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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다시 한번 날자꾸나! (아찌<제32회>)

by 허슬똑띠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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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77. 몽타주 (이반의 회상)(계속)

 

(여자의 음성) '세코날 마흔알을 흰 걸로 구했어!'

은성에서 신도호텔 살롱으로 가는 도중에 전혜린은 '세코날 마흔 알을 흰 걸로 구했어!'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몹시 달뜬 음성이었다. 소음과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그들은 약 한 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전혜린은 술을 꽤나 마셨고 취한 눈치였지만, 담배를 피우면서도 다리를 건들거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기분은 유달리 좋아 보였다.

10시쯤 되었을 때 전혜린이 홀연히 일어서더니 입구에서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사라졌다.

그것이 전혜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다음날 전혜린은 죽었다.

 

(Cut to)

아직도 완전히 밝지 않은 이화의 집 거실. 불은 꺼진 채이다.

거실 한 편에 붙어 있는 동그란 벽시계가 5시 30분을 알리고 있다.

 

이화 (소리) 내 아들 이반! 오늘은 새벽 운동 안가니? 벌써 30분이나 지났어.

 

대답하는 소리가 없자 머리를 매만지며 방에서 나오는 이화.

하품을 하며 아들 이반의 방으로 간다.

문을 똑똑 두드리지만 여전히 조용하기만 하다.

 

이화 (걱정스러운 듯) 내 아들 이반!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이제는 아예 문을 쿵쿵 두드리는 이화.

급하게 발길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갔다 열쇠꾸러미를 들고 다시 온다.

계속 이반을 부르며 떨리는 손으로 키를 찾아 꽂는다.

몸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키를 꽂아보려 하지만 자꾸 어긋난다.

겨우 키를 돌려 문을 여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이화.

 

이반의 방.

그의 침대 이부자리가 엉망이고 이불은 침대 아래에 반쯤 떨어져 있다.

침대에 누워있는 이반의 몸뚱이는 사지가 뒤틀린 모습이다.

방으로 뛰어 들어온 이화가 이반을 부여잡고 울부짖는다.

한참 정신을 못 차리던 이화가 이반의 상태를 점검해 보기 시작한다.

맥박을 체크하고 그의 코에 얼굴을 가져다 대본다. 그리고는 실성한 듯 일어서서 급하게 방을 나가는 이화.

 

거실 장식장 위에 놓여 있는 까만 색 전화기.

미친 듯 거실로 나온 이화가 와싹 전화기를 잡아들고 숫자를 돌린다. 크게 확대되어 보이는 그녀의 가녀리지만 하얗고 예쁜 손가락이 마구 떨려 숫자 돌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Cut to)

병원의 구급차 안. 내부가 몹시 흔들리면서 천정의 불빛도 껌벅거린다.

병상에 누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이반 곁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지켜보고 있다. 밖에서 들리는 울리는 구급차 소리가 이반을 부여안은 이화의 울부짖음에 묻혀간다.

 

(점프)

한기자가 운전하고 있는 차 내부.

백미러가 클로즈업 되면서 이화와 이반의 모습이 비친다.

뒷좌석으로 화면이 바뀌면, 이화가 이반의 손을 꼭 잡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이반을 바라본다.

 

이반 (작은 소리로 이화를 바라보며) 엄마! 미안해! (목이 메어 잠시 머뭇거리다) 왜 그렇게 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는지 나도 모르겠어.

이화 (그의 얼굴을 만지며) 왜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하던? (이반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봐!

이반 (눈물 어린 미소) 아냐! 엄마, 내가 사춘기가 되어서 그런 건 가봐. (약간 장난기 섞인 말투) 엄마를 생각했으면 이런 일을 못할 건데, 그 눔의 사춘기가 뭔지, 엄마조차 잊게 만드는 고만.

이화 (미심쩍은 표정) 정말이야?

이반 (확실한 표정) 그래! 엄마는 내 아들 이반의 말 못 믿는 적 없었잖아.

이화 (얼굴 펴지며) 그랬지! 내 아들 이반. 어째든 다행이다.

 

그러면서 이화는 자신보다 큰 이반을 자신의 무릎에 눕힌다.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화.

