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
#4. 사무실 강유영사장의 방 내부 / 오전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서는 강유영. 40중반, 보통 키, 다소 둥근 얼굴.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작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낸다. 홀짝홀짝 들이키며 자리에 앉는다.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뒤적거린다. 무척 흐뭇해 보인다.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제리가 덤덤한 표정으로 들어와 책상 앞의 소파에 앉는다.
강사장 어서 오게.
서류를 놓고 와서 마주 앉는 강사장. 몇 번 두 손을 꽉 쥐었다 편다. 그리고 손바닥을 비벼댄다.
제리 일은 잘 되셨습니까?
강사장 (고개 끄덕이며) 자네도 야구 좋아하지?
제리 (뜬금없다는 듯) 네?
강사장 (회심의 미소) 야구에 빗대어 본다면.. 지금 기회가 한 경기에서 자주 맞이할 수 없는 무사 만루의 찬스이지 싶어.
제리 ..
강사장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막급일 거야. 무리하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서 서두르게 된 거야. 이런 찬스를 그대로 날려 보낼 순 없잖아?
제리 ..
강사장 그런데 말이야..
그러면서 다시 제리를 본다. 어색하기도 하고 약간 거북해 보이기도 하는 미소.
강사장 문제는.. 하필이면 그간 믿음을 보여주지 못한 타자가 다음 타석에 들어서는 형국이란 말일세. 그렇다면 작전의 변화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나? 이럴 땐 신인이라도 힘이 있는 타자가 필요한 거란 말이야!
제리 (애써 여유) 힘이 있는 신인이요?
강사장 (빙긋) 그 동안 애쓴 보람이 있어 그런 친구를 만나는 기회를 잡은 거야.
제리 협의가 잘 되신 모양이네요?
강사장 (자기 말에 빠져) 그래! 최소한 주자를 싹쓸이 할 2루타 정도는 칠 수 있는 타자를 만난 기분 일세.
제리 (주억거리며) ..
(인서트)
롱숏으로 보이는 관중이 꽉 들어찬 야구경기장. 전광판에는 9회말, 스코어 7대4, 무사 만루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타석으로 화면 이동하면.. 나왔던 타자가 도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곧이어 방망이를 휘두르며 다른 타자가 나온다. 잠시 후 타자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간다. 따~악 소리와 함께 와~ 하고 울려 퍼지는 함성. 그러나 총알 같은 타구는 삼루수 정면으로 가고.. 공을 잡은 삼루수는 루를 찍어 2루 주자 포스 아웃. 원 아웃. 재빨리 홈으로 공을 던져 삼루주자 포스 아웃. 투 아웃. 포수는 곧바로 1루에 공을 뿌려 타자 아웃. 스리 아웃. 곧바로 게임 아웃.
(다시 방 내부)
강사장 자네가 제안했던 방법 말인데.. 너무 소극적인 대응방안이야.
제리 제 뜻은 안전판을 마련해 가면서 진행하자는 뜻이죠.
강사장 돌다리도 두들겨 간다?
제리 (솟구치는 열 참으며)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강사장 기회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냐. 지나치게 돌다리만 두들기다 보면 일순 사라지는 게 기회라는 걸세. 때론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이 필요해!
제리 마치 '닥공' 전법 같네요.
강사장 닥공? (이내 알아차리고) 그런 컨셉트인 셈이지. 수비에 치중하는 거보다 많은 득점을 노리는 게.. 오히려 그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어.
제리 (한숨 쉬고 덤덤하게) 잘 알겠습니다. (싸하게) 선배님 말씀처럼 된다면야..
#5. 지하 주차장 / 밤
그리 밝지 않은 공간. 아직도 꽤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엘리베이터의 층 표시등이 꺼지며 출입문이 열린다. 여러 사람이 나온 후 제리가 뒤이어 나타난다. 엘리베이터 옆에 서서 사람들이 각각 자기 차로 가는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지켜본다. 차례차례 헤드라이트로 주차장 내부를 밝히며 나가는 차들. 다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서너 명의 남녀들이 내릴 때까지 서있는 제리. 그들까지 떠나고 난 뒤에야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딛는다.
