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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도깨비처럼 날아온 이메일의 사연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40회))

by 허슬똑띠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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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우드뱅크, 유라온의 인생역정

 

47. 유령 이메일(계속)

 

한 순간 이유도 모르는 채로 행복이 갑자기 날아가 버리고 느닷없이 닥쳐온 낯선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함께 돌아가시고 난 후 우리들은 아버지회사에 같이 근무하고 있던 아버지친구의 보살핌으로 계속 우리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분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우리들이 운명이 엄청난 시련이 맞던 그날은 날씨가 꽤 더운 날이었습니다. 집 전체를 소독한다고 일하는 아주머니가 집밖에 나가 놀도록 하더군요.

대문 앞에서 시무룩한 동생을 달래며 서있는데 차 한대가 우리들 앞에 서더니 우리의 이름을 대면서 맞는지 물어보더군요.

고개를 끄덕이자 회사에서 아빠친구가 데려오랬다고 하면서 차에 타라고 해서 덜렁 탄 것이 우리의 보금자리와 영영 이별일 줄을 꿈에나 생각했겠습니까?

그 뒤 우리는 한참 동안을 차에 실려 끌려갔고 마침내 내팽개쳐진 곳은 한 고아원이었습니다.

나는 어렴풋이 그 고아원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곳을 떠나올 때 얼핏 들은 바로는 천안시 인근에 있는 애린원이라 불리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처음 그곳을 악마와 천사가 공동으로 그럴싸하게 빚어 놓은 기괴한 마법의 공간이 아닌 가 생각했습니다.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풍경들이 당연히 낯설었지만 거꾸로 어디에선가 본 듯한 낯익은 곳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요.

나는 지금까지의 일상의 연속으로 받아들이자고 하면서 이를 꽉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포기해야하는 건지 우리를 구원해줄 그 누구에겐가 연결을 시도해 봐야 할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절망하여야 했지요. 그 때부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차피 이제는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더럽고도 일그러진 이곳이 우리 운명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도 당찬 생각과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활한 원장의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또 다른 불행의 단초가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원장은 그래서 어느 날 고아원을 방문한 미국인 부부에게 적극적으로 나를 추천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미국인 부부 역시 나를 맘에 들어 했던 거 같아요.

살짝 나만을 부르는 원장의 뒤에 서양인 남녀가 있는 것을 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가온의 손을 꼭 붙잡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고 울부짖었으나 별수 없었지요.

결국 미국으로 입양되어 가게 되고 그 뒤로 가온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난 한기자는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끼고 빈 음료수병을 들고 자리에 일어나서 서재를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병을 들고 와서 멀리 불빛이 어른거리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음료수를 마셨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눈이 슬퍼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때 그러면서 엠그룹에 스카우트되어 고향으로 온다는 마음으로 엄청 설렜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동생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생각이 온통 그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한기자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계속 메일을 읽었다.

 

나는 미국으로 입양되어 간 후 나중에 동생 가온을 만날 것만 생각하며 그 사회에 적극 적응해 나가면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양부모에게도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남보다 짧은 기간에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후 어릴 적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회사로 데려갔을 때 보여주셨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장에서 배출되는 공해물질을 정화하기 위한 수생식물들 이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했었거든요.

나는 그것을 떠올리며 친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공해방지를 위한 식물연구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찾기 위해 온갖 수소문을 해보지만 옛날 나와 가온이 있던 고아원은 이미 폐쇄되고 없어지고 가온의 행방은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고 설혹 기억하고 있더라도 상세히 알고 있지 못하여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엠그룹 연구소에서 그룹의 중대사업의 추진을 위해 도움을 청한다고 하면서 찾아왔습니다.

공해방지 식물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이름이 알려져 있던 터라 나에게 스카웃 제안이 들어 온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한국계라는 점도 감안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온을 찾을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선뜻 제안에 응했지요.

나는 그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던 이유도 나름대로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가온을 찾으러 가려 했기 때문이거든요. 양부모는 정말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내가 독립해 나간 시점에도 양부는 회계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만, 나는 매달 내 수입의 30%는 그 분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들은 매우 만족스러워 했는데, 이런 행동들이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공경문화인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몇 달 후 미국에서의 보안절차 등을 마치고 나서 엠그룹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엠그룹의 연구소에서 젬트리라는 공해물질흡수 식물을 연구하는 과정 틈틈이 가온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역시 헛수고였습니다.

더군다나 연구가 본격 단계에 이르면서는 전혀 시간을 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룹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젬트리 프로젝트에는 본래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것이 나에게는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문자가 어그러지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더니만 '가온을 꼭 찾아 주기를 부탁드린다.'는 뜻으로 보이는 글씨가 깨져 보이면서 메일은 끝났다.

서재에 걸려 있는 벽시계의 시각이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메일을 들여다보고 있던 한기자는 난감해 하면서 계속 위 아래로 스크롤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제기! 여기서부터는 문자가 깨져서 알 수가 없네. 여기가 마지막 부분인 것 같은데……. 가만있자 이것은 [가온을…꼭 찾아 주기를…간절히…부탁드린다. 가온의 특징…이마의 검은 사마귀…….]라는 뜻 같은데, 아주 확실치는 않지만…….'

그는 아쉬워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참, 이렇게 마무리가 되지 못한걸 보면… 유박사에게 분명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거야.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해서 이제야 나에게 전달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네. 그러니 무턱대고 까발릴 수도 없고, 참 난감하기 그지없네 그려.

그래! 먼저 이 메일의 예약 발송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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