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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이게 정말 꿩 먹고 알 먹고 구만!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58회))

by 허슬똑띠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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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살인사건

 

65. 죽음의 함정(성은철)(계속)

 

다음 날 오전, 밖은 화창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지만 두꺼운 커튼이 창밖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호텔 룸은 어두침침했다. 그나마 조도가 낮은 붉은 전구가 실내를 비치고 있어서 내부의 윤곽이 들어나 보이고 있었다.

침대에는 아직도 성은철이 이불을 덮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데 또 하나의 베게가 덩그러니 그의 베게 옆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선명하지 않은 상태로 흐릿하게 보인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흠짓 고개를 가로젓다가 그대로 멈추던 성은철이 다시 전화벨이 울리자 손를 뻗어 전화기를 잡았다.

비서의 모닝콜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송비서 입니다. 단 잠을 깨워 죄송합니다. 이제 천천히 준비하실 시간이 되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성은철이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깜깜한 것 같은데? 지금 몇 신가?"

"아 예, 8시 입니다."

"뭐? 벌써 그래 됐다고? 이거 참 이상한 일이고만. 알았네."

 

전화기를 내려놓고 상체를 일으키며 옆을 바라다보는데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자 않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불을 걷어 제치고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헉'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흐릿하게 나타나는 탁자 옆의 물체.

성은철은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그 물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데 환영이 아니었다. 벌거벗은 채 누어있는 여자의 모습이 아닌가?

가슴에는 깨진 와인 잔이 무자비하게 박혀있었다.

눈을 비비고 나서 다시 자세히 그것을 들여다보던 그는 다시 '흐억'하면서 침대에 털석 주저앉았다.

와인 병으로 머리를 가격당한 듯 여인의 헝클어진 머리에서 흐른 피가 바닥을 홍건이 적시고 있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깨진 병 조각들의 날카로운 부분들이 붉은 빛을 받아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성은철이 그 모습을 보면서 황망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탁자위에 놓인 두툼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비서에게 속삭이듯 지시했다. 잠시 후 '딩동 딩동' 하는 벨소리가 울리자 성은철이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고 비서를 들어오게 했다.

비서는 들어오자마자 기겁을 하고 얼굴을 외면하면서 문에 기댄 채 엉거주춤 섰다. 성은철이 '가서 경찰을 불러와' 라고 하자 비서가 튕기듯 나갔다.

비서가 나가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던 성은철이 굳은 표정으로 창가로 가더니 그녀를 외면한 채 커튼 앞에 섰다. 창에는 두꺼운 커튼이 닫힌 채 그대로 있지만 열 엄두가 나지 않는지 커튼을 만지작거리다 조금 벌리자 틈새로 빛이 들어 와 그녀의 발까지 뻗어 왔다. 그런 모습으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사이 성은철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 애인이 기다리고 있던 호텔로 와서 그녀와 함께 와인을 마신 것 까지는 생각나는데 그 이후로의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다.

 

갑자기 문 쪽에서 다시 '딩동'거리는 소리가 났다.

성은철이 조심스럽게 가서 문을 열자 정복 경찰 두 명과 형사 두 명이 들어 왔다.

정복경찰관과 형사 한명이 현장을 두리번거리며 탐색하는 동안 형사 한 명은 성은철에게 질문을 하면서 수첩에 기록했다.

다른 형사가 장갑을 끼고 주의 깊게 살펴가며 핀셋으로 병의 파편들을 하나씩 걷어내어 비닐 봉투에 남았다.

성은철은 질문을 하는 형사에게 손짓과 함께 인상을 써가며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형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고 난 뒤 미란다원칙을 말해주면서 성은철을 뒤로 돌려세워 수갑을 채웠다. 감식반원들이 도착하자 정복 경찰관이 성은철과 함께 나가고 룸에는 조사하는 형사들과 감식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호텔 룸에서 살인 사건의 조사로 부산한 그 시각, 고급 주택가에 들어 선 한 이층집이 보이고 정원의 나무에서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솟아 오른 해가 이 모든 것을 말없이 비추고 있었다.

그 집 일층에 있는 내실에서 조용희가 전신타월을 걸치고 막 욕실을 나왔다. 그녀의 몸매는 아직 20대 후반의 여성에 못지않았고 타월 사이로 보이는 피부는 아직도 탱탱하게 보였다. 그녀가 화장대 앞으로 가서 앉아 거울을 보며 커다란 숄로 머리손질을 시작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벨 소리가 울렸다.

서두르지 않고 한 손으로 타월을 추켜세우며 휴대폰을 집어 들자 전화기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완벽히 일 끝냈습니다."

조용희도 같은 분위기로 짤막하게 답변했다.

"수고 했어요."

휴대폰을 내려놓은 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화장대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흥! 출장가면서 계집애까지 데려가? 속이 다 후련하네. 눈에 가시 같던 고년도 고년이고 그 자식도 일거에 보내버리게 되었으니. 이게 정말 꿩 먹고 알 먹고 구만!"

이렇게 중얼거리는, 거울에 비친 조용희의 모습은 마치 피 묻은 인디언 도끼를 든 리지 보든 – 말리 해칫 – 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66. 범죄의 흔적(2)

 

한기자가 신문사 데이터 실에서 14년 전의 성은철 기사를 찾아보고 있는데 그해 3월 25일 자 사회면 톱기사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모 대기업 회장 성은철, 함께 투숙했던 젊은 여인을 살해한 혐의로 현장에서 긴급 체포.'

'여인은 성회장의 애인으로 밝혀졌다.'

'성은철씨는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는 것에 격분한 성회장이 홧김에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기자가 모니터 화면을 다시 스크롤 하자 10월 30일 자 기사가 나타났다.

'성은철, 오늘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이번 사건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 동안 성은철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왔다.'

더 추적해보자 마지막 기사가 모니터를 장식했다.

12월 25일 자 기사.

'성은철, 감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다.'

'감방에서도 자신의 결백을 계속 주장하던 그는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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