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3. 구조 활동(계속)
“그러게 말입니다. 금강 포세이돈에서 날아온 전문은 무언가와 충돌하기는 했는데… 한데 암초는 분명 아닌 것 같다는 겁니다. 당연한 거죠, 그 항로 주변 100킬로미터 이내에는 거칠 것이 없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좌초되고 나서 배에 마구 달라붙는 것이 있었는데 마치 빙하가 배를 삼키는 것 같았답니다. 그 통보가 있고나서 얼마 후부터는 아예 연락두절입니다.”
“뭐? 빙하? 무슨 요상한 소릴 하는 거야?”
임원은 어이없어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 해역 부근에 있는 선박들에게 다시 구조신호를 보내고 해경에도 확인해보도록 해! 그건 그렇다 치고 행방불명된 선원들이라도 구조해야 하니까 당장 구조선을 보내도록 해.”
구조선의 파견 준비를 하고 있는데 ‘S수산’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선들이 조난현장에서 보낸 전문으로는 선박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다만 거대한 빙하가 떠 있는 것만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선원들 역시 모두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어선으로부터 수신된 그 빙하의 모습도 전달되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사장은 국토해양부를 찾아가 화물선 및 어선에서 보내온 전문과 사진들을 제시하면서 조사선을 파견하여 의문의 빙하를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그 빙하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그것을 점유하여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강력하게 피력했다.
담당 과장 역시 빙하 출현에 대한 보고가 믿을 수 없었으나 증빙자료를 보고도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묵살할 수도 없어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선박회사 사장 말도 일리가 있었으므로 국장주재의 내부 회의를 통해 조사선을 띄우는 방향으로 결론지었다. 곧바로 국립해양조사원에 전말을 통지하고 조사에 착수하도록 하였다. 마침 입항해서 다음 항해를 위한 준비를 하던 해양조사원의 해양조사선 ‘해양2000호’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빙하전문가, 생물학자 그리고 해수전문가들로 짜여진 10여명의 정식 조사단이 구성되었고 속속 조사선으로 집결했다. 이들이 승선을 마치자 바로 방하가 떠있다는 해역으로 출항하였다.
상처만 남긴 구조 활동
윤정호는 일본 특파원을 지내다가 얼마 전 귀국한 W신문사의 한가람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의 단골 음식점에서였다. 한기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향 선배였는데 때마침 특별취재를 위해 부산에 와있었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냐? 지금도 뱃사람 같지 않게 색시 같은 모습은 변함이 없어 보이네. 네가 해양대학 간다고 했을 때 사실 걱정이 되더라. 약해빠지고 겁도 많은 네가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만용이라고 오버하며 떠들어댔지만 사실 전 오기가 났어요. 그보다도 고등학교 2학년 땐가 우연히 한 화물선 선원이 썼던 글을 읽고 나서는 대양을 동경하게 된 탓이지요. 결과적으로는 그게 저를 더욱 튼튼하게 만든 셈입니다.”
“하여간 별 탈 없이 잘 견디고 있으니 다행이다. 나는 일본에서 돌아와서는 새로 맡은 일 때문에 짬이 나지 않았어. 그러다보니 그 빙산인가 뭔가에 집중할 수 없었거든. 그래도 틈날 적마다 관련기사를 살펴보았던 참이라 네 전화 받고는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더라.”
“헤헤…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구조선이 돌아오고 나서 얼마동안은 사실 그 때 보았던 것이 무슨 환영을 본 것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직접 눈으로 본 것인데도 뒤돌아서니 전혀 믿기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회사로 복귀한 후 다시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어느 틈에 머리에서 사라지는 듯 했는데…”
“그런데?”
“함께 갔었던 구조대원 중에 전혀 예상도 못한 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된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게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는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사고에 대해 갑자기 규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믿을 만한 뉴스에서나 신문에서도 빙산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져간 건지 등에 대한 자세한 기사는 전혀 없기도 했고요.”
“무슨 일이였었는지 자세하게 얘기 해봐!”
윤정호는 술을 한잔 마시고 나서 그가 경험했던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구조명령을 받고 밤낮없이 항해하여 구조선이 해빙이 있는 해역에 도착하였을 때 그것을 발견한 대원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저게 뭐야?’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출발하기 전 자료를 통해 보았을 때는 대부분 사람들이 엉뚱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허연 벌판이 망망대해의 한 복판에 자라잡고 있음을 확인한 구조대원들에게는 신비함과 함께 공포감이 몰려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건 완전 얼음이 꽁꽁 언 시베리아호수의 모습이잖아. 빙하가 아니고 빙야야 빙야…’라고 중얼거렸다. 물귀신과도 같이 떠 있는 빙하를 바라보는 대원들의 웅성거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를 단박에 가라앉힌 사람은 다름 아닌 구인선 선장이었는데 그는 턱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어 전형적인 마도로스 스타일로 어떠한 위험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풍기고 있었다.
“모두들 넋이 빠진 듯 뭐하고 있는 거야? 정신들 차리고 구조업무를 준비하지 않고!”
“선장님!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일입니까?”
대원 한사람이 다소 두려움에 젖은 목소리로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역시 30년 넘게 지구상의 바다라는 바다는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다. 허나 우리들의 임무가 무언가? 해야 할 일은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완수해야 할 것 아닌가?”
그의 성격을 잘 아는 터라 그들의 행동에 마뜩치 않아하는 선장의 호령에 전 구조대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빙은 해수면에 살짝 떠있는 듯이 보였는데 완전한 평면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고 상당부분은 울퉁불퉁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좌초된 선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의 외곽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그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은 얼음덩어리들이 군데군데 솟아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구조요청 통신문으로 판단하건데 거대한 것이 좌초된 화물선이 아닐까 추측되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극해도 아닌데 어찌하여 얼음에 꽁꽁 뒤덮여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주변의 작은 것들은 아마도 대피하다가 얼음에 갇혀버린 선원들과 그들이 타고 있었던 구명보트들일 것이었다. 원거리에서 망원경으로 해빙을 관찰하면서 구선장은 그런 의문은 자신들이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보이지 않는 선원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시 명령을 내렸다.
“배를 최대한 빙하에 가까이 접근시키도록 해! 선박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겠지만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린 선원들이라도 수습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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