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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과연 삶의 원초적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찌<제17회>)

by 허슬똑띠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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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34. 주점 / 저녁(계속)

(플래시 백)

은행에 들어가고 나서 인사를 하기 위해 한가람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이반.

(cut in)

신문사에 사직서를 내고 있는 한가람의 모습.

어느 건물로 들어서는 한가람. 입구에는 월간 프로파일러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사무실 내부)

한가람이 이반을 반갑게 맞이하며 응접탁자에 마주 앉는다.

한가람 아 그 은행에 들어갔어? 내가 알았다면 적극 추천 해주었을 텐데. 이부행장이 대학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야. (고개를 흔들며) 아니다. 네 자신의 능력으로 들어갔으니 괜한 얘기가 되었네

 

다시 주점 내부.

한가람 아 참 오늘 이반이 특별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으니 어머니는 안 오시는 편이 났겠구나.

이반 꼭 그런 거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계시면 아무래도 부담스럽죠.

한가람 그럴 것 같아. (다가온 여종업원에게 주문을 하면서) 그러면 오늘은 모처럼 이반과 오붓하게 술을 즐기도록 하지.

이반 네.

 

(인서트) 여종업원이 식탁을 차린다.

 

한기자와 이반, 서로 차례로 상대방의 잔에 술을 따른다. 그리고 가볍게 잔을 부딪친다.

 

한가람 (술을 들이 키고)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늘 너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 보인다.

이반 (고개를 돌려 술을 들이 킨 다음) 평생을 저로 인해 희생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결혼하면 아주 정상적인 가정을 꾸미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보은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가람 왜? 일이 틀어졌니?

이반 (고개를 끄덕) …….

한가람 음! 너에게 누가 상처를 주고 갔구나. 미안한 얘기지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찾는 건…….

이반 (말을 짜르 듯) 소다미는 저와 평생의 인연을 갖고 있는 아이예요.

 

(플래시 백)

서모아의 자취집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이반을 바라보고 있는 초등학생 소다미. 점차 희미해져 간다.

 

다시 주점 내부. 한가람이 술을 들이 키고 이반에게 잔을 건네준다.

술잔을 받는 이반. 손이 가늘게 떨린다.

 

한가람 너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거는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술을 들이 킨 다음) 우선 네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너의 행복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거지.

(이반을 바라보며) 그 다음은, 방금 말했듯이 너의 어머니에게 그 행복을 보여주어 보은을 하는 거잖아? 그러려면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 지는 자명해질 것 같은데?

이반 (잠시 침묵) 그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 없어요. 지금은…….

한가람 너는 소다미라는 한 인간에게서 또 다른 의구심의 공격을 받은 셈이야. 내가 전에 얘기 했지? 알 듯 모를 듯한 아주 작은 공격에도 너는 쉽게 상처받기 때문에 항상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그런데 지금 네가 얘기하는 사건은 거의 핵폭탄에 맞먹는 공격이기 때문에 네가 엄청 휘청거릴 수밖에 없겠지.

이반 (침통한 표정) 네, 사실 그래요.

한가람 (측은한 표정) 그것을 복구하자면 많은 시간이 걸릴 거야.

그러나 모든 생명은 원초적으로 자기 복구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그 원초적인 힘으로 순간순간 다시 충전하도록 해.

그래야만 자신을 옥죄고 있는 편협함을 초월할 수 있고 스스로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는 거야.

한 그루의 화초가 지난한 무더위와 거센 폭풍우를 견뎌내어 활짝 꽃을 피워 내듯.

이반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고 나서) 예. 잘 알겠어요. 그리고 다시 정신 무장하겠습니다. 항상 말씀하셨듯이, 이 세상에 대한 복수는 제가 아무런 탈 없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아주 정상적으로, 아니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더 정상적으로…….

한가람 (끄덕) 그래! 맞아! 치열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편협함을 초월할 수 있는 순수함에 대한 믿음.

이것이 네가 입은 상처들을 치유해줄 수 있도록 할 것이야.

 

주점 밖 거리.

택시 안으로 들어가는 한기자를 보고 인사하는 이반.

택시 내부. 택시가 출발하면서 뒤를 바라보며 이반에게 손을 흔드는 한기자. 얼굴이 다소 불그스레하다. 목적지를 기사에게 말하고는 등을 기대면서 눈을 지긋이 감는다. 택시 유리창으로는 차들과 아직도 많은 불들이 켜져 있는 건물들이 스쳐 지나고 있다.

 

S#35. 몽타주(한가람 기자의 회상)

한기자가 이반에게 줄 생일선물을 꾸러미를 들고 흥얼거리며 이화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대문 부근에서 댕기머리를 한 청년과 말을 하고 있는 이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댕기머리 청년은 키가 훌쩍 크고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었는데 얼굴이 길고 코가 무척 큰 것이 특이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이화가 화가 난 표정이었고 남자는 계속 애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한기자가 거의 다가 갈 때까지 실랑이를 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청년을 보고서 좀 떨떠름하게 다가가는 한기자.

 

이화 (화가 나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인줄 몰랐어요. (그제야 한기자를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아저씨 어인 일이세요?

(청년을 바라보며 소리를 죽여) 이제 그만 가보세요.

한기자 (손을 흔들며) 응! 이반 생일 선물 주려 왔어?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그러고 있어? (청년을 향하며) 이 분은 누구신가?

청년 (쭈뼛거리다가) 아 네. 이화씨 친구입니다. (당황하여)그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화를 바라보며) 미안! 가볼게요.

한기자 (떠나가는 청년을 바라보며) 아주 특이하게 생긴 청년인데! 누군가?

이화 올해 초에 복학한 선배인데 자주 따라다녔어요.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으나 이반을 생각하고는 거절했죠. 그런데 오늘은 집에까지 쫓아 온 거예요. 정말 제가 발가벗겨진 느낌이 드는 거 있죠.

그런 내 마음을 모르고 오늘 제발 부모님께 인사하도록 해달라고 사정하는 거예요. (한기자를 보며 무안한 듯) 죄송해요. 이렇게 까지 막무가내로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요.

한기자 (미안해하며) 아니 오히려 내가 미안한데. 혹 내가 방해가 된 거 아니야?

이화 (당황스럽게) 아니에요. (뺨이 약간 붉어지며) 제가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해요.

한기자 아냐! 들어가자고.

 

방안. 이화와 한가람이 자고 있는 아이 이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가람 녀석! 이화를 닮아 아주 잘 생겼어!

이화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한가람 그럴 거야. 날 때부터 건강했으니. (이화에게 윙크하며) 그만 가봐야겠다. 이화를 두고 가려니 발이 잘 안 떨어지지만…….

 

한가람이 돌아서자 이화가 뒤에서 그를 안는다.

 

이화 죄송해요. 맨 날 신경 쓰시게 해서.

한가람 (돌아서서 이화를 마주 안으며) 아냐. 우리 이화가 많이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잘 해 나가고 있으니 다행이야. (이화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편히 잘 쉬어.

이화 (더욱 그를 껴안으며) 그래도 불안해요. 아저씨가 항상 옆에서 지켜주셔야 해요

한가람 (그녀를 바라보며) 그럼~~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한가람이 포옹을 풀고 방을 나서자 내내 아쉬운 듯 그의 손을 잡고 잘 놓지 않으려 하는 이화.

한가람의 가슴도 뛰고 있다. 과장되게 울리는 두 사람의 심장 고동소리.

이화의 집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한가람의 발길은 무겁기만 하다. 집 앞에 서서 그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화를 자꾸만 뒤돌아보는 그의 얼굴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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