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
#23. 사무실 내부 / 종일
천정의 형광등은 대부분 꺼져 있다. 제리가 안쪽 창가에 혼자 앉아 일을 하고 있다. 책상 옆에 있는 프린터에서는 연신 자료가 뽑혀져 나온다. 출력이 끝날 적마다 그것을 세심히 들여다본다.
(시간 경과)
제리가 전화통화하고 있다. 통화가 끝나자 바로 옆의 원탁에 앉아 자료를 뒤적거린다. 출입문에서 노크소리가 나고 20대 중반 여성이 들어오자 일어나서 손짓한다.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실루엣처럼 펼쳐진다. 사람만 바뀌고 연속되는 같은 장면이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 경과)
새침한 표정으로 일어나 인사도 없이 나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제리. 얼굴에는 실망과 고민이 그득 차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점으로 보이는 길가의 보안등.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서 어기적어기적 자료를 서랍에 챙겨 넣는다. 컴퓨터를 끈 다음 나갈 채비를 한다. 막 나서려는데 출입문에서 노크소리가 난다. 유리문 밖으로 가방을 메고 서류봉투를 든 여인이 보인다. 그를 보았는지 문을 밀고 들어온다. 길게 내려뜨린 머리에 단정한 옷차림. 30대 초반으로 보이고 생김생김은 수수하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여인 (머뭇머뭇하며) 혹시.. 직원 채용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제리 (내키지 않는 말투) 인터넷으로만 신청 받아요. 그리고 신청하신 분들 면접은 벌써 다 끝났구요.
여인 어머! 이걸 어째? (애원 조) 신청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직접 서류를 가지고 왔는데요, 어떻게 면접만이라도 안 될까요?
제리 (혼잣말) 이런 걸 두고 대략난감이라고 하나? 나이도 꽤나 들어 보이고.. 별로 인 것 같은데..
가타부타 말이 없자 그냥 안으로 들어와서 원탁에 얌전히 앉는 여인. '이거 봐라' 하면서도 별 수 없이 내키지 않은 몸짓으로 마주보고 앉는다. 제리를 유심히 바라보는 여인. 아기처럼 초롱초롱한 눈. 아름답다.
제리 (속으로) 눈은 참 예쁘네.
여인이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어 다소곳하게 제리에게 건넨다. 눈을 보고 나서 호기심이 발동한 제리가 선뜻 서류를 받는다. 사진 쪽에 눈길이 가자.. 화면 한 쪽에 꽤 매력적인 이력서의 얼굴사진 나타나고 실물과 대조되다 사라진다. 제리가 그녀를 곁눈질로 힐끗 본다.
여인 (눈치채고 눈웃음과 함께 재빨리) 좀 젊게 보이려고 사진을 뽀샵해서 그래요.
제리 (재미있는 듯) 뽀샵이라? (끄덕이며) 나이가..
여인 (말을 받듯) 사장님보다 두 살 아래지만.. 제가 나이 좀 먹긴 했네요.
제리 (놀라) 내 나이는 어떻게 알아요?
여인 (빙긋) 그런 것도 모르고 어찌 면접을 보러 오겠습니까.
제리 (농담조) 이거 어째 겁나는 사람한테 잘못 걸린 거 같다?
여인 별 농담을 다 하시네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많아 싫으세요? (당당하게) 오히려 사장님과 잘 어울릴 수 있지 않겠어요?
제리 (웃으며) 그럴 수도~~ 있겠죠?
여인 그 말씀 하시니까 사장님 참, 맘에 드네요.
제리 푸하하! 그런데 성이 특이하시네요? 별 성(星)자 성씨도 있나요?
여인 (무슨 소리냐는 듯) 그럼요~~
제리 예~~ 제가 무식했네요. 그런데 이름도 재미있네요. 바다 해(海)자에 새 조(鳥)자.
해조 멋진 이름 아닌가요? 성씨까지 합하면.. (시 읊듯) 별 바다에 떠도는 한 마리 외로운 새~~ 이런 뜻이랍니다.
제리 (수수한 그녀를 일별하고) 멋지긴 한데 혹시 꿈보다..
해조 (뾰로통하여) 해몽이라고요? 제 이름 가지고 놀리시는 거예요?
제리 (당황해서) 무슨 말씀을요! 그러다가 잘못하면 벼락 맞지요!
해조 깔깔.. 뭐, 벼락씩이나요.
제리가 기가 막혀 깔깔거리는 그녀를 바라본다.
제리 (속으로) 아니 한 두 살 먹은 것도 아니고.. 웃음소리 한 번 묘하네..
해조 왜 암말 안 하세요? 제 웃음소리 때문에 헷갈리세요?
제리 (당황) 아~~ 아닙니다. (정색) 그건 그렇고.. (놀라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시고 전자업체에 계시다가.. 특이하게 농업기술센터에서도 근무하셨네요?
해조 사장님이 필요로 하는 분야이지 않나요?
제리 (한숨) 네~~우리한테 딱 어울리기는 한데.. 넘 과분한 인재네요.
해조 (정색하여) 새로 출발하는 회사니까 더 필요한 것 아닌가요?
생각에 잠긴 제리의 표정에 장난기가 어린다.
제리 당장은 비서에다.. 또 재무와 기획도 맡아봐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해조 (눈을 예쁘게 흘기며) 아예 저를 채용 안 하려고 작정하신 것처럼 보이시네요.
제리 (실소) 풋..
해조 (덤덤하게) 모두 자신 있으니 맡겨보세요.
제리 (농담으로) 만일 그러지 못할 경우 즉각 강퇴 당해도 이의제기 없깁니다!
해조 (자신 있게) 그 정도까지 된다면야, 퇴출 뿐만 아니고 페널티까지 내죠, 뭐! 각서도 쓸 수 있어요!
제리 (속으로) 요것 봐라. 그래도 하는 짓이 밉지는 않네.
환하게 밝아지는 제리.
해조 그럼 거기에 걸 맞는 직책도 주시는 거죠?
제리 점입가경이시네요.
해조 점입가경? 그게 뭔 말이에요?
제리 (멍해서)..
해조 깔깔.. 뭐 그리 어려운 말 쓰시고 그러세요. 그냥 저를 대하면 대할수록 상대할 맛 난다~ 이러시면 될 걸..
제리 (어이없으면서도 장난기) 하하.. 네 맞습니다. 에따 인심 썼습니다. 창업동지라 할 수 있는데 부사장 하시죠!
해조 깔깔.. 그 정도까지야~ 그거 말고는 어떤 직책이라도 상관없어요. 대충 팀장 정도?
제리 하하..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시네요. 그럼 나와 함께 일해 봅시다.
이 말을 하고 나서 스스로 놀란다.
제리 (속으로) 그래! 뭐 어때? 생각보단 대단한 인물인 것 같은데. 이게 내 운명일 수도 있어. (해조를 향해) 힘들겠지만 이겨낼 수 있겠소?
해조 걱정 붙들어 매두세요.
제리 그럼 내 소개할 게요. 본명은 제리상인데, 어릴 적부터 하두 제리, 제리 하는 바람에 그게 친숙하니 앞으로 성해조씨도 그렇게 부르면 되요.
해조 (싱글싱글) 따~악 어울리네요. '톰 앤 제리'에서 나오는 그 제리! 귀엽고 깜찍한.. 그리고 재치 발랄한, 그쵸?
제리 허어.. 붕 띄우는 건 좋은데.. 이젠 성해조씨가 내 이름 갖고 놀리시네.. 하하하.. 이거 금방 복수 당하는데.
그러나 싫지 않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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