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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모든 도전을 가볍게 받아치는 기묘한 해빙 (염빙 바이러스 (제11회))

by 허슬똑띠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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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7. 소행성 - 에피소드2(계속)

 

날개 짓을 접은 불운의 신

 

드디어 육안으로도 관측할 수 있는 거리에 도달하자 정부에서는 전 국민에게 다시 비상경보를 발령했다. 도시의 지하철 운행은 중단되었고 모든 건물에서 소개령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지하철 터널이나 아파트 및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그리고 도시지역 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으로 대피하느라 온통 난리법석을 이루었다.

도심의 거리에 대피하려는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유도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면서 혼란을 방지했다. 공포에 휩싸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긴급뉴스를 청취하면서 정부가 지시하는 방향대로 움직였다. 이어서 시내 전역에 걸쳐 긴급차량 및 구조차량을 제외한 차량의 통행이 전면통제 되었고 사람들의 외부출입과 통행도 제한되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언제나 자동차의 소음으로 뒤덮여 있던 거리는 건물의 주변에 여기저기에 버려진 듯 세워져 있는 차량들만 을씨년스럽게 남아있는 가운데 가끔 통제차량들만 경광등을 번쩍이며 거리를 질주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일부 비상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력을 차단하였기 때문에 화려했던 불빛이 사라지고 난 밤의 도시는 적막감으로 더욱 어둠이 짙게 느껴졌고 유령들만 활보하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버린 듯 했다.

전 경찰력이 재난대비에 투입된 기회를 이용하여 빈집털이나 빈 가게털이가 횡횡하였다. 이들은 휑뎅그렁하니 비워있는 주택가나 상점들을 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니며 간단한 보조기구로 잠겨있는 자물쇠나 시건장치를 어렵지 않게 열어 제치고 난 뒤 주택이나 상점에서 값나가는 물건들을 꺼내어 몰고 다니는 대형 트럭에 던져 넣느라 나름대로 분주하였다.

 

소행성의 접근이 더욱 가까워지자 비상대기하고 있던 각 군은 각각 작전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일차적으로는 국가적 재난을 맞이하게 되면 발생할 지도 모르는 약탈과 폭력사태에 대비하는 한편 구난구조 활동도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경찰병력으로 한계가 있는 범법자들의 활동을 차단하고 그들의 체포를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다만 각 방송과 신문사 등 언론사들의 특별 취재팀은 적당한 장소에 자리 잡고 이를 관측하면서 계속 긴급뉴스를 내보내고 있었고 소행성의 낙하하는 모습을 직접 보려는 사람들이 위험은 아랑곳 하지 않고 높은 건물 옥상이나 산악지대에 몰려들었다. 창곤의 가족들도 인근 지하철의 터널로 대피하였는데 병곤만은 일찌감치 펜션으로 가서 소행성의 접근을 관찰하며 나름대로 낙착지점을 추정하고 있었다.

 

마침내 소행성은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붉은 화염과 함께 낙하하였다. 북아메리카 대륙 방향에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향하던 소행성은 다행히도 예상을 빗나가 동해 상공을 스쳐 가더니 한반도 상공도 그대로 지나쳤다. 계속 비행하던 소행성은 제주도 남쪽의 동중국해 해상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직경 1킬로미터에 달하는 깔때기 모양의 거대한 물보라가 솟구쳐 올랐고 뒤이어 높이 100여 미터에 달하는 쓰나미가 발생했다. 사전에 한국의 마라도와 제주도, 중국 동해와 일본의 서해 해안에는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어 대부분 사람들은 급히 대피하였으나 빠른 속도로 몰려드는 엄청난 파도에 일부 사람들은 그대로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병곤은 소행성의 낙하 광경을 세심히 관찰하다가 동해 상공에서 아주 작은 부스러기 몇 개가 분열되어 나오는 것을 목격하였다. 일부는 그대로 동해상에 낙하하였으나 한 개는 모체 소행성을 쫓듯 하더니 바다를 벗어나고 결국 동해안 산악지대로 추락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런데 소행성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뚜렷이 목격한 사람이 또 있었다. 당시 소행성을 관찰하던 일본의 아마추어 천문가였다. 소행성이 바다에 추락하여 예상보다 적은 피해만 가져오고 더 큰 재앙이 없이 끝나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후 점차 모두의 뇌리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8. 날려볼 테면 날려봐

 

