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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혼자서 돌발행동 하기 일쑤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DH바이러스(제21회))

by 허슬똑띠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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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가짜자료 작전

 

12(계속)


  다음 날 사이영으로부터 이틀간의 여유를 줄 테니 차질 없도록 하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그전에 단미가 있는 곳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어서 그의 말이 과히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 뒤 공교롭게도 다른 수사 건이 터지는 바람에 이태원을 추가로 조사할 수 없자 안절부절 못했다. 이틀 후 어김없이 사이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는 수 없이 원하는 것이 준비가 되었노라 했더니 내일 시행하되 교환 장소와 방법은 그 때 알려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마고도는 오장석에게도 말하지 않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지금 자료를 가지고 곧바로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고나서였다. 교환 장소는 오는 동안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실수 없기를 바란다면서 엄포도 놓았다. 안주머니에는 데이터 저장 기기가 들어 있었다.


  “이건 나와 박단미와의 개인적인 일일뿐이야!” 중얼대며 급 발진하여 달려 나갔다. 서울역을 코앞에 두고 통보가 왔다. 11시에 출발하는 KTX를 타라고 했다. 행선지는 대전이며 좌석은 6호차10A번이었다. 시간을 보니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매표창구로 달려갔다. 매진상황이었으나 별안간 그 좌석의 예매가 취소되어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마고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열차에 올라 해당좌석에 앉는데 얼핏 드는 생각이 있었다. 예매취소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닐지 몰랐다. 그가 매표창구에 도착하는 하는 것을 지켜본 사이영의 부하가 그의 표 매입신청과 동시에 처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등골이 써늘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대처할 방법을 강구하는데 다소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외국여인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엷은 망사형태의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썼다. 화장을 짙게 한데다 파마기가 있는 긴 머리가 목덜미를 감싸고 있어 확실한 이미지를 잡을 수는 없었으나 20대 말 정도인 것 같았다. 그녀는 살짝 그에게 눈웃음을 하고 나서는 모자를 그대로 쓴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고도는 신경 쓰지 않고 전화 오기를 고대했으나 천안아산역에 도착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마고도는 바싹바싹 타오르는 입술을 침으로 적시며 열차가 다시 출발하기 전에 객차를 돌아볼 요량으로 일어나는데 옆자리의 외국여인이 그를 잡는 바람에 놀랐다. 그녀가 앉으라는 손짓을 해서 영문도 모르고 도로 앉았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태블릿 피시를 꺼냈다. 스크린이 뜨자 우리말로 “이것 좀 보세요.” 하면서 슬그머니 마고도에게 건넸다. 전혀 예기치 못한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화면을 들여다본 그는 망연자실했다. 짐들이 쌓여있는 한 편에 입에 테이프가 붙여있고 손발이 묶여 있는 여자가 그를 바라보듯 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는 화면 속의 사람은 다름 아닌 박단미였다. 마고도는 부르르 떨며 눈을 부릅뜨고 옆자리의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기 문자 메시지 보실래요?” 하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그의 코앞에 내밀었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고 있다시피 약속한 대로 그대의 여자는 탈 없이 잘 있다. 그러니 자네도 약속을 지켜야겠지? 옆에 있는 여자에게 자료를 업로드 시킨 기기를 넘겨주면 지금 그대의 여자가 갇혀있는 곳의 키를 줄 것이다.’ 그녀에게 내동댕이치듯 피시를 건네주고 두 손을 꽉 쥐었다 펴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기기를 꺼내어 주었다. 무표정하게 피시와 기기를 가방에 넣은 그녀는 마고도에게 키를 건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따라 일어서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사이영이었다.

“거래를 완전히 성사시키려면 함부로 따라오면 안 되지. 얌전히 있지 않으면 그대의 여인이 위험하게 된다는 걸 명심하라고.”

