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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화려한 유람선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꿈까지 꾸었으니 (DH바이러스(제6회))

by 허슬똑띠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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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박사와의 연결고리 인물 양휘윤의 희한한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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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원효로1가 주택가에 위치한 빌라 3층의 양휘윤 집으로 갔다. 여러 번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옆집 주인에게 물어보니 혼자 사는 것 같은데 일주일이 넘도록 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낌새 - 그게 무언지 감이 명확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 를 알아채고 잠적한 것 같았다. 걸어내려 오다 마고도가 우뚝 섰다. “당진병원으로 문병 와서 퇴원 수속하고 함께 나갔다는, 누구냐? 아! 신만오라는 사람 있잖아?”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장석이 수첩을 꺼내어 주소를 확인했다.

효창역부근 경의선 공사장 너머 삼거리 코너에 동네수퍼라는 가게가 보였다. 오장석이 음료수를 사면서 나이께나 든 남자에게 신만오씨 되느냐고 물었다. 오장석은 그의 얼굴에 경계심이 어리는 것을 보았다. 계산을 끝낸 다음 신분증을 내밀며 시간을 내줄 것을 요청했다. 예상외로 순순히 응한 그는 안쪽으로 아내를 불러 가게를 맡겼다. 세 사람은 인근에 있는 용산경찰서로 향했다.

신만오는 아무 것도 모른다며 잡아떼기만 했다. 오장석이 짜증을 내며 벌떡 일어나 나가버리자 마고도가 겁을 주었다. 유리배란 의사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양휘윤은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협조가 매우 긴요한데 잘못하면 생각지 못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때는 모두 신만오 당신 책임이다. 그는 이 말에 당황하더니 입을 열었다. 몇 개월 전부터 양휘윤이 돈을 헤프게 쓰는 것 같아 보였다. 만날 적마다 번번이 술사고 밥을 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 나가지 않은 지 한참 됐기도 했다. 암만해도 수상해 술자리에서 양휘윤을 족쳤다. 전에 받지 못했던 공사대금을 받았다고 했지만 받은 돈이 몇 푼 안 된다고 투덜댔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까노라고 내리 다그쳤다. 못 견디고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기가 막혔다. 연구에 도움을 주기위한 것이라지만 일종의 매혈 아닌가.

문득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행방불명됐다던 유리배라는 사람에게 피를 주었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통일이 아니라면서 당분간 잠적해 있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별 것도 아닌데 웬 난리법석이냐고 하다가 일순 겁이 났는지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향친구가 사는 가리봉동이 적절할 것 같아 당분간 그 지역의 고시원에서 지내도록 했다.

마고도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이 출발할 때는 오후 5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남구로역 부근에서 광명시 방향으로 언덕을 내려가다 마고도는 슬쩍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 있는 주유소에 들어가 주유기 옆에 차를 세웠다. 신만오가 아래로 더 내려가야 된다고 하자 다가오는 주유원에게 가득 채워달라고 하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차를 대놓고 걸어가면서 이 지역 위치를 파악해보려는 겁니다. 신선생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거죠.”

주유가 끝난 뒤 주유원에게 사정 설명하고 나서 주유소 구석에 차를 주차시켰다. 주변을 살피며 50여 미터 걸어내려 가자 중국말로 쓰인 빨간 색의 간판이 많이 눈에 띠었다. 도중에 마고도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우마길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외국의 장터를 방불케 하는 상점들이 죽 이어진 시장으로 들어섰다.

가리봉종합시장이라는 아치형 간판이 붙어있는 곳을 지나 이국풍의 가게들이 드물어진 삼거리에 도달했다. 신만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우측으로 방향을 정했다. 전방에 차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고가도로가 시작되는 대로로 나오자 신만오는 10여 미터 쯤 전방 좌측에 난 골목길 앞에 섰다. 그 끝에 세워져 있는 4층 건물의 상단에는 신풍고시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때마침 양휘윤이 먹을 것을 사들고 건물 앞에 나타났다. “헤이~~ 휘윤아!” 신만오가 그에게 외쳤다.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본 양휘윤은 반가워하며 오려다 주춤했다. 함께 있는 두 사람의 차림새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했다.

이후 우마길과 가리봉종합시장 등을 빙글빙글 돌며 추격전이 벌어졌다. 양휘윤이 어찌나 죽을 둥 살 둥 내빼는지 세 명이지만 쉽게 그를 잡지 못했다. 마고도가 별도로 움직이다가 휴대폰으로 전송받은 그 지역의 세부지도를 확인했다. 예상한 도주로에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가 코앞을 스쳐가는, 지친 듯 보이는 양휘윤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뒤 이어 달려온 오장석이 양휘윤을 붙잡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해댔다. “앗다, 당신을 보호하려왔는데 이렇게 엉뚱한 힘을 쓰게 하면 어찌합니까? 소문대로 무슨 정력제를 드셨나보네. 우리보다 더 팔팔하니, 이거야 원.” 그길로 서로 돌아와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네 사람은 조사실로 들어와 앉았다. 양휘윤은 1년 여 전에 당했던 교통사고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당진시의 신도시에서 공사한 대금을 절반 만 받고 나머지는 1년이 다 되도록 도급업자로부터 받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건축주에게 받으려 내려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명상을 입고 혼절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실에 실려 들어간 지 하루도 안 되어 멀쩡하게 깨어나자 병원에서 난리가 났었다. 양휘윤은 군복무시절에도 그런 적이 두 번 있었기 때문에 불사신이 된 것 마냥 우쭐해지기 조차했다. 금상첨화라고 이번 사고에서 깨어나기 직전 화려한 유람선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꿈까지 꾸었으니 앞으로는 아주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희망에 부풀었다.

