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순간에 드러난 마고도와 박단미의 과거사
6
며칠 뒤였다. 그날은 심상치 않은 점이 있어 늦게까지 동향을 살피다가 별 소득 없이 철수했다. 교통 정체가 여전히 풀리지 않아 복잡하자 우회하는 도로를 택했다. 가로등의 불빛은 흐릿했으나 통행하는 차량이 별로 없어 시원스레 달릴 수 있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가고 있는데 저만치 반대편 차선에서 오고 있는 거대한 트럭이 왠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맨 우측 갓 차선에 붙는 데 급작스럽게 트럭이 중앙차선을 넘어 더욱 가속하면서 정면으로 달려왔다. 바로 뒤 따라 오던 차가 놀라서 반대편 차선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달려온 차와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마고도는 재빠르게 최대한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온 트럭이 승용차 뒤 부문을 그대로 들이받는 바람에 보도로 튕겨나가면서 전복되었다. 아랑곳 하지 않고 트럭은 빠른 속도로 줄행랑을 쳤다. 이 광경을 보고 갓 차선에 정차한 차들에서 사람들이 나와 충돌된 차량의 사람들을 구호했고 일부는 전복된 마고도의 차량으로 달려왔다. 그 때 조용하던 차의 문짝을 밀어제치는 소리가 나면서 여기 저기 부상을 입어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이 누운 상태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도착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병원에서 나란히 누어 치료를 받고 있던 두 사람은 과장과 동료 형사들이 조신하라면서 나간 뒤 서로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야, 이만하기를 다행이다. 그래도 그 놈 우릴 완전 박살 낼 생각은 아니었나 보네.”
마고도가 속도 없는 사람처럼 말하자 오장석이 기가 막힌 듯 했다.
“아니 도대체 뭔 말씀입니까? 그놈 인상을 보니 귀차같이 아주 단단히 맘먹은 것으로 보이던데요, 뭐. 전 속 터져 죽겠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도 그 녀석 얼굴 볼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한 짱돌일세 그려.”
“에구 별 농담도… 한데 말입니다, 도대체 웬 놈일까요?”
마고도는 겁을 주어 수사를 방해하려는 짓이 빤한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오장석도 번호판을 인식 못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아 추적은 어렵지만 이런 협박이 스티브나 김경진의 교사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라고 했다. 마고도는 그들이 수사망이 자꾸만 좁혀지자 두 사람의 목숨까지 가져가겠다고 대놓고 협박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하자 오장석은 그놈들이 그래봤자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천명했다.
위협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김경진과 이익용의 주변을 탐문조사 했지만 웬일인지 이들은 꼼짝 달싹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마고도는 고민 끝에 과장과 상의했다. 유박사가 개발하던 것의 문제점 여부를 간접적으로나마 분석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니 양휘윤의 혈액을 채취해서 이 분야의 의학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요구한 조치가 신속히 시행되었다. 마고도는 혈액 전달과정에서 일부를 슬쩍 빼돌렸다. 다른 루트를 통해 분석해보기 위해서이다. 이를 박단미에게로 보내기 전에 먼저 실상을 말하고 협조를 구해야 했다. 마고도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단미, 나야 나!”
“나야라는 사람 난 모르는데요.” 덤덤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왜 이러시나.”
“흥, 날 피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다정스럽게 군다고 내가 통할 것 같아?”
“그러지마, 나 지금 피눈물이 날 지경이야.”
“여전히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천연덕스레 말 하는 것 좀 봐. 피눈물이 나긴 뭐가 나. 나에게 그따위로 해놓고 그런 말이 그렇게도 자연스럽게 나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들일 테니 내가 긴급하게 보내는 것을 잘 분석 좀 해줘. 이는 국가 비상상황이라서 그래.”
“언제는 비상 상황 아니었남.” 이 말을 남기고 전화가 뚝 끊겼다.
‘그래, 말은 그래도 말귀는 알아들었을 거야.’ 마고도는 씁쓸한 표정을 재빠르게 지웠다. 그녀와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던 오장석이 빙그레 웃었다.
“누굽니까? 혹시 숨겨둔 애인? 드뎌 형수님을 만난 겁니까?”
“형수는 무슨 오그라져 뒈질 형수냐!” 마
고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여태 팀장님이 여자랑 통화 하는 것을, 그것도 제 앞에서 그런 걸 생전 보지 못했거든요?”
오장석은 아랑곳없이 그 여자가 누구냐고 끈질기게 보챘다. 성화에 못 이긴 마고도는 마지못해 그와 박단미의 과거사를 무덤덤하게 털어놓았다.
