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스토리

고마워요. 기억해주어서. 전 고도씨를 사랑할 거예요. (DH바이러스(제18회))

by 허슬똑띠 2022. 11. 27.
반응형

 

태양그룹의 상속에 대한 음모의 배후?

 

10

당국에서는 사이영일파를 소탕하고 불사약 제조 기술도 되찾자 바이러스나 미생물계의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목표는 DH바이러스의 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역바이러스의 개발이었다. 좀비환자들에 대한 추적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한번이라도 좀비환자들의 흔적이 나타난 지역에서는 진통제의 제공이라는 유인작전을 통하여 이들의 노출을 유도했다. 면밀한 수색작전도 뒤따랐다. 간혹 예상치 않았던 성과도 거두었다. 험한 산골짝의 동굴을 수색하던 팀들이 좀비환자들의 핵심인물들을 대거 생포했던 것이다. 이들은 동료좀비환자들에게 날조된 유언비어를 주입시켜가며 저항하도록 유도해왔다. 거의 대부분의 좀비환자를 찾아낸 것으로 추측은 했어도 출몰지역을 중심으로 한 수색작전은 계속되었다.

 

이 무렵 진초희는 오회장의 장남과 상속시기 등을 논의했다. 차남은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영주권까지 받고 눌러앉았다. 오회장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상속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장남은 진초희보다 나이가 많았으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유언장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변호사 입회하에 유언장을 개봉하는 날짜도 정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변호사와 이를 논의하고자 했는데 속마음을 알고 있기나 한 듯이 변호사가 집으로 찾아왔다. 오회장이 맡겨서 보관하고 있다는 유언장을 들고 온 변호사는 오회장이 사망하기 얼마 전에 찾아와 유언장을 새로 작성했는데 그녀에게 전 재산의 90%를 상속해주는 것은 물론 그룹의 경영권도 물려주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도무지 석연치 않아 유언장의 공개를 당분간 미뤄두라 하고 그것을 들려 보냈다. 그녀에게는 그 변호사 입회하에 오회장이 직접 쓴 뒤 서명했고 변호사가 이를 입증해준 유언장이 있었다. 회장이 이 유언장을 놓아두고 자기에게 일언반구 없이 다른 유언장을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룹을 장남에게 물려준다는 회장의 뜻은 당초부터 확고부동했었다. 아무래도 변호사가 교묘한 장난질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유리한 조건이므로 이의 제기 없이 그대로 받아드리리라 자신하고 있는 듯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마고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당장 마천동으로 갔다. 미리 파악해둔 마고도의 집 부근으로 가서 기다렸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차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주저하던 끝에 대문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예정된 방문객이 있는 것 마냥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덜컥 대문이 열렸다. 놀라움과 착착함이 뒤섞인 그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애인이 오기라도 했는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멋쩍어졌다. 그것도 찰나였다. 미소를 머금으며 들어오라는 그의 부드러운 말에 어색함이 싹 사라졌다.

 

“축하해요. 그 동안 너무도 수고 많으셨어요. 방금은 숙녀를 마냥 현관에 세워두려나 조마조마했어요.”

안으로 안내하는 그의 코앞에 마주서서 서운했음을 밝혔다. 마고도는 당황스러운 듯 허리 숙여 사과하고 거실의 소파로 안내했다.

“혼자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굉장히 깔끔하시네요.”

안으로 들어와 거실을 둘러보며 진초희는 놀라워했다.

“제가 워낙 성격이 못 돼 먹어서요.”

마고도는 씩 웃었다. 그녀가 커피 한잔 얻어 마시러 왔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자 마고도는 그 정도는 문제없다면서 주방으로 갔다.

