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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꽃은 말이 없어도 꿀을 많이 간직하고 달은 담장을 넘지 않고도 깊은 방에 찾아들 수 있다. (염빙 바이러스 (제8회))

by 허슬똑띠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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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6. 소행성 - 에피소드1(계속)

 

형제

 

창곤과 병곤은 띠 동갑이었다. 두 형제는 12년 터울이 짐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지냈고 형제애 또한 아주 강했다. 창곤의 아래에는 여동생이 둘이나 있었지만 병곤이 태어나기도 전에 불행히도 모두 병사했다. 고등학교에 럭비부가 있어 가입하고 꽤나 몰입했다. 그렇다고 성적이 안 좋은 것도 아니어서 단번에 명문대학에 들어갔다. 창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병곤이 형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까만 윤기가 흐르는 머리가 이마의 눈썹 바로 위까지 가지런히 내려와 있던 병곤은 양간 쌍꺼풀이 진 눈에다 속눈썹이 길게 나있어서 계집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모습은 성장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머리모양새만 어른스럽게 변했을 뿐이다.

 

“형은 참 대단해! 운동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별로 없었을 텐데 말이야, 어떻게 그 유명한 대학에 단박에 합격했는지 몰라.

그런데 난 좀 이상한 게, 운동선수가 될 것도 아니면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갑작스럽게 왜 그런 운동을 한 거야?”

아직 어리지만 생각지 않은 질문을 해대는 동생이 너무 귀여웠다.

“흠~~ 그냥 체력관리를 할 겸해서 시작한 거야. 운동선수로 성공하고자 했다면 선택이 잘못된 거지만 그럴 마음도 없었고 만일 유명한 선수가 되고자 했다면 시기가 맞지 않지.”

"그건 맞는 말이네! 그런데 하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이면 왜 럭비를 선택했는지 좀 이해가 안가!”

“후후후… 그러냐? 축구라든가 하는 건, 공이 가는 방향이 뻔히 보이잖니. 그러면 재미없지. 그런데 이놈의 럭비공은 노바디 노우스(Nobody knows)지. 땅에 떨어지면 도대체 어느 곳으로 튈지 모르니 얼마나 흥미진진하냐.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 런지 모르듯이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닥쳐오는 모든 일에 보다 집중하게 될 것이고… 흠, 그러면 내가 일궈놓은 것에 더 자부심을 갖지 않을까?”

“노바디 노우스 정도는 나도 알겠는데… 그런데 말이야, 어떤 대기업 연구소 입구에는 ‘닥치는 대로 살아라!’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하던데? 한치 앞을 모른다면 난 이 말대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던데…”

“흠~ 글쎄다. 넌 꼬맹이가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구나. 뭐 나름대로 해석한다면 그것도 또 다른 좋은 방법일 수는 있겠다. 허나 그렇다고 무계획적으로 무턱대고 대시한다는 건, 좀 무모하지 않을까?”

 

만남

 

이창곤은 어릴 적부터 술을 꽤나 좋아했는데 이로 인해 총각을 벗어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대도 그는 해야 할 일만큼은 제때 마무리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보니 자주 늦었다. 늦게까지 일하다가 피로를 푼답시고 가끔 들리던 칵테일 바가 있었는데 그곳에 지금의 아내인 서린이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6개월의 만남 끝에 창곤은 서린을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고 서린은 곧바로 그곳을 그만 두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안사정이 많이 호전되었고 하고 싶던 공부를 마저 하려던 참이었다.

 

“오빠는 저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맘에 드셨어요?”

이제는 제약 없이 편하게 만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서린아, 당신은 말이야, 정말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습습하면서도 체체한 그녀가 꿈꾸듯 요정처럼 내게로 다가온 것은 정말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딱 이었지. 게다가 상냥한 미소가 일품인데다가 또한 당당하기까지 했고!”

창곤은 약간 도톰하면서 촉촉하게 보이던 서린의 입술에 어리고 있는, 처음과 변함없는 그 미소를 바라보며 그녀를 만나던 때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에 있으면서도 왜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었지만 난 이상하게도 여자들 앞에서는 별로 숫기가 없어. 그래서 주저주저 할 수밖에. 더구나 나는 누가 보아도 썩 잘생겼다 할 정도의 준수한 외모는 아니었잖아.”

 

“글쎄요. 준수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빠는 체구가 좀 큰 편인데 비해서 약간 적어보이는 얼굴이잖아요?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거기에다가 큰 눈이 언제나 맑게 보였어요, 술을 많이 드시는 분 치고는 말이에요. 그리고 보일락 말락한 미소, 이런 것들이 사람을 당기는 묘한 힘이 있었거든요.

어쩜 저는 그런 면의 오빠에게 은근한 마음을 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오빠의 진정한 속내를 알 수 없다 보니 주저주저 하게 되더라고요.

흠~ 그보다도 사실 초라한 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오빠를 좋아한다는 것이 몰염치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앞섰어요. 그래 섣불리 얘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랬었나? 그런 건 정말 무의미한 생각이었는데… 역으로 난 당신이 얘기하지 않았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뻔 했다고. 그런데 당신의 아이디어는 정말 기가 막혔지. ‘꽃은 말이 없어도 꿀을 많이 간직하고 달은 담장을 넘지 않고도 깊은 방에 찾아들 수 있다.’ 이 시 한 구절을 들려주고 슬며시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묻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당신의 손을 덥석 잡은 거 아냐. 정말 감명 깊었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이심전심이라 하던가?”

 

창곤이 서린을 만났을 때는 그의 나이 30살이었고 서린은 24살이었다. 당초 서린의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찌할 수 없이 집안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었다.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다. 창곤은 서린의 미모도 미모지만 이점을 높이 샀다. 처음에 창곤의 부모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를 꺾고 결국은 그녀와의 결혼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동생인 병곤의 전면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단아한 매력은 물론이고 그런 재치와 유머를 가지고 있는 장래의 형수를 지지하면서 적극적으로 형수와의 결혼을 찬성했다. 그런 그를 형수는 너무 감사해 했다.

결혼하고 난 뒤에 창곤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가정에 보다 충실해졌다. 그녀는 결혼 후 창곤의 배려로 대학에 진학하였는데 집안 살림과 육아와 공부 세 가지를 모두 성공적으로 치러내었고 결국 무사히 대학도 마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룸을 항상 창곤과 시동생 병곤의 공으로 돌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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