그의 협박조 말에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엉거주춤하니 멀어져 가는 여인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그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는데 섣불리 행동하기도 그랬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데 메시지 도착알림이 울렸다.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대전역 수하물보관소 C-3에 있다. 그러면 굿 럭!’ 메시지를 보자마자 일어섰다.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이영의 말을 온전히 믿기 어려웠으나 대전에서 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으므로 대전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급하게 여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전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이 하차하기 위해 준비하느라 다소 부산한 객차 내를 숨 가쁘게 살피며 돌아다녔다. 허사였다.
  어쩔 수 없이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내린 그는 플랫폼에 발이 닿자마자 수하물보관소를 찾아서 달려갔다. 허둥대며 이리 저리 C-3를 찾았다. 창고 주변에는 주차되어 있는 트럭들에 사람들이 짐을 옮겨 싣고 있었다. 헐레벌떡 가쁜 숨을 내쉬며 거의 그곳에 이르렀을 때 빠르게 휙 지나치는 흰색의 탑차에서 묘한 기운을 풍기는 것 같아서 멈칫했으나 진정하고 보관소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뒤져 보았지만 단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이영의 농간에 놀아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입구 문틈에 손을 기댄 채 한심해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경비원들이 달려왔다. 그를 화물 절도범으로 여긴 것이다.


  그들에게 끌려가면서 생각해보니 자료가 가짜임이 드러난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 때 휴대폰이 울렸다.

“내가 그만큼 주의를 주었는데도 날 속이려 들다니. 용서하지 않으려다 네 여인이 불쌍해서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 이상의 용서는 없을 줄 알아.”

전화가 끊긴 후에도 사이영의 날카로운 어조가 귓전을 맴돌았다. 안도의 한 숨을 내리 쉬었다. 역사 내 지구대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마무리되고 나서 과장에게 보고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드는데 가벼운 캐주얼 복장을 한 사내가 들어왔다. 마고도는 깜짝 놀랐다. 오장석이었다.
  “어, 어, 웬일이야?”

마고도는 반갑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다. 그는 웃으면서 들고 있던 가방을 열고 변장했었던 수염과 모자를 꺼내보였다. 두 사람은 지구대를 나와 상행선 열차표를 구입한 뒤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오장석은 변장을 하고 마고도가 탄 객차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고도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여인은 뒤를 돌아보고 마고도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특실 2호차로 갔다. 짙은 구레나룻을 한 외국인 옆에 앉아있던 한국남자가 그녀를 보고 일어서자  그 자리에 앉았다. 외국인 남자는 그녀가 내민 태블릿 피시에 기기를 연결하고 유심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장석은 자료가 가짜임이 탄로 났다고 보았다. 피시와 기기를 여인에게 도로 건넨 외국인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 다음 여인에게도 지시를 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 외국인남자도 일어섰다. 오장석은 아무래도 그를 추적하는 것이 낫다싶어 그를 쫓아가다가 출입문에서 건장한 체구의 청년과 부딪쳐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미안하다며 그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두 남녀 모두의 행방을 놓쳤다. 마침 열차가 대전역에 정차했다. 재빨리 객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살폈다. 마고도가 부리나케 수하물창고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멀리 사람들 틈에 섞여 외국여인이 내리는 것이 보였으나 모자를 쓰지 않았고 어깨정도 내려온 갈색머리에다 화장도 옅은 게 영 다른 모습이었다. 외국여인이 빠져나간 후에도 눈이 빠지도록 지켜보았지만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두 외국 남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짱돌! 나한테 추적기를 달아놓았구나!”

오장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고도가 감이 잡힌 듯 구두 밑을 살폈다. 단단히 붙은 것을 떼어내어 그에게 툭 던졌다.

“혼자서 돌발행동 하기 일쑤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오장석이 털털거리며 웃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 마고도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여인은 사이영의 애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녀가 마고도가 건네준 자료를 가지고 가서 만난 외국인은 사이영이 변장한 녀석으로 보인다. 사이영은 자료를 확인한 뒤 가짜임을 알고 대전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하에게 단미를 도로 그들의 차로 끌고 가도록 지시했을 것이다.

“그래… 여자가 나한테 단미가 감금된 곳을 보여준 곳은 바로 그 수하물보관소가 맞기는 맞아. 그리로 가면서 탑차와 엇걸렸는데 어쩐지 기분이 찝찝하더라고. 설마 했는데 제길 거기에 단미가 타고 있어서 그랬던 거였어.”

마고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부비며 괴로운 듯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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