에 가로로 길게 떠 있는 전자종이로 만들어진 플래카드에는 빨갛고 파란 글씨로 '인간 말종들은 바다로 가서 빠져 죽어라.‘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는 법안 절대 폐지' 라는 문구가 계속 바뀌어 나타나고 있다. 시위대를 배경으로 소형 카메라 장비를 머리에 쓴 채 공중 부양기에 타고서 취재하고 있는 기자가 화면 중심에 들어오면서 그가 하는 말이 들려온다.

'최근 한 의원이 입법 발의한 [결혼 및 출산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오늘도 국회 앞에서는 법제정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법률의 주요골자는 일정 적령기에 도달했음에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특별한 불임 사유 없이 2년 이내에 아기를 낳지 않는 경우 매우 큰 벌과금을 부과하는 등의 불이익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노마드의 열풍이 불어 닥쳐 우리 생활에 뿌리를 박은 지 십수 년이 되어 가면서 많은 부분이 변화되었고, 특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개념은 가히 혁명적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불쑥 이러한 법안이 제기됨으로 해서 지금 우리사회는 들끓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고려장을 걱정하는 노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현장을 연결하겠습니다.'

홀로그래피 화면에는 '고려장 부활이 웬 말이냐, 모두들 자성하라!'라고 흘러 나오는 전자 접착식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역시 공중부양기에 타고 이를 취재하는 기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출산율이 급감하여 젊은이들의 인구가 계속 줄어듦에 따라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 먹여 살리느라 뼈골이 휘어진다고 불만들이 팽배한 가운데 외국으로 이민 가는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 가운데 어느 청년단체에서 대책회의를 하던 중 “이거 고려장이 다시 부활되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이렇게 오늘 노인들이 총궐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8. 추억

 

한 밤의 클럽 배챌러스 내부.

스탠드의 고정석에 잘 생긴 그 사내가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평상시 같지 않게 스트레이트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있었다. 웨이터가 걱정스러운 듯 가끔 그의 표정을 살폈다. 먼발치에서는 웨이트리스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니 오늘은 평소하고 다르네. 왜 저렇게 많이 마시지? 지금 벌써 18년 산 발렌타인 세 병째야!"

"오늘 무슨 괴로운 일이 있었나 봐!"

다소 급하게 술을 마신 그가 일어서는데 취기가 서려있기는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바의 외부로 장면이 바뀌면서 출입구에 그가 나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다른 날과 달리 조금 걷다가 빈차로 다가오는 택시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가 타자마자 출발한 택시는 많은 차량들 속으로 끼어들어 달려가며 차츰 모습이 사라져 갔다.

아직도 많은 차량들이 오가고 있는 한강대교 부근에 택시 한대가 정차했다. 택시 등이 켜지며 좀 전의 그 사내가 내리더니 아파트 사이로 난 길을 통하여 천천히 한강으로 내려갔다. 강가로 나오자 가까이에 한강대교가 보였다. 강가의 자전거 길에는 어둠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그리고 가볍게 뛰어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강가 가까이 걷다가 강변에 마련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끔 빛을 발하며 철썩이는 강물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참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숙이고 소리가 들릴 정도로 흐느꼈다. 흐느낌 중간 중간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소다미야! 미안하다.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낮은 바람소리와 함께 강물이 강안에 부딪치며 철썩이는 소리가 그의 흐느낌 속에 섞인 중얼거림을 달래주는 듯했다. 그 와중에 그의 머릿속에는 소다미란 소녀에 대한 추억이 맑게 떠올랐다.

 

1987년 오늘 고아원.

한 사내아이가 고아원 의무실의 침대에 누워있는 한 소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데 눈이 거의 감긴 소녀의 얼굴은 분장을 한 것처럼 아주 창백했다. '제발 살아야 돼' 라고 하면서 그는 소녀의 손과 얼굴을 계속 비벼댔다. 밖에서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나 잠시 바라보다 그냥 가버리곤 했다. 소녀는 거의 감겨가는 가느다란 눈을 겨우 유지하며 그를 바라보고 힘들게 미소를 지었다. 소녀의 눈에서는 작은 눈물방울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소녀의 팔이 축 처지고 얼굴이 살짝 젖혀졌다. 사내아이는 그 소녀의 주검을 붙잡고 몸부림치며 울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아원 사람들이 곧바로 나타나 발버둥치는 그를 억지로 끌고 독방으로 데려가 문을 잠갔다. 소녀의 주검이 외부로 옮겨간 뒤에도 문을 마구 두드리며 큰 소리로 우는 소리가 오랜 동안 방 밖으로 퍼져 나오고 있었다.

 

19. 꼬리를 잡히다

 

사이버범죄 수사대의 장팀장이 급하게 대장실로 향하더니 곧바로 문을 열고 활기차게 들어갔다. 들어서면서 대장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대장님! 드디어 꼬리를 잡았습니다."

차대장이 응접탁자로 와서 앉자 장팀장도 대장 옆쪽의 테이블 의자에 주저앉았다.

"정말이야? 어떻게?"

"왜 최근에 첨단 IT기술 개발 중이라고 발표 났었던 P그룹 있잖아요?"

"응 그래 알아!"

"그 기술연구소의 정보센터에 제 동생이 연구원으로 근무하거든요."

"그래 거기로 낚시 밥을 던져 놓았더랬나?"

"네, 아무래도 그 놈이 이번에는 그것을 노릴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동생한테 찾아가 작전을 논의했습니다."

"어떻게?"

"기술센터 내의 보안을 강화한 다음 그 기술내용을 저장한 곳은 표시 안 나게 조금 느슨히 터놓자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는 껍데기 내용만 집어넣고요. 일종의 미낍니다."

"그럼 그게 성공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아침에 연락이 왔는데 새벽에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답니다. 지금 계속 추적 중인데 아직까지는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언제쯤 확실한 게 나타날 것 같은가?"

"오후면 발신지를 포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모든 대원에게 대기하도록 하고 특공대에도 연락해서 협조요청 하게. 위치 포착하는 대로 곧바로 치기로 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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