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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21회)

by 허슬똑띠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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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입씨름

 

25. 진술(1) 계속

 

윤경위가 동요하던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으로 취조를 시작했다.

"그 동안 가리은씨가 벌려놓은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애를 많이 먹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크래커라 하더라도 우리들의 능력을 뛰어 넘지는 못한다는 걸 염두에 뒀어야지요. 그러면 지금부터 범행 일체를 차근차근 진술해 보세요."

"우선 P기업의 사건부터 얘기하죠. 거기 자금을 빼낸 일은……사실 별거 아니었어요. 한번은 서로 거래하고 있는 두개 기업의 전산망을 훑어보는데 수상하게 보이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이 기업이 더 수상쩍어 그 담당자를 공격해 보기로 했지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개인이나 기업의 자금 흐름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배워서 웬만큼 분석할 줄 압니다."

"그래요? 그렇다 치고 어떤 수법으로 한 건지……."

"담당자 컴퓨터로 침입해서 문제가 발생된 것처럼 꾸며놓았습니다. 그러자 내가 심어놓은 먹이를 덥석 물더군요. 그래 원격조정 장치를 깔게 되었죠. 그가 컴퓨터를 꺼도 외관상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그 사람의 컴퓨터를 완전 장악한 셈이 됐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특별히 눈에 뛰는 것이 없었지요. 실수했나 싶어 빠져 나가려다 보니 리스트 중에 이상한 표시를 한 것이 보이더라구요. 바로 비자금 계좌였습니다. 그래 이건 건드려도 쉽게 신고가 안 되겠다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네요."

"그래서 그 자금을 빼냈다 이거죠?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해보세요!"

"먼저 그 사람 컴퓨터에다가 가상 인터넷뱅킹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뱅킹에 접속하면 무조건 그게 뜨게 되도록 해 놓았거든요."

"이것은 일종의 피싱이군요."

"예,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그가 가상 인터넷 뱅킹시스템에 접속하여 자금이체를 진행하면 그대로 내 모니터에 100% 온전하게 나타납니다. 나는 그것을 보며 그대로 정상 시스템에 옮겨 적기만 하면 되지요. 이체될 계좌번호만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바꾸고요."

 

이 부분에서 윤경위의 눈초리가 이상해졌다. 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상해! 우리가 그 회사 전상망이라든가 담당자 컴퓨터를 다 조사해 봤는데~~~전부 멀쩡했었는데?"

그러자 가리은이 윤경위를 마음을 읽은 듯 미소 지었다.

"그게 제가 살아오던 존재의 이유 아니였겠습니까?"

그러나 이내 정색했다.

"이제는 아니지만……."

윤경위가 다소 기가 막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엉뚱한 소리하지 말고 계속해보세요."

"완벽히 처리되면 가상 뱅킹시스템은 흔적 없이 없애고 심어놓은 프로그램도 폐기해버립니다. 침입흔적을 완벽하게 지운다는 건 어렵지만 나만의 노하우로 거의 100% 가깝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당연히 실수도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오늘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지만……."

"바로 리버스 스팅(REVERSE STING)과 피싱의 환상적인 조합이구만……."

"다빈치 관련 영환가에 이런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거 보셨어요? 무슨 반 중력물질인가를 탈취하고자 하는 거였는데, 그것은 안문(眼紋) 확인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있었지요. 그런데 범인은 연구원 한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눈을 빼내 그 안문으로 확인 받고 들어가서 그 물질을 탈취하여 유유히 사라지죠. 바로 이런 거와 비슷한 방법이죠. 사람을 죽이거나 피를 직접 보지 않을 뿐이지만……."

