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4. 암울한 미래(계속)
이 와중에서도 기기묘묘한 사업수완을 발휘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빙하기 쉘터’라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이것이야말로 닥쳐오는 빙하기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라면서 선전에 열을 올렸다. 이것은 핵전쟁이 터졌을 때를 대비한 시설을 선전하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강철로 만든 컨테이너 박스에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각종 기기는 물론 식량을 저장해 놓은 것으로 높은 지대의 지하공간에 설치된다고 했다. 이외에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식품들도 등장하였으며 특수 가공한 육류나 생선들도 선을 보였다. 또한 동면생활을 위한 전력공급 장치기구도 쏟아져 나왔는데 소량의 연료로 오랜 동안 전기를 생산해내는 고효율 발전기에서부터 수명이 반영구적인 배터리 등에까지 아주 다양하였다. 급기야는 소형 원자로를 장착한 발전기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한탕주의 업체들로부터 시민들이 입게 될 피해를 차단하는 한편 관련 기술의 개발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먼저 시장에 출시된 제품의 내용을 정밀 조사한 다음 시험검사에 통과된 것만 생산판매를 허용하였고 시민들이 이들 제품을 구매할 때 일정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빙하기 쉘터는 물론 빙하기 대처에 필요한 모든 제품이 해당되었다. 이외에 식품의 증산이나 장기 보존을 위한 특별한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에게는 산업장려금을 보조하여 제품화를 촉진하도록 하였다. 이중 특히 눈에 띠는 것은 물의 양을 거의 1/100로 압축하여 젤 형태화 시키는 기술인데 아직은 불완전하여 실용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해빙이 커져가면서 중국 동해안으로부터 1,000킬로미터 정도 지점까지 다다랐을 때는 가끔 해빙으로부터 출발한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한 해일이 해변을 덮치기 일쑤였다. 아마도 해빙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해저가 갈라지면서 솟구치는 용암으로 인한 것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은 마치 해빙이 사람들을 조롱이나 하듯 바닷물을 뿜어대는 것처럼 여겨졌다.
재난구조의 일단계로서 해안부근의 주민들에 대한 대피조치가 내려졌다. 중국의 상하이시를 포함한 장쑤성 동해안일대, 일본의 규슈 서해안 일대와 오키나와 섬 그리고 마라도를 비롯한 제주도 남쪽 해안 일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빠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일단 육지 내부로 이동한다 해도 과연 저 해빙이 해안에서 멈춘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정부당국에서는 해빙이 바닷물이 없는 육지에서는 활동을 할 수 없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15. 실마리를 찾다.
비밀공작
일본 오사카의 이면 도로에 위치한 3층 건물. 입구에는 ‘야마토 토건’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한 사나이가 급히 건물로 오더니 곧장 삼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들어서면서 창가의 책상위에 두 발을 걸쳐놓고 전화를 받고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깨끗이 비워져 있는 책상 앞에는 부장이라는 명패만 비스듬히 자리하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짧게 깎은 머리에 우락부락한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데다 왼쪽 뺨에는 가늘게 흉터가 나있어 전형적인 주먹임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사내가 들어서자 통화를 끝낸 중년 남자는 책상 앞의 응접탁자로 오면서 그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오서 오게 겐타! 그래 멋진 사업이라도 있는 거야?”
소파에 앉으면서, 뒤따라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켄타라는 사내에게 물었다.
“네, 다름이 아니고 요즘 한창 떠들어대고 있는 해빙인지 뭔지 하는 것에 대한 겁니다.”
그가 들어섰을 때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던 표정이었으나 해빙이라는 말이 나오자 길게 째진 눈이 더욱 가늘어지며 날카로운 눈빛을 발했다. 모리 겐타(森 健太)는 상대방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용기가 솟는지 약간 톤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10대 말에 입문한 그는 야마구치구미 내 여러 방계조직중의 하나에서 중간 조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후리후리한 키에다 그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준수한 용모와 많은 지식을 지닌 켄타는 비록 암흑가에 몸담고 있었지만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에게 종종 도움을 요청하고는 했던 이시카와 준(石川 駿)이라는 사람과 제일 가깝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었다. 어제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함께 한 자리에서의 주제는 바로 해빙이었다. 준은 나지막하지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세세히 얘기했다.
해빙은 계속 커져만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물론 중국이나 한국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 모두에게 파멸은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데 무언가라도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해빙을 처리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해빙을 분석할 필요성이 절실한데 당장 이를 습득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핑계만 무성하다.
그런데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데 아무래도 소행성과 직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한 것 아니냐. 소행성과 같은 뿌리인 파편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소행성이 낙하할 때 한국의 상공에서 파편 몇 개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자신이 목격했다. 그것들은 당연히 한국의 육지 어딘 가에 추락했을 것이다. 이를 찾아 내야한다.
그 운석조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관련 삼 개국 모두가 나서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곰곰 생각해니 일본이 선수를 쳐야만 나중에 해빙의 소유권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정부에 알려보았자 당장 다른 나라에 알려질 것이기 때문에 조용히 이 일을 수행할 필요성이 있다. 방법을 찾다가 켄타가 떠올랐고 그가 속한 조직의 사람들을 동원하면 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운석들이 정확히 한국 어느 곳에 추락했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니야?”
겐타의 말을 듣던 부장은 한편으로는 수긍하면서도 다소 실망스럽다는 듯 말을 끊었다.
“준이 소행성이 떨어지고 있을 때 직접 관찰하고 있었답니다. 그 때는 무심코 지나갔었는데 갑작스럽게 해빙이 나타나고 말썽을 부리자 그때 영상으로 녹화해두었던 것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걸 보니 파편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분명해서 세밀히 분석해 보았는데 한국의 동쪽 산악지대였답니다.”
“정말 그렇게 자신할 수 있다는 거야?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다면 한국에서 벌써 그것을 찾아냈을 수도 있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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