현재의 동중국해상.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으로부터 지원 선박이 제일 먼저 도착하였는데 뒤에는 초대형 절단기를 실은 바지선을 달고 있었다. 단단한 쇠를 절단하는 기계였다. 지원 선박에서 바지선으로 내려간 대원들이 바지선을 해빙 가깝게 붙인 다음 절단기의 앞부분을 해빙 가장자리에 겨냥하면서 기기를 작동시켰다. 날이 해빙의 얼음덩어리에 닿자마자 날카로운 소리가 전 해상을 울리듯 퍼져나갔다. 그것을 바라보는 모두의 기대를 알고 있다는 듯 기계는 계속 힘차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몇 번 시도도 해보지 않았는데 외려 날이 부러져 나가 바다로 처박혔다. 단단한 쇳덩이도 가볍게 두 동강이를 내는 기계가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을 목도한 대원들은 덜컥 겁이 나서 급하게 바지선을 후진시켰다. 어느 사이 해빙이 거의 근접하고 있기도 했다.

 

함교에서 망원경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중국 군함의 함장은 야릇한 미소를 띠우며 부함장을 불렀다. 귓속말로 무어라 지시를 내리자 부함장은 즉시 어뢰실로 연락하였다. 함장은 얼음조각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어뢰로 해빙을 일부라도 폭파시키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일 거라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에서의 시도가 불발로 끝나자 이제 그 계제가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폭파되면서 바다로 떨어지는 얼음조각들이 해면위로 떠오를 때 이를 수거하면 간단히 해결될 것을 괜한 고생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 함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선박들에게 주의경보가 통보 되고나서 얼마 후 발사된 어뢰 하나가 상어처럼 물살을 가르며 해빙으로 향했다. 주변을 뒤흔드는 폭발과 함께 해빙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조각들이 튀어 오르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어뢰에 맞은 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기포만 무성하게 떠올린 다음에는 이내 잠잠해졌다. 다른 나라 선박을 바로 코앞에 두고 그들 무기성능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 함장은 구겨진 자존심과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다시 연속적으로 어뢰발사를 명령했다.

 

그러나 결과는 똑 같았다. 어뢰를 발사한 함정의 수병들은 물론 벌어진 상황을 정확히 알게 된 주변 선박의 사람들 모두 절단기기가 던져주었던 것보다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다만 지금까지의 대치상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을 삼을 만했다. 이 괴물에 대응하고자 한다면 이것의 구성체를 분석하는 일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역시 해빙의 구우일모만큼이라도 손에 쥘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의 합치를 보고 세 나라가 서로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껏 시도했던 방법보다 훨씬 강력한 방법의 동원이 필요함을 깨닫고 각기 본국에 이러한 내용을 타전했다.

 

이와 같은 보고가 있은 지 나흘 만에 한국의 국방부 회의실에 세 나라의 군 수뇌부가 모였다. 우선 난파를 당한 선박들의 모습과 조사팀이 발견한 문제점들이 영상으로 브리핑되었고 일반 빙하와는 전혀 다른 근원 불명이자 정체불명의 해빙을 촬영한 기록도 보고되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시도했던 해빙 해체작업 장면이 스크린 위로 비추어지면서 아직까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멘트로 끝났다. 처음에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지나치게 호들갑떠는 것 아니냐고 여겼던 참석자들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러자 모 장성이 지금까지 시행되었던 것은 어린아이 장난 같은 수준이었다며 소리 높여 비판하면서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개시할 것을 제안했다. 모두들 그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세워나갔다.

 

해빙의 주변을 계속 감시하던 삼국의 함정들에게 삼국 합동 군 수뇌회담에서 결정된 사항이 통보되었다. 대대적인 폭격에 대한 예고였으므로 모든 선박들은 해빙의 주변에서 후퇴하였다. 먼저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국의 장쑤성(江蘇省)에서 일단의 전투폭격기가 이륙하였다. 빙원의 상공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전폭기들은 번갈아가며 해빙의 빙판 이곳저곳에 수백 발의 강력 포탄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결과는 참담하였다. 투하되는 폭탄은 어느 것 하나 재대로 터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해빙은 깨지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흐트러짐만 보였는데 빙수를 만드는 기구에서 나온 자잘하게 분쇄된 얼음알갱이 같은 것들이 분사되듯 계속 터져 올랐고 이들이 떨어지면서 구릉을 형성해 나갔다. 곳곳에 만들어진 구릉들은 이리저리 뭉치면서 빙원의 높이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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