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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가장 절망적인 말은 '나중에'이고 가장 희망적인 말은 '바로 지금' 이라고 하지 않던가. (DH바이러스(제22회))

by 허슬똑띠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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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찾아낸 사이영 본거지

 

13

 

서에 도착해서 두 사람은 상황보고를 했다. 과장에게 퇴박을 받은 마고도는 면목 없다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다시금 실수가 없어야 단미를 구출할 수 있다. 그러자면 사이영이 재차 교환제의를 해올 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효과적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기를 한껏 채워야 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가장 절망적인 말은 '나중에'이고 가장 희망적인 말은 '바로 지금' 이라고 하지 않던가. 희망을 충전하자면 머뭇거리지 말고 실행에 옮겨야겠지?” 오장석에게 귓속말로 사정을 말하고 달려 나갔다. 앞뒤 가리지 않고 차를 몰았다. 팔당대교를 지나 양평 쪽으로 향한 그는 신호위반, 차선 위반, 속도위반 등 온갖 것을 다 해가며 정신없이 내달렸다. 용문산 자락의 깊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암자로 올라간 그는 오래전에 가르침을 받았던 옛 스승을 만났다.

 

마고도가 단시간에 능력 이상으로 기를 충전시키자 스승은 만족스러워했다. 예전에 수련을 할 적에도 상당히 빠르게 적응을 하고 수준도 꽤 높았는데 아마도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스승으로부터 기를 충전 받고 새벽에 조용한 거리를 질주하며 돌아오던 중 기억 바닥에서 기포처럼 뽀글뽀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KTX에서 만났던 외국여인이 말하던 어조였다. 그 때 우리말로 말하기는 했지만 약간 애티가 섞인 말의 음색이 어느 땐가 들었던 것과 흡사한 것 같았다. 당시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단미를 무사히 구출해야 된다는 생각만 가득 했기 때문에 자세히 파고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기를 한껏 받아서였을까? 신박하게도 그 음색을 가진 인물이 어리어 왔다. 전에 오장석과 이태원에 갔었을 때 지나쳤던, 차를 세워두고 전화 통화하던 외국여인이었다. 외국어 억양과 우리말 억양을 몇 번이고 비교해보자 동일 인물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때는 그녀를 뒤에서 보았고 대면하던 날은 변장까지 하고 있었으니 같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었겠는가. 그녀가 무턱대고 그곳에 있었을 리 없다고 본다면 그 부근 어디엔 가에 사이영의 본거지가 있을 확률이 컸다.

 

마고도는 오장석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함께 이태원으로 향했다. 오장석에게 추적기를 건네며 그냥 켜놓으라고 했다. 그의 간절한 희망이 이변을 일으켰는지 그 외국여인이 통화하던 지점 쯤 도달했을 때 추적기에 빨간 점이 희미하게 떴다. 그 위치에서 어지간히 더 올라간 곳이었다. 오장석이 추적기를 마고도의 코앞에 바싹 댔다.

“이거 웬 일이람!”

기적처럼 살아난 빨간 점을 바라보는 마고도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되었다. ‘이 양반도 사람은 사람이네 그려.’ 오장석은 침착하기로 소문난 마고도의 표정변화를 보면서 놀라워했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확실한 위치를 잡아내기 위해 전 속력으로 올라갔다.

 

언덕에 거의 올라간 곳 인근에서 점은 사라졌다. 마고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왼편에 있는 집을 가리켰다. 담쟁이덩굴이 높은 벽돌담을 온통 덮었고 담에 바싹 붙어있는 높다란 나무들이 담장 위에 무성한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그 너머로 옅은 검정색 석판으로 이루어진 서양식 건물의 경사진 지붕이 보였다. 규모가 상당히 큰 이층집이었다. 마고도의 얼굴에는 확신감이 그득했다. 차를 먼발치에 세워두고 집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사업가였던 소유주가 오랫동안 주택을 회사 사무실로 사용했다가 몇년 전에 호주로 이민간 뒤에는 부동산을 통해 임대하고 있었다. 현재 거주자는 스칼렛 아이들러라는 미국인여자였다. 그녀가 바로 기차에서 두 사람을 농락하고 유유히 사라졌던 장본인이자 사이영의 애인일 것이다.

 

마고도는 그곳에 박단미가 감금되어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해보기로 했다. 방탄복을 벗어두고 의자에 기대어 집을 향했다.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명상하듯 했다. 오장석이 그를 바라보면서도 주변을 눈여겨보고는 했다. 마고도의 표정이 밝아졌다. 눈을 뜨자 단미의 기가 집 주변에 흐르는 것을 잡았다고 했다. 긴급히 과장에게 연락하여 저격수를 포함한 경찰특공대원들을 집 주변에 내밀하게 배치해줄 것을 요청했다. 마고도가 과장과의 연락이 끝나자마자 사이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부터 48시간 내에 기술 자료를 빼내어 오라는 최후통첩이었다. 교환방법 및 장소는 직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마고도는 알았다며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기를 바로 코앞에 두고 전화하는 것이 재미있게 여겨졌다. 다만 그가 집안 내부에 있는 지는 경찰특공대에게 의뢰하여 확인해보기로 하였다.

