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사건수사?
66.범죄의 흔적(2)(계속)
취재실로 돌아온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 시각, 각종 컴퓨터 장비들로 꽉 들어 차 있는 비대위 합동수사본부 조사실 내부에는 여기저기에 많은 박스들이 사정없이 뜯긴 채 널려 있었다. 수사대원들이 자료를 검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원들 사이에서 가온과 다솜이 나란히 앉아 2대가 연결된 대형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때 다솜이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직접받아 보실래요?' 라면서 미소를 띠고 가온에게 건네주었다.
가온이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네 가리은입니다."
그러자 전화기에서 호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하! 저번의 추리도 가온씨 작품이었구만. 이제 보니!"
"아 한기자님이세요? 잘 지내시죠? 그런데 웬일이세요?"
"바쁘겠지만 저번 레지던트 행불 사건처럼 요번 건도 추리 좀 해줄래요."
"이제 보니 한기자님 덕분에 제가 윤경위님한테 한잔 잘 얻어먹은 거군요."
"그래? 저런… 그러면 내가 윤경위한테 보상을 해야겠고 만.
내가 이메일로 사건 개요를 보낼 테니 검토해보고 추리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줄래요? 이 번엔 내가 두 사람한테 한 턱 단단히 쏠 테니."
"네! 잘 알았습니다. 받아 보는 대로 그림을 그려보고 내일까지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그럼 부탁하네! 참, 윤경위 좀 바꿔줘!"
"예 알았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가온으로부터 휴대폰을 건네받은 다솜이 통화를 끝낸 뒤 가온에게 불쑥 얼굴을 내밀며 혀를 날름 거렸다.
가온이 '후후후'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다솜이 '왜 웃어요?'하며 옆구리를 툭 쳤다.
다음 날.
밤이 찾아오면서 창밖은 새카만 어둠으로 차있지만 수사대 조사실 내부는 휘황한 불빛으로 완전 한낮이었다. 많은 요원들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다솜이 건너편의 사람에게 무어라고 말하고 나서 가온에게 눈치를 했다.
잠시 후 깔끔하게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다솜이 가온의 팔짱을 끼고 들어갔다. 그들이 창가의 테이블에 마주 앉자 웨이터가 따라와 메뉴판을 건네며 그들 옆에 대기했다.
다솜이 자리에 앉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한기자가 나에게도 사건전말을 보냈던데 추리내용이 뭔지 궁금해서……."
가온이 웨이터에게 주문하고 나서 그제야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릴 참이었습니다."
"칫! 내가 나가자고 하니 그 때서야 겨우 일어 난 사람이. 이건 옆구리 찔러 절 받기네요."
"어? 어제 일찌감치 옆구리 찔렀잖아요. 그래서 늦긴 했지만 지금 절하는 건데."
"말 둘러대기는… 이러니 내가 번번이 당할 수밖에!"
"히히! 나는 다솜씨가 그런 표정 지으면 정말 귀여워 죽겠다니까요."
다솜이 가온의 얼굴에 주먹을 들이댔다.
"뭐라고요? 나를 그렇게 계속 놀려댈 거예요?"
가온이 재빨리 그 주먹에 입을 맞추고 나서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내가 못 당한다니까……."
그러면서 입을 삐죽하다가 결국 제풀에 미소를 짓고 말았다.
"자! 배가 고프실 테니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얘기합시다.
나는 다솜씨의 주먹키스를 받았더니 벌써 배가 부른 느낌이네. 하하하!"
"그래요? 그러면 다음부터 배가 고프면 말해요. 내가 주먹키스 먹여 드릴 테니!"
"황공하옵니다! 제가 앞으로도 계속 진력을 다하도록 하겠나이다."
"알겠소! 경만 믿겠소!"
이 말을 마친 다솜이 다소 멋쩍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깔깔대었다. 잠시 후 주문한 식사가 식탁에 차려지고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계속 했다.
"추가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는데, 경찰의 수사결과 내용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어떤 부분들인데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성은철이 과연 살인을 하였을까 하는 것인데요.
첫째는 대기업 회장이란 사람이 애인의 불륜을 듣고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대기업회장이란 배경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직접 나서지 않아도 비밀스럽게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건 내 생각인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 뭐 이런 상황은 아닌가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죠. 모든 상황은 다 고려해야 하니까요. 다만 첫 단추를 잘못 끼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요."
"오케이! 알겠네요. 다른 부분은요?"
"둘째는 왜 살인 즉시 신고하지 않았는가? 과연 비서가 전화를 했을 때 그 시각에 일어난 것처럼 꾸몄을까? "
"나름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한 건 아닐까요? "
"글쎄요? 사망시점과 신고시점 사이의 몇 시간 동안 성은철이 누가 침입했던 것처럼 꾸며놓으려 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정말 이해가 안가네요."
"취조과정에서 성은철은 그저 '자기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이걸 보고 경찰은 맛이 좀 가서 횡설수설하는 거 아니냐고 까지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정신감정까지 했다는데 완전 정상으로 나왔답니다.
이런 몇 가지 점들로 볼 때 성은철이 살인은커녕 살인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었지 않았나 하는 겁니다."
"아! 그런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또 다른 의문점은요?"
가온은 물을 한잔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또 다른 것은, 부검결과 여자의 성기에서 남자의 정액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건데, 이에 대한 사유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다는 것이죠. 물론 관계를 안 가진 건 아니었고요.
이것 또한 성은철이 몸을 온전하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경찰수사내용 상으로는 그가 술에 취해 제대로 정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그가 굉장히 술에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아귀가 안 맞죠.
마지막으로 살인무기에 대한 겁니다."
"아 이제 기억나는데요, 성은철씨가 그 포도주는 거래회사 사장이 보낸 거라고 했다던데요."
"네 그래요. 이점은 살인의 흉기가 다른 사람에게서 전달되었다는 것인데 보다 확실한 수사결과가 없어요.
다솜씨 말대로 죽은 여인이 거래회사 사장이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는데 경찰 조사결과 아무도 보낸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경찰은 이 부분도 성은철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본 것 같아요. 즉 아무도 보낸 사람이 없는데 성은철만 거래회사 사장이 보냈다고 우기니까 말이죠.
그러나 어째든 포도주의 출처를 보다 세심하게 추적했었어야 했다고 봅니다. 출처가 어디냐에 따라 제삼의 인물을 추측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실정황은 어떨까요?"
"분명 누군가에 의해 상황이 철저히 조작된 것임에 틀림없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추적해 나가봅니다.
내 생각은 성은철이 정사 도중 그대로 잠든 거라고 봐요.
그러므로 해서 그는 어떠한 정황파악도 안 되는 거지요.
바로 살인자가 노렸던 점이죠."
"그러면 가온씨는 누군가가 두 사람이 잠에 취하도록 만들었고, 그리고 잠든 사이에 그런 상황을 벌려 놓아 아얏 소리 못하게 올가미를 씌웠다는 거네요."
"바로 그겁니다. 내 생각에는 경찰이 그러한 상황을 상정해보긴 했겠지만, 워낙 뚜렷한 물증이 이를 차단시켰다고 봅니다.
또한 그 이면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지도 않았나 싶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잠들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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