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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왜 사고가 날 까닭이 없는 곳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까? (염빙 바이러스 (제2회))

by 허슬똑띠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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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2. 해빙(海氷)

 

뜻하지 않은 좌초

 

현재의 동중국해. 2만 톤급 일반 화물선인 ‘금강 포세이돈’호는 유럽지역으로부터 수입화물을 가득 싣고 부산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봄이 서서히 무르익어가고 있는 4월의 하늘은 쾌청하였고 바다물결도 비교적 잔잔하여 항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기상예보도 배가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런 지장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랄 것 없이 머지않아 지루했던 항해를 마치고 그리운 가족들과 만난다는 생각에 약간 들뜬 기분으로 이 평온한 항해를 즐기고 있었다. 아스라이 멀리 수평선에는 조업을 하고 있는 어선 선단들의 모습이 점점이 보이다가 그 너머로 사라져 갔다.

 

선박이 동중국해의 중심해역에 이르렀을 즈음 백색의 사관복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유해수 선장이 선장실을 나와 선교로 향하고 있었다. 이곳은 제주도로부터 정남 방향, 중국 상해로부터 북동방향 그리고 일본 규슈 남단의 서쪽 등 세 방향으로부터 거의 비슷한 거리에 위치한 동경 126도 북위 31도 정도의 지점이었다. 갑판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배의 속력이 줄어드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배에 그다지 강하지 않은 충격이 가해진 듯 했다. 몸을 바로 잡느라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그가 쓰고 있던 모자에 두른 금빛 테가 햇빛에 번쩍였다.

 

이정도의 충격은 선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면서도 사고가 날 까닭이 없는 곳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 불길한 예감을 불러왔다. 추가 충격은 없었으나 배의 속력이 계속 느려지는 것으로 보아서는 배가 암초 같은 것과 충돌했음은 분명한데 더 이상의 상황변화가 없는 게 이상했다. 몸을 가누고 급하게 조타실로 들어서자 이등항해사가 호들갑스럽게 기관실과 통화하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했다. 자동조타기 너머로 전면을 주시하고 있던 일등항해사는 선장에게 경례를 하고 난 다음에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관찰을 계속했다.

 

“분명 무엇에 충돌한 것 같기는 한데 충격도 그다지 크지 않고 배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라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도대체 지금껏 알려진 암초도 없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기관실 말로는 현재로서는 별다른 손상이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만 바닥에 이물질이 걸린 것처럼 계속 긁히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신경에 거슬립니다.”

“속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긁히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잘못하다 가는 배 밑바닥이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겠는데?”

선장은 즉시 기관을 정지하도록 하고 전 부원에게 선박내의 주요 설비 등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토록 지시하였다.

“그간 이 항로에 암초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확인이 안 된 것일 수도 있어. 다행히 그렇게 큰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지시를 내린 후 생각에 잠겨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는 선장에게 계속 전면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일등 항해사가 이상하다면서 배 전면을 보라고 했다. 선장과 이등항해사가 그가 가리키는 대로 선수는 물론 좌현 및 우현의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니 이상하게 우유를 쏟아 부은 듯 바닷물의 색깔이 뿌옇게 변해 있었고 더구나 배 주변에서부터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충격이 가해진 것과 그리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세 사람 모두 저렇게 거대하고 희끄무레한 암초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선장은 일등항해사와 함께 상갑판으로 가서 바닷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배의 좌우 현, 선수와 선미방향을 모두 확인한 결과 선미 쪽의 바닷물 색깔은 다른 곳보다 비교적 정상적인 빛을 보이고 있었으나 그 외의 방향은 모두 비슷한 상태를 보였다. 바다 속에 분명 무엇이 있긴 한데 아직 깊이가 꽤 있어 정확하게 파악은 불가능했다. 다만 선미가 그래도 정상에 가까우므로 배를 후진시켜보자 생각한 선장이 찌푸린 얼굴로 일등항해사와 함께 조타실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배가 좌측으로 약간 기우는 느낌이 왔다. 선장은 급히 주 기관과 보조기관 모두를 최대한으로 가동하여 배를 후진하도록 지시하였다. 뒤로 물러서던 배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선장은 별 수 없이 기관을 정지하도록 하고 모든 선원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선원들이 구명보트를 내리고 있을 때 선장은 직접 구조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본사에는 이상한 암초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조치를 하고 난 후 선원들이 경사진 갑판 위에서 대피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치 거대한 손이 좌측을 받치는 것처럼 기울임이 멈추었다. 모두들 의아스러워하면서 내리던 구명보트를 멈추고 선장의 후속지시를 기다렸다. 배가 기울기는 하였으나 그다지 경사지지 않았기 때문에 갑판위에서 활동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선장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서도 선원들의 대피를 중단시켜야할 지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다가 단호한 표정으로 모든 선원을 불러 모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기울어짐이 멈추었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로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배의 좌현 바닥에 솟아 있는 암초가 배를 단단히 지지할 것이라 믿고 모두 배를 지키기로 한다.”

그러자 신참 선원 하나가 불안감을 숨기지 않으면서 자신 없는 작은 목소리로 우려를 나타냈다.

“혹시 배를 받치고 있는 암석이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배의 무게를 못 견뎌 파괴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위험에 대한 생각은 이제부터 머릿속에서 지우도록! 배가 좌초했음에도 거의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는 것을 뜻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장 구조선박이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구조신호를 보냈으니까 이 부근 해역을 지나는 선박이 곧바로 조난 신호를 받고 올수도 있다는 희망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다.”

 

선장의 흔들림 없는 의지를 확인한 선원들은 동요를 멈추었다. 유선장의 장기간 경험에 따른 느낌을 믿기로 한 것이다.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마냥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암초에 부딪친 배가 정말 아무런 이상이 없는지 조사해보기로 한다.”

이 말에 따라 배 밑바닥을 조사해보기 위해 잠수경험이 있는 세 사람을 선발하였다.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부원들이 탄 구명정이 우현의 바다로 내려졌다. 잠수하기 전 한 부원이 바닷물을 휘적거리다가 놀랜 듯 급하게 손을 들어올렸다. 바닷물이 이상하리만큼 얼음물처럼 매우 차갑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 확인해보자며 차례로 잠수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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