마고도와 박단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기 수련회에서 만나 사귀어 왔다. 몸매도 늘씬한데다 귀여운 얼굴에 오뚝한 코와 큰 눈을 가진 그녀에게 마고도는 처음 본 순간부터 푹 빠져들었었다. 단미가 일반대학에 들어가고 마고도가 경찰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둘 사이는 변함이 없었고 함께 기 수련을 계속 하면서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섭렵했다. 마고도가 이학년 때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위험에 처해있던 사람을 구하려다 거꾸로 모함에 빠지는 바람에 이를 무마하는 조건으로 경찰대학을 자진 퇴교했다. 그 뒤 병역을 마치고 남국대학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경찰간부후보시험에 합격, 경찰생활을 시작함으로서 당초의 꿈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단미가 연구소 업무에 바빴고 그도 경찰업무에 충실하다보니 생각지 않게 소원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대를 퇴교하고 입영할 때부터 자괴감 때문에 마음의 부담을 느껴왔던 마고도는 이를 핑계 삼아 부러 그녀를 피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나 어째든 그녀 마음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한번은 그녀가 사나운 폭풍을 몰고 나타날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다른 날과 달리 묘한 기분이 전해왔다. 주춤하다가 단박에 알아차렸다. 단미에게서만 풍기는 고유한 내음과 함께 심장의 고동 소리까지 느껴졌다. 그녀는 기를 차단하기는커녕 일부러 더 세게 내뿜어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귀가하는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정면에 턱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민망도 했다.
“왜 날 피하는 건데?”
그녀는 쌍심지를 돋우고 쌀쌀맞게 물었다.
“널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야.”
“흥, 번지르르하게 거짓말 하는, 저 뻔뻔스러움 좀 보소!”
“사실 난 네가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지나 않을까 걱정됐고 그게 부담스러워서…”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바쁜 척하는 내가 싫어진 것 아냐? 하지만 나도 섭섭해. 마고도에 대한 이 뜨거운 마음이 식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거든! 그런 걸 꼭 말로 표현해야 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냐고?”
“내가 왜 그걸 느끼지 못하겠어. 가슴 아플 정도로 느끼기 때문에…”
“그딴 식으로 말 돌리지 마! 왜 그리 속이 좁아? 너를 대하는 내 태도가 못 마땅했다면 못 마땅하다고 말하면 될 것이고, 그게 그다지도 못 마땅해서 끝장내려 한다면 당당하게 끝내자고 하던 가 할 것이지, 도대체 뜨뜻미지근하게 이게 뭐냐고? 천하의 마고도가 기껏 이런 인물뿐이 안 되었어? 원한다면 끝내자는 말 들을 필요도 없어. 내가 끝내지 뭐.”
그녀는 마고도의 뺨을 모질게 쳤다.
“이 정도면 되겠지?”
획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나가는 그녀를 마고도는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황당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자의 그런 행동은 기다리겠다는 의미 아닙니까?”
얘기가 끝나자 오장석이 나름의 논리를 폈다. 마고도는 이렇다 저렇다 대꾸 없이 허허허 웃기만 했다.
박단미가 말귀를 알아먹었을 거라는 마고도의 예상이 맞았다. 양휘윤의 혈액을 긴급히 보내고 난 뒤 3일이 채 못 되어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대학교 미생물연구소에서 다소간 떨어진 한적한 곳에 도착한 마고도는 십여 미터 전방에 정차되어 있는 차로 향했다.
“대관절 이런 건 어디에서 구한 거야?”
조수석에 올라타자 박단미가 그를 바라보지도 않으며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마고도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 피가 양휘윤이라는 돌연변이 괴물 거란 말이야?”
그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왜? 진짜로 다른 사람과 완전히 다른 거야?”
“처음에는 사람 피 같지 않아서 마고도가 얄궂은 장난을 치나보다 오해했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 혈액이 맞긴 맞더라고. 흥미가 생겨 며칠 잠 못 자고 매달려서 분석해 보았어. 유리배라는 사람이 검사하면서 놀랐다고 했던 거처럼 일반인들에게는 존재하기 않는 괴상한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바람에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상처 난 부위의 세포조직들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흡사 부상당한 외계인의 상처가 스르르 자동으로 낫는 것처럼. 초점은 마고도가 참고로 언급했던 불로장생의 기능 여부에 맞춰졌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이것이 수명을 무한정 연장시키는 역할까지 할지는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이 바이러스가 활동하는 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해도 천천히 원상태로 회복되므로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진짜, 진짜 대단해.”
마고도는 설명을 듣고 흥분해서 말했다.
“나는 이것을 잠정적으로『DH바이러스』라고 명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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