"당신이 얘기한대로 직접 살인을 하거나 피를 흘리게 한 건 분명 아니죠. 하지만 그 계좌를 관리하는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 바로 피눈물이나 진배없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렇기는 하겠군요. 그러나 불법적인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 역시 나쁜 거 아닌가요? 이 돈은 대포계좌 만들어 준 노숙자들에게 새 출발하라고 대부분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건 나중에 그들을 조사해보면 증명될 거구요, 아무튼 나쁜 용도의 돈이라도 그것을 훔친 거는 명백한 범죄죠. 그리고 불쌍한 사람을 도왔다 하더라도 그 죄가 용서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요. 그 것을 알 정도의 인식은 가지고 있지 않나요? "

"내가 그 동안 나쁜 짓을 많이 해왔지만 내가 지내온 힘든 과거를 생각하고는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을 지켜왔습니다. 뭐, 괴도 루팡을 흉내 내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어요. 다만 그의 모든 것을 본받자고는 했지만……."

"잠시 휴식한 다음 계속 하도록 하지요."

윤경위가 서류를 들고 취조실을 나갔다.

 

26. 진술(2)

 

취조실은 아무도 들락거리는 사람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가리은은 윤경위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그 적막을 즐기면서 자신의 세계에 빠져든 듯이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윤경위가 들어오자 가리은이 눈을 떴다. 그의 눈빛에는 취조를 받는 범죄자의 고뇌가 아닌, 그리운 사람을 만나 행복한 느낌이 그득 서려있었다. 윤경위가 그에게 다가가서 두 손을 올리고 수갑을 풀어 주었다. 그것을 감시창으로 보고 있던 장팀장이 놀래서 어쩔줄 몰랐다.

"아 아니? 수갑을 풀어주면 어쩌노!"

그러나 차대장은 별로 개의하지 않았다.

"윤경위가 저놈의 성격을 이미 파악한 것 같아. 적어도 사람의 얼굴표피를 떼내는 한니발 같은 스타일은 아니잖아?"

수갑을 풀어주자 가리은이 빙긋이 웃으며 답례했다.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좀 불편했었는데~~ 경위님께서는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것 같네요."

윤경위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추겨 세우지 말아요. 그런다고 내가 가리은씨의 죄를 없는 것처럼 만들어 주지는 않으니까……."

그러면서도 불편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듯한 표정이었다.

"자 그럼 다음 건으로 넘어가 볼까요? K그룹의 기술연구소에서 최신개발 기술을 빼돌린 것도 당신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여기에서는 별 생각 없이 무심코 넘어 가기 쉬운 빈틈을 활용했지요."

 

"맨인더미들(Man-in-the-Middle)이라고 하는 공격방법을 쓰셨다 이거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먼저 침투하여야 할 정보관리자 두 사람을 확인했죠. 그리고 각각 서로에게 통신을 요청하는 것처럼 만들어 상호 통신을 하게 한 다음, 각각에게 침투했지요."

"통상적으로 두 사람이 암호화된 연결을 하고자 하는 때에는 비밀 키를 만든 다음, 비대칭암호화를 이용해서 전송해야 하고, 이 키를 그 이후의 통신내용을 암호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것을 지키지 않은 빈틈을 보았군요."

"그렇습니다. 이 키를 안전하게 주고받고 나서는 그 뒤로 통신을 할 때 계속 이 키로 암호화하면 아무리 트래픽을 스니핑하더라도 내용을 해독할 수 없게 되죠. 내가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해도 그 뒤로는 별 수 없거든요. 나는 그러기 전의 순간을 노려 공격한 거죠."

"그렇게 완벽하게 전산망을 장악했으니 그 뒤로는 아주 식은 죽 먹기였겠군요?

가리은이 멋적게 웃었다.

"맞습니다."

"그걸 빼돌려서 무얼 하려고 했나요?"

"조금 전에 얘기했던 거처럼 많은 사람들 것 중에서 조금 빼내어 적게 가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또 한 가지, 별로 깔끔하지 않은 방법으로 중소기업을 많이 괴롭혀온 그룹이거든요."

"그런 부분은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요……."

윤경위가 다소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근본적으로 의식자체에 문제가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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