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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만만치 않은 상대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46회))

by 허슬똑띠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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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씨앗이 시작되던 순간

 

53. 조용희(계속)

 

경영연구원 작은 회의실 내부.

한기자가 녹음기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연구원과 마주보고 있다.

서로 명함을 나누며 인사를 하고 나서 한기자가 먼저 말을 꺼낸다.

"친구인 유진 사장이 죽고 난 뒤 유성 피시비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서… 결국 오늘의 엠그룹의 모체가 된 것으로 파악했는데…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유진사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성은철사장이 그 아들들의 후견인이 되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유진사장에게는 친인척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 날 두 형제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생사불명이었기 때문에 결국 유진사장의 재산은 모두 성사장에게 돌아갔을 겁니다.

이 것도 하나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은 공식적인 기록에는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비화라고 자신들을 추켜세운다.

한기자는 이 말에 맞장구를 침과 동시에 반대 논리를 편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겠죠? 적어도 이런 중견그룹을 이루었다는 것은 그만큼 수완이 좋았다고 봐야 되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이후 성은철씨는 부동산 등으로 재산을 불리고 나름대로 경제흐름을 잘 타서 기업을 크게 일으켜 나갔습니다.

여기에는 현 조용희 고문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매우 컸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성은철회장이 살인죄로 구속되었었죠?"

"예 맞습니다. 이 부분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건데… 역시 기자님은 다르시군요."

그러면서 웃음을 머금는다.

"유성에 관하여 신문기사 데이터를 살펴 보다 보니까 그게 튀어나오더라고요."

"일각에서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꼼짝달싹 할 수 없는 현행범이었으니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모두들 회사는 끝났다고들 했지요."

"그런데 엠그룹의 자체 그룹 소개책자를 보았더니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조용희씨가 오히려 기반을 더 튼튼히 한 걸로 되어 있더라고요."

"성은철씨가 그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조용희씨가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성회장이 감옥에서 죽은 후에는 오히려 고속성장을 질주했지요.

기업규모가 커지면서 수차례의 엠앤에이(M&A) 등을 통하여 그룹의 면모를 갖추어 갔는데…….

그 가운데는 정말 이해하지 못할 비즈가 여러 건 있었습니다."

 

조용희로부터는 한기자가 연구원에서 취재한 자료나 그룹의 안내 책자 등에서 소개된 외적인 얘기보다 진전된 얘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가 이왕에 들었던 얘기의 완전한 리바이벌일 뿐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한기자는 씁쓰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얘기의 마무리 단계에서 슬그머니 그가 맞추려던 초점의 한 부분을 꺼내었다.

"많은 얘기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엠그룹의 초석이 된 유진피시비 있잖습니까? 당초 그 회사의 설립자는 작고하신 성은철회장님과 유진이라는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

그는 짐짓 모르는 채 능청을 떨었다.

"유진이란 분은 왜 회사를 떠나신 건가요?"

그녀의 눈 꼬리에서 순간적으로 파동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한기자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조용희가 누구인가? 지금껏 보였던 그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역시 아무런 표정 없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 분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작고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이죠. 정말 안 되었죠.“

"네 그렇군요."

한기자는 한 수 졌다는 기분에 찜찜함을 버릴 수 없었다.

자신도 표정의 변화 없이 그녀의 방에서 나왔지만 무언가 자꾸 자신의 뒷덜미를 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 아무래도 잘 못 건드린 거 같은데. 보통 여자가 아니야. 한가람! 너 오늘 실수한 거야!'

 

한기자를 보낸 조용희의 표정은 매우 표독하게 달라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 주저거리다가 전화기를 들어 전화 상대방과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계속 자리에 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54. 모사

 

시외의 조용한 카페에 두 남녀가 들어선다. 성은철과 조용희다. 창가의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한 뒤 성은철이 담배연기를 후 뿜어대며 다소 걱정스러운 듯 말을 꺼낸다.

"어제 회계사를 만나보았는데 요즘 들어 유사장이 자꾸 자금에 대해 캐물어온다는 거야."

조용희가 성은철을 바로 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뭔 수를 써야 하는 거 아녜요?"

"글쎄? 생각 중이야.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그 말에 답하듯 조용희의 눈 꼬리가 치켜세워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게 생각이 있으니까요."

그녀는 다시 부드러운 눈빛으로 남자에게 아양 떨면서 말했다.

"그런데 우리 결혼, 서두르면 안돼요?"

남자는 귀엽다는 듯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호쾌하게 답변했다.

"걱정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해줄 텐데 뭔 걱정이 그리 많은가?"

교태가 가득한 눈으로 '알았어요.'하며 콧소리로 말하고 창밖으로 눈을 돌이는 조용희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계교가 척척 들어 맞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며칠 전 담당 회계사와 만나서 이미 조치를 했던 것이다..

회계사는 오래 전부터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제시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끽소리 못하고 수행하는 완벽한 협조자인 셈이었다.

그와 만나기 며칠 전에 그녀는 회계사를 단둘이 만나서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며 부탁조의 지시를 했던 것이다.

'성부사장에게 넌지시 귀띔해주세요. 요즘 유사장의 눈치가 이상하다고요. 그래야 눈치 없이 사장에게 엉뚱한 소리 못하지요.'

 

55. 복수

 

조용희는 다시 30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어찌 보면 그 사건이 오늘의 조용희를 있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완벽하게 처리되어 문제없이 30년을 지내왔는데 한기자를 만나고 나서는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아무리 대장부 같은 성격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묘한 감각 속에 숨겨져 있는 섬세한 여인의 느낌은 없앨 수 없는 것이었다.

 

가로등 몇 개가 어둠을 밝히고 있는 병원 건물 내의 간호보조원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조용희가 간호사 복장을 하고 앉아 있고 그 옆자리에 다른 간호사가 앉아 있다가 나가면서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되자 조용희가 전화기를 든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 임신 3개월 이래요."

놀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뭐라고?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어제 다른 산부인과에서 다시 확인했어요."

"그렇게 덜컥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결혼하면 되잖아요?"

상대방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결혼? 난 네가 그저 즐기자고 해서 응해줬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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