 

부동산 사무실로부터 집 구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경찰특공대 상황분석팀이 도착해서 개략적이나마 그려진 도면을 가지고 집 내부 시설 파악에 들어갔다. 건물 1층에는 예전에 사무실로 쓰던 4개의 방외에 주방과 식당이 있는데 이곳 방들은 조직원들의 숙소나 경비실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일층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좌우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고 2층에는 8개의 방이 있었다. 왼편 계단으로 올라가면 복도를 중심으로 왼쪽 첫 방은 다른 방들의 1.5배 정도 크기였다. 당초 주인이 사용하던 것으로서 다용도실과 침실이 꾸며져 있고 사이드 문을 통하여 부속실 비슷하게 사용되는 옆방과 통하게 되어있다. 부속실은 사무실로 쓰였었다. 사이영과 스칼렛이 그방을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부속실 옆으로 3개의 방이 연이어 있는데 조직원들의 숙소나 휴게실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반대편에 만들어져 있는 4개의 방은 예전에 고객 접견실이나 회의실 등으로 이용되었다는데 닫쳐있는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끝 방과 벽 사이에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있다.

 

50여 미터 떨어진 건물의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집 건물 외관을 살펴보았다. 담장 안쪽 건물 주변은 대문에서 현관까지 양쪽으로 꽃나무들과 잔디로 정원을 꾸며놓았다. 현관 앞과 건물 뒤편에 설치된 CCTV외에 다른 감시 장치는 발견되지는 않았다. 1층의 현관문은 물론 좌우에 있는 창문들도 모두 닫혀있었다. 2층 전면 쪽의 창문들도 닫혀있었으나 반대편 쪽 두 곳은 반쯤 열려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는 건장한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뿜어대는 담배연기가 수시로 방안을 맴돌다 사라졌다. 다른 방에는 잠을 자거나 쉬고 있는 사내들이 보였다. 모두 10명 가까이 되는 듯 했다. 건물 뒤편에는 천막을 씌워 만든 공간이 있었는데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직원들이 단련하는 곳으로 보였다.

 

분석팀의 조사결과를 가지고 대원들이 작전을 논의할 때 수사과장을 위시한 수사팀들은 물론 마고도와 오장석도 함께 자리했다. 마고도는 전반적인 작전의 윤곽이 잡히기 전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박단미가 구금되어 있는 방의 위치를 웬만큼 파악하고 있으므로 그녀의 구출은 자신이 앞장서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장석이 보충설명을 했다. 이 아지트를 찾을 수 있었던 것과 박단미가 이곳에 갇혀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고도가 예전부터 단련해왔던 기 수련 덕분이었다. 자신은 바로 옆에서 그를 지켜보며 여태 완전히 이해된 것은 아니지만 명상과도 같은 정신집중을 통해 실제 감정교감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가 확신하는 것을 보고 텔레파시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으며 이는 분명 기적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장석의 설명을 들은 대장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수긍했고 마고도가 진입할 적에 오장석과 특공대원들이 엄호하도록 지시했다.

 

마고도가 쉽게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오기 어렵다고 판단한 박단미는 혼자서 탈출할 궁리를 했었다. 처음에는 감시원이 우연히 떨어트린 작은 귀이개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수갑을 풀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다른 방도를 강구하다가 감시원을 때려눕히고자 하여 앉아있던 의자를 발로 걸어 그에게 날렸다. 불운하게도 미리 알아차리고 피하는 바람에 그의 엉덩이를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 그 뒤로 그녀의 입에는 테이프가 봉해지고 팔과다리를 의자에 묶이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맥이 빠졌지만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체력을 보완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마고도 기의 흐름이 느껴져 왔다. 그것도 상당히 가까울뿐더러 집 주변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이는 그녀의 구출작전을 진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호응할 방법을 구상해보기 시작했다.

 

모든 창문에 커튼이 처져있어 불빛이 차단되어 건물 상부가 어둠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마고도를 비롯한 특공대원들이 구출작전에 들어가기 위해 적당한 타이밍을 잡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조직원 6명이 건물 외부로 나왔다. 3명은 앞 편에서 일정 간격으로 경계를 펴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뒤편으로 돌아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소음기가 달린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특공대원들이 이들 움직임을 적외선 망원경으로 감시하면서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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