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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이춘이화 그녀는 왜 그랬을까? (아찌<제3회>)

by 허슬똑띠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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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2. 어느 자취집 / 오후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약간 언덕진 주택가.

한기자가 긴 머리의 처녀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녀는 가방을 메고 옆구리에는 몇 권의 책을 들고 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처녀의 머리를 흩날리며 지나간다.

 

친구 며칠 전 미친년처럼 속옷차림으로, 그것도 새벽에 집에 오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한기자 왜 그랬는지 얘기는 들어봤어요?

친구 엉엉 울기만 하고 무슨 일인지 도통 얘기를 안 해요.

그리고 학교에 가서도 절대 얘기하지 말라면서 얼마나 신신당부하던지.

입 잘못 뻥긋했다가는 쟤까지 죽을 것 같아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더라고요.

한기자 그러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었군요.

혹시 학교로 경찰이 찾아 오진 않았었나요?

친구 왔었죠! 그런데 저 년이 얼마나 발발 떨던지, 그리고 자기는 정말 잘못 없으니 경찰이 오더라도 모른다고 해달라고 빌다시피 하니 별 수 없었죠.

그래서 딱 잡아떼었어요.

한기자 (씁쓰레하면서) 네, 잘했어요.

친구 저도 어떻게 해야 될 지 한참 고민했어요.

이 친구하고 2년을 친하게 지냈지만, 집안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지냈으니 이번 일이 쟤하고 관련된 일인지 전혀 몰랐어요.

한기자 아무튼 나름 맘고생이 심했겠네요.

친구 네. 그리고 쟤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니 더 힘들었죠.

더구나 어제까지 밥 한술도 안 들었으니 몸이 말이 아닐 거예요.

 

몇몇 행인들이 옷깃을 여미며 지나치자마자 어떤 집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친구가 한기자에게 들어가자는 손짓을 한다.

친구가 문을 열고 앞장서서 들어가자 한기자도 따라 들어간다.

화면은 조그만 문이 달려있는 집 옆쪽으로 바뀐다.

친구가 문을 열면서 다시 들어가자는 시늉을 하자 한기자가 괜찮다는 손짓을 한다.

잠시 후 이춘이화가 부스스한 얼굴로 친구를 따라 나온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이다.

한기자는 친구에게 잠깐 얘기 좀 하고 오겠다고 하고 이화를 바라보며 함께 가자는 눈짓을 한다.

 

 

S#3. 커피숍 / 낮

 

그리 넓지는 않은 2층의 다방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 좌석을 배치하여 좌석과 좌석의 사이가 궁색할 정도이다.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나이든 남자 몇 명이 앉아있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은 한기자와 이화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그들의 앞에는 손잡이가 달린 둥글고 흰 커피 잔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꽁초를 풀어 놓은 것처럼 거무죽죽한 빛깔의 커피가 보인다.

 

(인서트)

커피 잔에서 꽁초가 나오는 사진과 함께 '웬만한 다방에서는 다반사인 꽁초커피'라는 신문 카피.

 

커피를 마실 생각은 하지 않고 잔만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는 이화.

한기자 역시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다.

그녀의 어머니인 유화처럼 희고 고운 피부에 예쁘장한 얼굴이다.

또한 옷은 친구의 옷이라 다소 헐렁하고 수수했지만 그녀의 타고난 몸매를 감추지는 못하고 있다.

 

(플래시 백)

말없이 한기자를 바라보고 있는 유화의 모습. 그녀의 얼굴에는 무언가 간절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

 

한기자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거 알아.

이화 …….

한기자 나 오늘 기자의 신분으로 온 거 아냐!

이화 (작은 목소리로) 그럼 저를 만날 이유가 없지 않나요?

 

겨우 말을 꺼낸 이화의 눈에는 여전히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기자 나를 봐. 내가 이화양 어머니를 처음 본 순간 거기에는 말 하지 못할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러자 갑자기 이화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한다.

터지려는 울음소리를 죽이려 하지만 억눌린 울음소리가 그녀의 몸이 들썩거릴 때마다 조금씩 터져 나온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쑤군거린다.

한기자는 다소 난감했지만 그녀가 울도록 내버려 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여전히 가슴을 들먹거리지만 울음을 멈추고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이화 죄송해요. 우리 엄마가 가끔 혼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코가 찡했는데 엄마 얘기가 나오니 …….

한기자 괜찮아.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데 내가 이화양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화 …….

한기자 모두들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방법이 없어.

이화 저도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한 거에 대해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저는 그냥 무섭기만 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엄마대로 저와 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한기자 음…….

 

다시 고개를 숙이는 이화를 보다가 창밖을 내다보는 한기자. 먼 하늘로부터 먹구름이 검게 뭉쳐 다가온다.

가로수에서 떨어져 나온 황갈색의 나뭇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그곳으로 빨리듯 날려 간다.

그러자 마치 그 나뭇잎 때문에 그런 것처럼 구름 한 가운데가 뻥 뚫리기 시작한다.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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