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꺼풀씩 벗겨져가는 실종사건 추적
5
경찰서로 돌아오면서 마고도는 생각에 골똘했다. 유리배의 연구목적을 밝혀내고 나니 진초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중 오회장이 했다는 잠꼬대가 자꾸 가시처럼 걸렸다. 분명 임종이란 단어가 자신의 사전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비록 잠꼬대이기는 했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말 아닌가. 양휘윤에게서 발견된 별종의 인자와 특이한 체질 등으로 감안해볼 때 이 말이 예사스럽지 않았다. 문제는 양휘윤이 같은 나이인 신만오보다 젊어 보이지 않는 점이다. 이는 그가 여느 사람처럼 늙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즉, 자가 치유기능이라든가 나아가서 불사 기능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별종의 특이인자가 불로의 기능까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유리배박사의 연구목적이 확연하게 드러나긴 했는데 말이야…”
마고도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오장석에게 그의 의견을 피력했다.
“좀 더 파고들면 단순히 자가 치유기능 만은 아닐 거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그거만으로도 끝내주는 거 아닌가요?”
“유박사 연구 목적이 바로 그 노친네 목적이란 걸 감안한다면, 젊음을 돌려다오라고 외치는 회장 할배가 그 정도로 만족할 것 같아?”
“그러긴 하네요. 그보다 몇 단계 위라면… 설마 불노장생 같은 거요?”
“바로 봤어! 진시황이 그토록 목매여 찾으려고 무진장 해를 썼던 불로초와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거, 그런 것일지도 몰라.”
“그런 이유로 해서 유리배씨가 납치되었다고 봐야겠군요. 그렇담 범인은 이를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도진우, 이익용과 양준서 이 중 한 명중에 있다는 건데…”
“양준서박사는 중간에서 다리 역할만 했을 뿐이니 해당 없다고 봐야할 것 같고, 아무래도 가짜 박사학위를 가지고 나타난 도진우와 그를 소개시켜준 이익용이 지금까지는 제일 유력한 용의자라 할 수 있지. 아니, 공범이면서 하수인이이겠지. 진짜 이번 일을 추진한 놈은 수면 아래에서 이들을 지휘하고 있으리라 생각되.”
“지금 당장은 떠오르지 않더라도 이게 세상에 나온다면 내가 유리배 납치범이요 하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 유리배박사가 자신의 연구 성과로 발표하면 그뿐이지 않겠어? 외견상으로는 연구와 관련한 합의서에 유박사에게도 많은 배당이 돌아가는 것처럼 하겠지만 실속은 그놈들이 거의 챙기겠지.”
“따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말이야,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이 게 효능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 유리배씨가 기분이 좋았다가 최근에 가라앉았다던 진여사 얘기로 미루어 볼 때, 또 양휘윤씨가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늙어간다는 사실 등으로 보건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진여사 얘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양씨가 늙었다는 건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보입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건가요?”
“예기치 않게 현대판 티토노스가 탄생하는 거 아니겠어?”
“티토노스요?”
“티토노스는 아주 잘생긴 덕분에 신화에서 나오는 새벽의 여신 애인이 되었지. 그 여신 때문에 영생을 얻기는 했는데 실수로 젊음은 유지 못하게 된 거야. 그러니 죽지는 못하고 결국 늙어 쪼그라들어 소리만 남아 귀뚜라미가 되었다고 하더라고.”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니?”
“사람이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이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면서부터 소원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죽지 않아봐라. 수십 년도 못가서 전 지구를 뒤덮는 사람들 때문에 서로 치여 죽는 생지옥이 될 거야. 더더군다나 노화는 끊이지 않고 진행된다면, 이건 진짜 생지옥보다 더 한 거 아니겠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설마한들 그런 식으로 만들어 내지는 않겠지요?”
“그러기를 바라야겠지만, 빨리 무대 뒤편에 숨어있는 그 놈을 잡아서 그 연구 내용을 확인해보아야 돼!”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을 심각하게 바라보다가 오장석이 근심스럽게 제의했다.
“이거 먼저 위에다 보고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건 사적인 생각이니까 일단 이 부분은 제쳐두고 전반적인 사항만 브리핑하자고. 이번에 이익용부회장이 거간꾼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니 앞으로는 그 뒤에 과연 누가 있는 가를 추적해보는 거지. 그전에 양휘윤 보호를 공식적으로 요청해두고. 그 양반을 노리는 놈들이 또 있을 수 있으니까.”
