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56. 거리 / 늦은 저녁
지하철역 안. 퇴근 시간이라 상당히 혼잡하다.
개찰구 부근에서 이반이 흥얼거리면서 안내판을 보고 있다.
그 때 그의 뒤편으로 다가와서 그의 팔을 툭 치는 사람. 소다미 다.
이반이 반가워하며 개찰구 방향으로 가려 하는데 소다미는 이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이반 (의아해 하며)뭔 일 있어?
소다미 (심통 난 표정) 아까 정희하고 통화하는데 그러데요. 어제 아찌가 어떤 여자를 만나고 있는 걸 보았다구요.
이반 (소다미를 보고 웃으며) 저런! 그래서 오늘 내내 푹 가라앉아 있었나 보네?
소다미 그럼 아찌가 딴 짓 하고 있는데 마음 편할 사람이 어딨어요? 더구나 그 여자 멀리서 보아도 꽤 미인이라던데~~
이반 (정색하듯) 이래서 세상에 비밀이 없는 건가 보네. (다시 미소 지으며) 우리 쏘냐가 괜히 오해하지 않도록 자세하게 얘기해야겠네!
그러면 우리 덕수궁 한 바퀴 돌다가 갈까?
소다미 (주저하다가 마지못해) 그래요.
두 사람은 시청방향으로 향하여 을지로 지하보도를 걸어간다.
점점 멀어지면서 오버랩 되어 나타나는 땅거미가 내리고 있는 거리. 건물들과 차량들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도심을 밝히고 있다.
지하철역을 나오는 두 사람. 덕수궁 쪽으로 향해 걸어간다.
덕수궁 안. 꽤 많은 사람들이 가을정취를 느끼기 위해 거닐고 있다.
붉게 물든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
이반 떠빙하고 사모아가 자주 다니던 생음악 바 주인인데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와의 문제 때문에 온 거야.
소다미 (의아) 그런데 왜 근무시간에 아찌를 불러내요?
이반 당연하지! 야간에 장사를 해야 하는데 저녁시간 낼 수 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밤에 쏘냐 제쳐놓고 거길 가기도 그렇지.
소다미 에이, 그건 그 여자가 아찌를 좋아하니까 부러 만나려고 온 거 아니에요?
이반 글쎄? (놀리듯) 그럴 수도 있을지도? (심각하게 변하면서) 그런데 그보다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남자를 얼핏 보았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묘해. 그래서 두 사람이 제대로 맺어지려면 그 느낌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아야겠더라고.
소다미 (흥미로워하며) 집안의 원수지간 이라든가 그런 건가요?
이반 아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오히려 두 사람이 아주 가까운 혈연관계인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 거야.
소다미 요새는 동성동본도 결혼 가능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반 (미소) 아니 그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거든.
소다미 (놀라) 아니 그러면~~
이반 (손을 저으며) 그렇다고 너무 비약적으로 상상은 하지 마. 아직은 확실한 게 아무 것도 없으니. 그 남자는 재미교포라고 하던데 집안내력을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고 끝냈어.
소다미 (이반의 손을 잡으며) 헤헤~~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괜한 생각을 했네~~ 미안해요, 아찌!
이반 (다행스럽다는 듯) 우리 쏘냐가 기분이 도로 원위치 되었으니 다행이다. 난 쏘냐가 침울하면 겁나더라니까.
소다미 히히~~ (잡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 한 바퀴 돌고 나가요. 내가 저녁 살게요!
둘은 손을 계속 흔들어 가며 떨어지는 낙엽 속을 둥실둥실 떠가듯 걸어간다. 군데군데 서있는 가로등이 그들을 따뜻하게 비춘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지며 그들 주변에서 맴돈다.
카메라 서서히 빠지면, 두 사람의 모습이 멀어지면서 덕수궁 전체 야간 정경이 펼쳐진다.
S#57. 숲 / 새벽
아직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세상을 안개가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아파트 현관의 불빛도 옅은 안개에 싸여 침침해 보인다.
현관문이 열리며 소다미가 나타난다.
안개에 싸인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마치 남의 눈에 띌 새라 급하게 아파트를 벗어난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어제 온 메시지를 다시 확인해보는 소다미.
메시지가 크게 확대되어 나타난다.
'그리움은 그 그림자가 나에게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고 해서 전혀 엷어지지 않을 만큼 내 쏘냐가 언제나 그립다.'
휴대폰을 감싸 쥐며 코끝이 찡한 듯 코를 손으로 막는 소다미.
(Cut to)
숲에는 안개가 더 두텁게 감싸고 있다.
소다미는 팔을 활짝 벌리고 큰 숨을 들이 쉰다.
좁은 숲길을 걷다 보니 나뭇잎들에 맺혀있던 이슬들이 그녀의 머리와 몸으로 날려 떨어진다.
숲길을 걸으며 둘레둘레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가끔 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겨보기도 한다.
잠시 클로즈업 되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과 팔에 작은 물방울들이 땀처럼 송골송골 맺혀 있다.
카메라 다시 빠지면, 약간 트인 길에서 숲 속으로 들어가는 소다미.
발을 옮길 적마다 떨어진 이파리나 풀잎들이 사각거린다.
그러자 될 수 있는 한 소리를 죽이려고 살금살금 걷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더 뒤로 빠지면서 숲 속으로 들어가는 소다미의 모습이 흐릿하게 멀어지고 그 주변이 화면으로 계속 들어온다.
그 때 그녀 주위의 나무들이 조금 흔들리자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나타난다.
그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소다미의 뒤로 가까이 접근해간다.
소다미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 알아채지 못하는 듯하다. 갑자기 그림자가 낙엽 밟히는 소리와 함께 소다미의 등 뒤로 바짝 접근하더니 그녀를 뒤에서 포옹한다.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어머나'하고 놀라며 그 자리에 서는 소다미.
화면이 확대되면, 소다미를 껴안고 있는 이반의 모습.
그대로 석고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 잠시 후 이반이 소다미의 귀에 속삭인다.
이반 내가 이렇게 쏘냐를 잡으면 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
그러자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반에게로 돌아서는 소다미.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다. 역시 발갛게 달아오른 이반을 바라보다가 소다미가 포옹한다. 그리고 소다미는 눈을 감으며 살며시 자신의 입술을 그의 입술에 포갠다.
(인서트)
둘 사이로 아주 밝고 강렬한 빛이 퍼진다.
그 빛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두 사람.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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