 

주방 탁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마고도의 한 손을 잡았다. 자기를 똑바로 보라고 하면서 누구인지 정말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살짝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던 마고도가 흠칫 손을 뺀 후 어색하게 웃으며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쉬운 눈초리로 마고도를 바라보던 진초희는 그가 자신을 기억해주리라 얼마나 기대하고 많이 기다렸는지 모른다면서 옛날 자신에게 벌어졌었던 사건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불어 닥쳤다. 바람에 날려 온 종이쪽지와 먼지 때문에 얼굴을 가리면서 이를 피하려다가 공사 중이던 건물 옆의 지반이 함몰되어 생긴 깊은 구덩이로 떨어져 기절했다. 3월 중순이었지만 날이 저물어가면서 날씨가 쌀쌀해졌다. 다행인지 몰라도 초등학교 3학년생인 마고도가 가지고 놀던 공이 그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그녀를 발견했다. 마고도는 먼저 주위 사람들에게 사람이 빠졌다고 외치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녀가 기절한 것을 알고 사람들이 오기 전에 3미터 정도 되던 구덩이 안으로 용감하게 들어갔다.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피가 나는 것을 손수건으로 지혈해주었다. 그 외에는 부상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입고 입던 옷을 덮어주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조금이라도 체온을 덥혀주기 위해서였다. 어른들이 사다리를 가지고 달려와 그녀를 구덩이에서 들어내어 구급차에 실었을 때 정신을 차렸고 마고도가 자기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난 후 주변사람들에게 그 아이의 신상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아쉬움과 더불어 아이의 이미지를 가슴에 묻어두었다.

마고도는 비로소 당시를 기억해냈다. 너무도 예쁜 누나라서 도리어 생각이 안 났던 것이지도 모른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당시 할머니 집에 놀러왔다가 그녀의 사고를 목격했던 그는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갔으니 그녀가 찾아 낼 수 없었던 이유였다.

 

진초희는 한껏 밝게 웃고 나서 유언장 때문에 있었던 일을 말하며 마고도의 의견을 물었다. 마고도는 먼저 이익용을 심문하여 알게 된, 스티브라는 자의 정체에 대해 소상히 말해주었다. 다음으로 스티브가 김경진으로 하여금 진초희를 오연근회장에게 소개하도록 한 이유도 설명했다. 목적은 오회장이 경영하는 그룹을 탈취하여 대외적으로 흠이 없는 조직의 간판으로 내세우려함이었다. 이를 위해서 진초희로 하여금 오회장 재산을 거의 통째로 상속이 되도록 유언장을 변조하는 모사를 꾸몄을 것이며 사이영에게 매수되었을 변호사에게 그 일을 시켰을 것이다. 그녀는 놀라워하면서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인지하게 되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마고도는 안타깝게도 이번 소탕작전에서 스티브를 놓쳤고 행적조차 깜깜하니 여전히 조심해야할 상황이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곰곰 생각하더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말을 꺼냈다. 꽤 오래 전이기는 한데 김경진이 휴대폰으로 스티브로 여겨지는 사람과 통화하면서 ‘이태원이요? 괜찮을 것 같네요.’ 하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마고도는 어쩌면 생각지 않게 값진 정보일 수도 있다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늦은 밤에 미안했다며 일어섰다. 현관 입구에서 신을 신으려다 말고 돌아서서 배웅하려 서있는 마고도와 마주섰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농담 섞인 말을 했다.

“어린 고도씨에게 구원받았을 당시의 추억이 환하게 밝혀지자 왠지 모르게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더라고요. 그러면 당신을 꼬마신랑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 까 해서요. 그래서 마지막 부탁이 있어요. 거절하시면 안 돼요. 절 그 때처럼 안아주세요.”

그녀의 부탁은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기도 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꼭 품어주었다. 동시에 기억 속에서 당시 그녀의 몸을 덥혀주려고 안았을 적에 느꼈던 천상의 내음과도 같던 바로 그것이 아련히 떠올라 아늑했다. 진초희는 마고도를 더욱 꽉 껴안으며 향기 짙은 키스를 했다.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그녀는 이별의 순간마냥 서글프게 말했다.

“고마워요. 기억해주어서. 전 고도씨를 사랑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이미 터무니없이 큰 죄를 저지른 죄인일 뿐만 아니라 순정도 더럽혀진 보잘 것 없는 여인네로서… 고도씨에게 이렇게 애정을 구하는 건 참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줄 저도 잘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우리 둘의 묘한 인연이 저에게 고도씨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부추기기 때문이어요. 너그럽게 보아주세요.”

마고도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려 오히려 자신이 그런 말을 들을 자격도 없는데 너무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녀는 진심어린 그의 말을 언제까지나 가슴 깊이 새겨두겠다면서 포옹을 풀고 돌아섰다. 마고도는 어느덧 그녀의 눈에 이슬이 맺혀있는 것을 보고 뭉클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