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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예전 일들은 과감히 털어버려라! (염빙 바이러스 (제5회))

by 허슬똑띠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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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3. 구조 활동(계속)

 

곧바로 완전무장을 한 다섯 명의 구조요원들이 탄 구명정이 내려지고 빙야의 가장자리로 달려갔다. 다음 구명정으로 투입될 예정인 정호는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구명정이 다가간 순간 거센 파랑이 닥치는 바람에게 하마터면 구명정이 뒤집힐 뻔 했으나 위기를 넘기고 일단은 가장자리에 바싹 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너무 흔들리는 통에 도저히 해빙에 올라탈 수 없었다. 높은 파도와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한 대원이 잠시 흔들림이 약해진 틈을 타서 팔짝 튀어 오르더니 빙야 위로 몸을 날렸다. 미끄러지면서 그 위에 착지한 그는 고리를 손목에 감은, 양날이 뾰족한 피켈로 빙판을 찍어 몸을 고정시키려 하였으나 날카로운 날임에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는 손을 쓸 수도 없이 쭉 미끄러져 갔다.

 

온갖 애를 쓰고 나서 겨우 멈춘 그 대원은 멈추자마자 겨우겨우 착지한 지점으로 되돌아 왔다. 모두들 가슴조리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곳에 핀을 박아 고정시키려 빙판을 계속 찍어대었으나 흠집하나 입히지 못한 채 피켈은 자꾸 튕겨져 나왔다. 빙야의 얼음은 그냥 얼음덩어리가 아니었다. 할 수없이 구명정에서 그에게 로프를 던져 그가 잡고 있는 사이 서로 잡아당겨 구명정을 완전히 빙야에 붙였다. 그러자 마치 해원에 쩍 달라붙은 듯 구명정은 흔들림을 멈추었다. 그래서 전 요원이 모두 빙원에 오를 수 있었다.

 

모두들 성공적인 상륙에 환호하면서 다음 구명정의 하선을 준비하고 있는데 빙야에 달라붙은 구명정의 모습이 이상했다.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는데다 파도가 출렁이면서 바닷물이 덮칠 때마다 얼음이 눌어붙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조난당한 선원들의 양상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선장은 그들을 퇴각시키고자 빙야로 올라간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으나 이미 이들에게도 똑 같은 재앙이 닥치고 있었다. 파도가 더욱 거칠게 일면서 바닷물이 들입다 퍼부어지다가 그들을 향해 흘러갔는데 이는 마치 해빙이 요원들을 공격하는 모양새였다.

 

바닷물이 흘러가 그들에게 닿자 다리에서부터 서서히 얼음이 얼어오기 시작했다. 얼음은 전혀 녹지 않았고 눌러 붙은 얼음을 아무리 털어내려 해도 한번 달라붙은 얼음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점차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리에 그대로 갇히고 말았다. 얼마 후 결국 얼음 동상이 되어 갔다. 이를 지켜보는 대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구조선의 사람들은 금강 포세이돈 역시 똑같은 변을 당하여 저 모양이 되었을 것이며 작은 돌출부분들은 분명 선원들일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예측은 했으나 기가 막힌 사태를 직접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대원들은 침통한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선박이 계속 해빙으로 접근하는 듯하자 깜짝 놀란 구선장은 급히 배를 후퇴시켰다. 해빙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구선장은 한 대원이 저게 자꾸만 커지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섬뜩했다. 그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 알아서 커지는 빙하라?’라고 중얼대다가 그들이 겪었던 상황을 본사에 보고하고 귀항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그들의 능력범위 밖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계속 그대로 머무를 필요가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귀항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문이 도착했다.

 

마침 중동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항하는 ‘청해함’이 인근 해역에 접근하고 있으니 군함이 도달할 때까지 해빙을 주시하고 있으라는 명령이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청해함의 갑판에는 많은 병사들이 이 진귀한 해빙을 보기 위해 도열해 있었는데 그들 역시 어안이 벙벙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교에서 함장이 망원경으로 이를 계속 관찰하고 있는 가운데 천천히 구조선 부근으로 함정이 다가왔다. 구선장은 함정으로 이동하여 함장을 비롯한 간부진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나름대로 판단한 해빙의 성질에 대해 설명했다. 해빙의 위험성을 파악한 함장은 설명 받은 내용을 해군본부에 보고하고 이 부근 해역을 지나는 모든 선박들에게 경계주의보를 발령토록 하였다. 해빙을 조사하기 위해 모험을 해볼까도 생각하였으나 의미 없이 공연히 병사를 희생할 뿐일 것 같아 함장은 이내 이를 포기했다.

 

대신 해빙의 상태를 파악할 겸 경계활동도 할 겸 해서 주위를 돌아보기로 했다. 해빙은 예상했던 것 이상보다 어마어마한 크기였는데 반대편으로 돌아가다 보니 원양어선으로 보이는 배 한척이 해빙의 가장자리에 좌초된 것이 보였다. 그런데 좌초된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으로부터 해빙이 이미 꽤 확산되어 있었고 어선의 상당부문이 얼음에 뒤덮여 가고 있었다. 구조 신호를 받았던 어선들이 금강 포세이돈의 조난 신호를 받고 그 부근 해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얼음 덩어리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과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함정에 이어서 때마침 조사선까지 도착하자 구선장은 본사에 보고하고 뱃머리를 부산방향으로 돌렸다.

 

4. 추측

 

후배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한기자는 자기가 그 의문을 해결해줄 테니 기다려보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다는 인사를 던지고 헤어진 후 출장업무를 대충 마무리했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이 내용을 기사로 내보내기 전 관련 전문가란 전문가는 모조리 찾아다니며 취재하였으나 원론적인 얘기들뿐이지 딱히 바로 이거다 싶은 것은 얻지 못하던 차에 이창곤이 떠올랐다. 그는 이 방면의 전문가는 아니었으나 한기자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역으로 도움이 될 만한 기사거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와 전화로만 간단히 귀국신고만 했던 터라 근황도 알아볼 겸 해서 그를 찾아갔다. 노크도 없이 연구실 문이 활짝 열리자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던 그는 문 열리는 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짐작하겠다는 듯 실험기기에 눈을 떼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기자의 행동거지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었던 것이다. 한기자의 얼굴을 마주보자 반갑게 맞이하면서 동시에 퇴박을 놓았다.

“어인일이냐? 오랜 동안 일본에 있다가 왔으면 잽싸게 술 한잔하자고 들를 줄 알았다. 그런데 덜렁 전화한통화로 끝내고 별무소식이라 혹시 후쿠시마원전 취재하면서 방사능이라도 잔뜩 쏘였나 했다.”

한기자는 그의 주특기인 너털웃음과 함께 웬걸 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혹시 모르지 뭐. 옛날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취재했던 기자들 중에서 염색체에 이상이 발견된 사람들이 꽤 되었다니 말이야.”

“그래서 국장이든 누구든 눈치 보며 중요한 기사거리를 잘라내면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 팍 죽어버린 것 아냐? 그건 좀 아쉬운 점인데, 하하…”

“넌 내가 그리 쉬운 놈이 아닌 줄 뻔히 알잖아?”

“정색하기는~~ 농담이었어, 농담. 사실 원전사고 들었을 때 좀 걱정은 되더라. 각설하고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아직까지도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면 말이야, 마치 죽음의 땅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처럼 말할 때마다 혼자만 살기위해 도망쳐 오지 않았느냐는 말 같아 괜스레 찜찜하더라.”

“네가 항상 내세우는 말 있잖아? ‘앞날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떨거지 같은 예전 일들은 과감히 털어버려라.’ 그러는 게 상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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