경찰서에 돌아오자마자 수사한 내용과 그들의 의견을 곁들여 보고했다. 과장은 행방불명 건이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에 다소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수사방향에 대해서는 선뜻 의견을 같이했다. 즉각 이익용을 감시할 인원을 배정해주었고 양휘윤에 대한 보호감시에 들어갔다. 그 사이 도진우의 학위에 대한 조회가 왔는데 가짜였다. 이로서 유리배의 연구 활동을 목전에서 감시할 임무를 띤 도진우를 유리배에게 붙이기 위한 아주 철저한 이면 작업이 있었던 것이 확연해졌다.
두 사람은 이익용에 대해 탐문조사에 나섰다. 요행히 오장석의 선배인 그룹 기획팀장으로부터 몇 가지 정보를 입수했다. 이익용이 그룹 건설회사 사장이었을 당시 조직폭력배와 거래를 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수주에 성공하면 이들에게 의뢰하여 대항하는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쫓아내도록 했고 대신 철거 이권을 주었다. 철거업자를 위장한 조폭두목은 이춘용이었는데 이익용의 고향후배라고 했다. 이익용은 이렇게 실적을 쌓아 오회장의 신임도 얻었다. 그 뒤 그룹 일에 이춘용을 계속 이용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돌아와서 이춘용에 대한 과거 기록을 조사해보았으나 15년 전에 총기밀매입 건으로 추적을 받다가 사라진 후부터는 아무런 관련 정보가 없었다. 당시 그를 추적했던 대선배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몇 년 전에 은퇴하고 나서 고향인 가평으로 내려가 자신만의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독고영씨를 찾아갔다. 여러 가지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200여 평 남짓한 채소밭 옆의 나무 그들에 만들어 놓은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수박화채를 먹으며 과거 얘기를 들었다.
작은 폭력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던 이춘용은 철거사업에 손을 대면서부터 사업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많은 자금을 끌어 모았다. 이익용의 도움이 컸던 것은 사실이나 일시적인 것 같고 자신이 워낙 영리했다. 그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다른 작은 조직들을 야금야금 삼켜가면서 지하경제의 파이를 불려갔다. 이와 함께 돈 되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조폭들이 대개 그렇듯 대표적인 것이 마약이었다. 불법자금을 동원한 알짜기업의 M&A를 통하여 자금을 빼내기도 했다. 또한 정상적인 사업가 마냥 보이기 위해 해외로부터 명품을 밀수하여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유통시켰다.
“이놈이 웃긴 건, 다른 조직과 전투할 적마다 항상 쌍권총을 들고 나온 거야. 마피아를 흉내 냈겠지. 그 총이 가짜라는 소문도 들렸지만 그 때문에 조폭세계에서는 건파이터라 불리기도 했다는 군. 여하튼 이상하게 다른 조직들이 죽을 쑤었어. 몇 년도 되지 않아 전국을 평정하다시피 했지만 총기 사용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한없이 통할 리 만무지.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던 참에 겁도 없이 러시아인들과 총기매입 상담을 하다가 부하의 밀고로 들통이 났어. 다 잡혔는데 웬걸, 그 놈만 귀신처럼 빠져나가버려 체포하지 못했어. 그 뒤론 여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군. 외국으로 뺑소니쳐서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은 종종 들리기는 했지만 말이야.”
대선배는 이 말로 이춘용에 대한 설명을 끝냈다.
돌아와서 사건의 성격과 관계된 인물들을 모아두고 종합적으로 정리하던 마고도는 문득 진초희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를 만나보기로 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자 그녀는 흔쾌히 그 부근으로 가겠다고 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서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중형 국산 승용차가 다가왔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며 진초희가 손짓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수수한 차림이었다.
그리 멀리 않은 한적한 한방 찻집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그녀는 차가 놓이는 동안 보고 싶었는데 전화를 먼저 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와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난감해서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자 부끄럽다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다음 만날 때까지 기억해 내지 못하면 벌을 주겠다며 농담조로 말하고 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유리배가 행방불명된 데에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그동안 가슴이 아릴 정도로 고민했었다고 했다. 기어이 마고도와 인연을 맺은 날을 기억해내고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여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전화를 해주었다면서 이런 것이 바로 이심전심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 말에 어리둥절한 마고도를 그윽이 바라보며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밝혀나갔다.
그녀가 김경진사장의 도움을 받아 화단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동안 지내온 기막힌 삶의 이야기를 듣고는 위로의 뜻인지는 몰라도 김경진이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20여 년 전 상당히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데 멋진 남자를 만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고 지금처럼 안정되게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캐나다로 투자이민을 가서 국내외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스티브라고 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소개시켜 줄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그다지 의향이 없는 것 같아 그 뒤로 그에 대해 언급조차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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