차 옆에 다가간 제리가 다시 서성인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굳은 표정. 차 내부로 장면 바뀌면 멍하니 앉아 있는 제리. 자동차 키는 꽂혀져 있는데도 시동 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어폰을 꺼내 들고 휴대폰에 연결한다. 동시에 스크린 위로 경쾌한 리듬의 곡이 울려 퍼진다. 음악에 집중하는 제리. 찡그려진 표정이 다소 펴진다. 다시 주차장으로 화면 바뀌면.. 그 상태로 차에서 내리는 제리. 비상계단으로 향한다.
#6. 카페 내부
한두 사람만이 담소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 아담한 홀. 창유리에는 붉은 네온으로 그려져 있는 '칵테일 앤 비어' 글씨가 좌우로 뒤집혀 보인다. 출입문이 열리고 이어폰을 빼며 들어서는 제리. 입구 근처의 스탠드에 있던 20대 말의 귀엽게 생긴 여자 바텐더가 반갑게 맞이한다. 미소로 답하는 제리. 그러나 여전히 씁쓸한 여운을 풍긴다. 스탠드에 앉아 칵테일을 시킨다. 주문한 칵테일을 제리 앞에 놓은 바텐더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바텐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제리 같이 올 사람이 없네.
바텐 뭔 일이 있으신가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제리 (잔을 빙글 돌리며) 결단의 순간은 다가오는데.. 괜히 찜찜해서..
바텐 그러시군요. (말꼬리를 흐리다가 생각난 듯) 아까 책에서 본 건데요, 이런 순간에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네요.
제리 뭔데?
바텐 혹시 아실지도 몰라요.
제리 (농담조) 모르는 것 빼곤 다 알지.
바텐 호호.. 그러실 것 같아요. 저.. 버나드 쇼란 사람 아시죠?
제리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일랜드 출신이고 노벨상도 받고.. 음, 94세까지 장수한 유명한 극작가, 비평가?
바텐 (감탄) 어휴! 줄줄이 꿰고 계시네요!
제리 (한탄 조) 그런 사람 닮고 싶었는데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칵테일을 한입에 털어 넣는다. 바텐더가 한 잔 더 가져온다.
바텐 (빙긋) 전무님 같은 분이 그러시면 전 어떡하죠?
제리 아마 나보다 더 나을지도 모를 걸? 하하.. 그건 그렇고 미스공의 의중을 이제 알았어.
바텐 (궁금) 말씀해 보세요.
제리 묘비명에 쓰인 유명한 글 말하려 그러지? I knew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바텐 네 맞아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제리 꼭 나보고 (여자 음성 흉내 내어 나지막하게) '그처럼 한탄하기 전에 할 수 있을 때 후다닥 해버려!' (본래 음성)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바텐 (애교 섞인 목소리) 에이.. 제가 어찌 대놓고 그럴 수 있어요?
제리 하하! 그래 내가 대신했잖아! 덕분에 기분이 좀 풀어졌네.
바텐 (환하게 웃으며) 다행이네요.
제리 그와 비슷한 말도 생각나네.
바텐 저도 알아요!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거죠?
제리 (살짝 박수) 미스공도 아는 게 많네!
바텐 뭘요~ (애교 섞어) 전무님! 정말 지금부턴 갈팡질팡하지 마세요~~
제리 바로 그게 결론이네.
마침 중년의 두 신사가 들어와 안 쪽 스탠드에 앉는다. 바텐더가 제리에게 고개를 까딱하고 미소 지으며 그리로 간다.
남자1 (제리를 곁눈질하며) 미스 사이공! 요즘 좋은 일 있나 봐~ 갈수록 예뻐지니..
바텐 (빙긋) 사장님이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 보다. 칭찬도 다 하시고.
호탕하게 웃어대는 두 사내. 말없이 칵테일 잔을 드는 제리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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