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4. 면회실, 서대문 구치소 / 오후
(F.I)
카메라가 팬 하면서 면회실 전체의 정경을 보여준다.
면회실 한 쪽 면은 유리벽으로 장식되어 있고 여러 개의 칸막이가 세워져 있다. 각 칸막이 앞 유리는 대화를 위한 구멍들이 뚫려있다.
그 앞에 바짝 붙어 있는 의자에는 대 여섯 명의 면회자들이 앉아 있다.
맨 구석 편에는 야한 복장의 20대 후반 여인이 앉아 있다.
파마머리에다가 둥글고 큰 귀걸이 등으로 요란스럽게 치장했는데 짙게 바른 빨간 립스틱이 유난히 눈에 띤다.
그녀가 껌을 씹으면서 내는 딱딱 소리가 면회실 전체에 울리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기도 하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으면서 가끔 두 손으로 머리를 가다듬고 있다.
그 여인 한 자리 건너서 유리벽 앞에 앉아 앞만 응시하고 있는 한기자.
순간 건너편의 문이 열리고 푸른 수의를 걸친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들은 차례로 자신을 면회 온 사람을 확인하고 그 자리로 가서 마주 앉는다. 유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들이다.
면회실로 들어와서 어색하게 머뭇거리는 유화.
그녀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와 한기자와 마주앉자 그들을 중심으로 화면이 확대된다. 한기자가 구멍에 바싹 얼굴을 갖다 댄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서도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는 유화.
잠시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얼굴은 매우 창백하게 보이고 입술마저 푸르스름한 빛을 띄고 있다.
다시 카메라가 빠지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하는 한기자.
한기자 안녕하세요? 불편하신 거는 없는지요?
유화 …….
한기자 (유리 구멍에 더욱 바싹 얼굴을 대며) 잘 지내시고 계시죠?
유화가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말이 없자 한기자는 유리를 톡톡 친다.
유화의 얼굴이 화면에 크게 나타나면, 느린 동작으로 고개를 들고 잠시 한기자를 바라보는 유화. 결국 입을 뗀다.
(화면에 교차되어 나타나는 유화와 한기자의 얼굴모습)
유화 제게 이리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수차 말씀 드렸는데……
한기자 오늘은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말씀 드리지만, 제가 귀찮게 해드리고자 온 게 아닙니다. 그리고 기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뵙고 싶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유화 저도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그 마음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만나 뵈러 나왔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녀의 말은 크지는 않지만 귀품이 묻어나고 있다.
한기자 어려운 결심을 하셨네요. 잘 생각하셨어요.
유화 그러나 무슨 부탁을 한다는 것이 우습고 어이없으실 것 같아 용기가 나질 않네요.
한기자 제가 단지 호기심이 나서도,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그러는 건 아닙니다.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고, 거기에 따른 정리해야 할 상황도 있을 것이며, 게다가 미처 처리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유화 (안도의 한숨) 그 마음을 믿고 정황을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기자 말씀하시는 것은 제 있는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주저하던 유화는 결심한 듯 얘기를 시작한다.
유화 제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피해 당사자도 그것을 받을 만한 죄과를 저질렀다는 점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남자는 정말…….
이 때 구석에서 얘기하고 있던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로 들린다.
여인 뭐라고? 이 개 같은 자식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애라 이 똥물에 튀길 새끼야!
한기자가 힐끗 그 여인을 바라보다 이내 유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그녀의 입술에 집중한다.
유화도 그 상황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한기자를 바라보며 사근사근 얘기를 계속 한다.
계속 큰소리로 떠드는 여인의 소리만 면회실에 난무한다.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찬다.
유화의 이야기를 듣는 한기자의 얼굴표정이 묘하게 변하다가 전혀 예기치 못했다는 듯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나오기도 한다.
이야기 도중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하는 유화.
그러자 카메라가 빠지면서 면회실 전체의 모습이 나타나고 야한 복장의 여인이 유리벽을 치거나 손가락질을 해대며 계속 쌍욕을 해대는 모습이 잡힌다.
한편으로는 면회자들이 그녀에게 인상을 찡그린다.
면회실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교도관 두 명. 그 여인에게 다가가 강제로 끌고 나가느라 난리법석이 인다. 끌려 나가면서도 계속 욕설을 퍼붓는 여인을 바라보던, 면회하던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일어나 사라져 버린다.
그 난리통 속에서 울음을 멈추고 얘기를 계속하던 유화는 한 번 더 한기자에게 다짐을 청한다.
유화 딸아이가 임신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한 4개월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까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지요.
아직 어린데 임신이라는 건 생각지도 할 수 없었지요.
생면부지의 기자님에게 이러한 얘기하면서 딸아이를 챙겨주십사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부끄러운 일인가는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러한 것을 말할 수 없는 제 처지를 잘 알아주시니 한편으로는 너무도 고맙습니다.
한기자 아까 약속 드렸듯이 말씀해주신 모든 사항은 최선을 다해 처리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에 신경 쓰시며 잘 지내시도록 하십시오.
유화 어쨌거나 못난 에미가 그 화를 자초하였으니 나는 백 번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의 이러한 마음을 헤아리시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해주시고 그 애가 자신을 잘 추스르도록 도와주시면 저승에 가서라도 그 은혜 꼭 갚겠습니다.
한기자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승이라니요?
굳세게 마음을 먹으십시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지금 얘기 하신 것은 제가 알아서 정확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때 면회시간종료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교도관들이 들어온다. 두 손을 유리벽에 댄 채 한기자를 바라보는 유화의 두 눈에 다시 커다란 눈물이 맺히더니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면서 뒤돌아 유리벽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문을 나서기 전에 다시 뒤를 돌아보는 유화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다.
그러한 유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기자의 표정도 매우 착잡하다.
(플래시 백)
유화의 집 안방. 한기자가 장식장 위에 올려진 유화와 남편 이나운 그리고 이화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 이화를 중심으로 급속히 클로즈업되며 이화의 함빡 웃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찬다.
(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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