백미러로 그 모습을 보는 한기자는 '이반, 그래 내가 시킨 대로 잘 대답해주어 고맙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 역시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S#78. 몽타주 (이반의 회상)

 

신문사 앞 커피숍 내부. 창문 부근까지 뻗친, 키가 큰 나무의 잔가지가 바람이 불 때마다 유리창을 턱턱 쳐대고 있다.

반대편에 보이는 유리로 된 출입문이 열리면서 한기자가 이반과 함께 들어서고 있다.

 

창가의 자리에 앉은 한기자와 이반.

 

한기자 이반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벌써 1년이 거의 지났네. 세월 참 빠르다.

이반 네 그러네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게을러서~~~

한기자 청춘은 바빠야 하는 거야. 그래서 청춘이 좋은 거지.

이반 (다소 어두워지는 표정) 저에게는 청춘이라는 것이 참 무의미하네요.

한기자 왜 또 그런 생각을 하나. 전에 이반이 자살소동을 일으켰을 때도 얘기 한 적이 있었지? 불교에서는 사람이 한 번 태어나기가 백 천만 겁 년이 다 가도 어렵다고 말이야. 한 겁이 수억 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야.

그렇게 오랜 시간을 세상에 나오려고 기다렸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도 너무 아깝고, 그리고 기왕지사 그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났으면 포기를 버려야 한다고 말이야.

이반 아버님 같은 분의 얘기를 제가 어떻게 흘려들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정말 어려운 기회를 받아 태어났으니 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스스로 높게 대접하면서 성실을 다하자고 매일 같이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래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존재성에 대한 의구심이 너무도 저를 괴롭힙니다.

한기자 창의적 문제 해결방법인 TRIZ 21번의 법칙은 Rushing Through라고 하는데, 그 의미가 뭔고 하니 ‘유해하다면 빨리 진행하라!’ 라는 것을 의미하지. 몸에 단단히 붙은 파스를 떼어내려면 아프지? 어차피 아플 거, 단숨에 떼 내라는 거야.

나는 네가 일찌감치 자살소동을 일으켜서 이미 그 딱지를 후딱 떼어 버린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렵게 떼어낸 딱지를 네가 다시 붙이려 한다는 거지.

네가 출생의 비밀을 몰랐던 게 제일 좋았겠지만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그 아픔에 계속 연연하지 말아야 해.

네가 저질렀던 자살소동은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거꾸로 잘 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자고.

이반 …….

한기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정말 제대로 꿈을 키워 나가봐.

이반 저도 나름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주제를 알고부터는 꿈을 가질 수가 없어요.

한기자 또 그 얘기. 주제는 무슨 주제가 필요한 가. 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 유독 너 혼자만 그리 자신을 핍박한다고 해서 뭐가 좋을 거며, 뭐가 도움이 되겠는가 말이야?

이반 (자신 없어) 그래도…….

한기자 이런 낚시꾼이 있었단다. 큰 고기는 잡아도 놓아주고 중간 크기의 고기만 잡는 거야.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더니 자기 집의 프라이팬에 딱 맞추어 구울 수 있는 건만 잡는다는 거야.

이반 나름 합리적이네요.

한기자 그래, 일면 그 얘기가 맞는 듯이 보이지. 그러나 큰 고기의 경우 자기 프라이팬에 맞도록 잘라서 구우면 된다는 생각은 못한 거야.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불합리한 그런 사고에 집착하다 보면, 그 생각에 반하는 말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변명하기 바쁘게 되어 버리지.

그러면 도대체 보다 한 차원 높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어지는 거야. 결국 그 잘못된 생각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거지. 저 멍청한 낚시꾼처럼 말이야.

이반 제가 바로 그 낚시꾼이 되어버린 거 같아요. 그 생각을 담고 있는 그릇을 깨트리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한기자 당연하지. 그러나 그 틀이 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의 함정이 그렇게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니?

네가 날겠다고 해서 처음부터 훨훨 날 수 있을까?

먼저 일어서야지! 그리고 걸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이반 뛰어야 하겠지요. 날수 있는 양력을 얻기 위해서는요.

한기자 그래! 나는 이반이 훨훨 나는 모습을 보고 싶단다. 지금부터라도 힘차게 뛰어보지 않을래?

 

(Cut in)

푸르른 창공을 힘차게 날아 올라가는 한 마리 하얀 새.

 

화면위로 울리는 보이스 오버.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다시 한번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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