여기에서 양휘윤이 물 한잔 들이키려고 말을 멈추자 오장석이 조급해하면서 한 마디 해댔다. “아니, 그 교통사고 난 것은 우리도 당진에 가서 확인한 것이고 그 뒤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러자 양휘윤이 그 교통사고 때문에 유리배박사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능청스럽게 말한 뒤 유리배와의 관계가 시작되게 된 사유로 들어갔다. 사고를 당한지 몇 주 지난 때였다. 제세종합병원 간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뜬금없이 생전 처음 보는 병원의사가 보자고 한다니 불안해졌다. “시팔 잡것. 여태 가만히 있다가 지금 와서 웬 난리야. 공연히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쭝얼쭝얼하다가 신만오에게 전화를 했다. “야! 사고가 난 후로 지금까지 후유증은 전혀 없었는데, 그 때 나타나지 않았던 뭔가 좋지 않은 게 지금에야 드러난 거 아냐?” 다소 떨리는 목소리였다.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며 신만오는 다음 날 아침 함께 병원으로 갔다. 그날 하루 종일 검진을 받았다. 검진이 다 끝나고 난 뒤에 유리배라는 의사가 삼일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삼일 뒤 간호사로부터 2시까지 유리배박사 연구실로 오라는 통지를 받고 가슴조리며 혼자 갔다. 유리배박사는 유달리 관심을 둘 만한 신체적인 특이점은 없다고 하면서도 혈액검사에서 분석 불가능한 인자가 발견되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눈길을 끄는 점이라 했다. 이것이 그의 체질을 변화시킨 것은 확실하나 외부에서 침투한 특이 물질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내부에서 돌연변이로 나타난 것인지 규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질이 변한 시기라든가 그 당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를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휘윤은 군복무시절에 있었던 사건 이후 그래왔던 것 같아서 그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신병훈련 후 지오피(GOP) 근무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아 졸병 때부터 철책선 경계를 서게 되었다. 사고가 나던 날 전반 근무를 마치고 취침하러가려는데 병력차출이 있다고 기다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재수 없게 거기에 끼었다. 병사들에게 삽 한 자루씩 주어졌고 철책선 안 강가에 반경 50센티미터, 깊이 1.2미터의 구덩이를 파라는 지시가 내렸다. 한 사람씩 차례로 철책선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30분 내로 작업한 뒤 신호가 가면 철책선 출입문으로 오라는 명령과 함께

강변을 따라 쌓은 제방 위에 설치된 철책선 안쪽으로 한 명이 들어갔다. 처음 철책선 안으로 들어왔던지라 신경이 곤두설 대로 섰으나 안성파리만이 대적할 수 있다는 그 지독한 임진강 모기에 물려가면서도 정신없이 땅을 팠다. 거의 끝나갈 무렵 천둥번개가 치면서 날씨가 급변하더니 급기야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철책을 바라보니 누군가 철책선 출입문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도 꿈인 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그런 일을 당했다. 노아의 홍수 때 마냥 쏟아지는 폭우와 어둠이 뒤엉켜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였는데 파낸 구덩이에 차오른 물속에서 희뿌연 괴물이 떠올라 기절초풍했다. 달아나려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목에 모기들이 물어뜯는 것 같은 따끔한 통증을 느끼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너무 놀랐기 때문에 그 모습을 또렷이 기억해 내기는 어려우나 물귀신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괴물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눈부시게 하얀 빛 속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 같더니만 이후로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것인데 벼락을 맞는 것을 본 근무자들에 의해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기절한 상태에서 완전히 죽었다고 할 수도 없는 식물인간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병원 관계자가 그의 처리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데 붕대에 가려지지 않은 부분의 화상이 깨끗하게 치유가 된 것을 발견했다. 놀라서 몸 전체를 조사해보니 화상부위가 약간의 흔적만 남긴 채 깔끔하게 치유되어 있었다. 그 때 양휘윤이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깨어나자 맨 처음 한 일은 귀신에게 물렸던 목 부위를 만져보는 것이었다. 외관적으로는 말짱한 듯 했으나 흔적 같은 것이 느껴져 기절초풍할 뻔했다.

“그건 벼락을 맞아 입었던 화상의 흔적이 아니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건 몰라도 물렸던 자리는 정확히 기억나던 데요 뭐.”

유리배는 그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비몽사몽간이었기 때문에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그랬지만 얼핏 한국전쟁당시 전사한 병사들의 넋이 살아서 떠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말했다. 덧붙여 그 괴물에 물리고 난 뒤에 번개를 맞았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어도 스스로 치유되어 살아난 것 같다고도 했다. 유리배는 그 뒤로 유사한 상황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후방으로 철수하기 한 달 전에 후임병사가 오발한 탄환에 맞았었으나 별 탈 없이 살아난 적도 있었다. 하나같이 억세게 운 좋은 놈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도 그랬으니 한 번 더 증명된 셈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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