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조사과정에서 남회장이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침착한 성격의 그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꽤나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인터뷰 당일 약간 들 뜬 기분으로 사옥을 방문했다.
비서의 안내로 회장실 내부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은 선입견과 다르게 과히 넓지 않았다.
책상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으로 응접탁자를 가리켰다.
다른 직원이 그 자리에 동석할 수도 있으리라 보았으나
비서가 원하는 차에 대한 주문을 받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방에서 나가도록 별다른 말은 없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소문으로 듣던 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미끈한 외모였다.
단정하게 뒤로 묶어 올린 흑단 같은 까만 머리는 외모와 잘 어울렸다.
특히 가늘고 초승달같이 길게 굽어진 아름다운 눈썹은
그녀의 매력을 있는 대로 내뿜고 있었다.
나이는 그녀와 아무 관계가 없는 듯 젊은 기운과 건강미가 넘쳤다.
가람은 그럴 만 하겠지 했다.
국내외에서 소문난 미인 뺨치는데다가 많은 돈을 들여
정성껏 치장했을 것이니 미모가
한층 돋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어림없을 그런 명품으로 치장하였을 것이니
조그만 왕국의 왕비나 공주에 버금가는 느낌을 주는 것 역시
기이할 것 하나도 없을 터였다.
하나 그녀가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그들과 마주앉을 때 자세히 보니 그의 생각은 아주 빗나갔다.
그녀는 그런 것 없이도 생김생김 자체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도 최대한 예우를 갖춰 인사하면서 편집장이 감탄의 말을 덧붙였다.
“그룹호칭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회장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뵈니 그 의미가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는 것 같네요.”
“호호호, 그래요? 그 말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어요. 에오스에는 이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답니다.
바로 Empire Of Sunrise 이지요.”
그녀의 말투는 외모답게 미려했으며 은은한 치자 꽃향기를 풍기는 듯 했다.
야릇한 표정도 그렸는데 마치 가람을 향한 듯해서 가람은 적지 않게 놀랐다.
“해 뜨는 새벽의 제국이라, 그것도 꽤 멋있네요. 새벽의 여신과도 기막히게 어울리고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잡히자 편집장이 본격적인 대담을 시작하였다.
그룹 발전사와 겸사해서 그에 대한 비화,
무엇보다도 남고문의 개인적 것을 중심으로 해서 말해줄 것을 요청했다.
"시작은… 남편과의 결혼이었지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차분하게 한 마디하고 나서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주 유려한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가람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이지적이라 느꼈다.
‘처녀가 나이든 이혼남과 결혼하니 말들이 많았다.
팔자 고치자고 그런 게 아니냐는 빈정댐이라고나 할까.
누가 뭐래도 신경 안 썼다.
둘이 합심해서 회사를 키워나가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쑤군거림이 쏙 들어갔다.
사람들이란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면 헤헤거리게 마련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성장에 따른 혜택이 돌아가니까.’
마침 정영길이 도마에 오른 김에 편집장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가 벌인 살인사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녀는 한심한 듯 혀를 쯧쯧 차더니 신문기사에 나온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갔다.
내막에 대한 자세한 해명이 뒤따를 것 같지 같아 화제를 돌렸다.
모 연구원에서 알아보니 정사장 사후 사세가 한층 확장되었던데
특별한 요인이 있는지 물었다.
"제가 재주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거지요.“
그녀는 의외로 겸손해 했다. 자신만만하고 남에게 뒤지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들었던 터이라 그녀답지 않게 느껴졌다.
가람은 열심히 녹취하고 참고 할만한 것은 별도로 기록하느라
그녀에게 거의 눈길을 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간간히 느껴지는 그녀의 눈길이 그의 감정을 자극했다.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그에게 관심을 두는 것 같아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미모가 묘하게 만들어낸 망상이라 치부하고
더욱 자신의 임무에만 몰두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알짜배기 공기업을 M&A했던 게
오늘날의 우리가 되게 해준 초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현 연구소도 대박이었지요.
연이 닿아선지 운이 좋았던 건지 어째든 인수에 성공했어요.
각종 시험설비가 빵빵했고 우수한 연구 인력이 풍부하다는 강점 탓에
인수전이 말할 수 없이 치열했었습니다.
그걸 인수하고 나니까 갖은 흑색 풍문이 난무하데요."
가람은 이 말의 속뜻을 다른 각도로 반추해보고 색다르게 해석해보았다.
즉 그런 치열한 인수로비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관능미가 으뜸효자 아니었겠느냐.
그녀가 지금도 시들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점으로 볼 때
더 젊었을 적에는 더할 나위없지 않았겠는가.
누구라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녀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가람의 의중이 어떠하든 아랑곳없이 말은 계속되었다.
당초 회사설립 취지인 종묘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했었는데
파이토엔지니어링으로 명칭을 바꾼 연구소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했다.
“그런 중요한 일은 경영자의 자세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됩니다.
회장님의 경영철학에 대해 한 말씀해주시지요.”
남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편집장이 부탁을 했다.
“경영자는 실무자가 할 일까지 해가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야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즉 경영자는 자신이 해야 할 할 일을 명확히 알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녀는 거침없이 답변했다.
기술적인 문제나 영업 등은 담당자에게 맡겨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이런 마인드가 직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여 그룹성장의 동력되었다고
인터뷰 후에 만난 기획실장이 증언했다.
경영학을 전공하였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녀의 안목이 매우 뛰어나고 훌륭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그녀가 직접 경영을 하면서 체득한 것이리라.
그녀는 공기업인수와 같은 중요한 일에는 직접 나섰는데
그녀의 방법이 특이했다.
인수관련 핵심인물을 알아 오도록 한 다음 직접 그 사람을 만났다.
모두들 그녀가 그를 설득하거나 비자금을 건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당사자도 의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독으로 그를 특급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나
쉽게 접하지 못할 고급술을 대접하면서도
업무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긴장을 풀게 하고
그녀와의 대화를 즐기게끔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무기인 외모와 야릇한 체향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상으로 발전했는지는 일 수 없는 노릇이다.
나아가 그녀는 집으로 초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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