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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로즈파피(Rosepoppy) (제 4회)

by 허슬똑띠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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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도가 제가람을 만나고 돌아오자

이든 경위와 오장석 경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동안의 수사상황을 보고하기위해서이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실시한 수색작업에서

저격 장소에 대한 단서를 전혀 잡지 못했다.

이후 마고도는 두 사람에게 보다 세밀한 재조사를 지시했었다.

그들은 사옥 현관 앞쪽에 표시해둔 남회장의 피격 위치로부터

저격수가 위치했었을만한 곳을 가늠해보았다.

그룹사옥 현관을 바라볼 수 있는 빌딩을 차례차례 짚어보다가

아주 적절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수색 당시 당연히 조사했었을 것이나

꼼꼼하게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확인해본 결과 공사 막바지에 있는 신축건물이었는데

공시업체가 부도가 나서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채

장기간 방치되어있다고 했다.

에오스 사옥현관을 약간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 위치였고

거리는 4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것으로 관측되었다.

이 경위가 망원경으로 총이 발사된 높이의 지점을 추측해본 뒤

곧장 그 건물로 갔다.

 

건물주변에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건축자재들이 일부 남아있었다.

그곳에서 에오스사옥을 내려다보며 적당한 저격지점을 찾아보았다.

창틀이 비교적 낮아서 무릎을 꿇고 앉아 조준하면서도

최대한 몸을 가릴 수 있는 최적의 위치로 판단된 곳을 발견했다.

하지만 바닥에는 전에 수사관들이 다녀갔던 발자국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실망스러웠지만 나름대로 세밀하게 조사해 보았다.

이전의 조사과정에서도 보고된 것과 동일한 결과뿐이었다.

탄피 비슷한 것은커녕 범인이 남겼을 만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범행 실행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난장판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잘못 짚은 것 같아 실망스럽게 내려왔다.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오다 이 경위가

일층 계단 옆 공간에 적재되어있는 건축자재를 힐끔 보았다.

그것들 사이에 공사용 섬유펠트의 끝단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이 경위는 오 경사와 함께 그것을 끄집어내어 살펴보았다.

뒷면에는 저격수가 위치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층에

미세하게 깔려있던 먼지가루가 보일 듯 말 듯 묻어있었다.

그 가루를 조금 떼어 해당 층으로 올라가 비교해보니 동일했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펠트를 부근에 있던 비닐로 잘 싸맨 다음 차에 싣고 국과수로 가서

지문확인과 기타 참고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 감식 의뢰했다.

 

이 경위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다음 후속 사항에 대한 내용을 덧붙였다.

“어제 결과가 나왔는데 지문은 물론 단서가 될 만한 것은

티끌만한 것도 없다고 합니다.

저격수가 그 펠트를 깔고 앉았을 것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입었던 옷의 실오라기 같은 것 정도 묻어있을 가능성을 기대했었는데

정말 용의주도한 놈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남회장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작자가

전문킬러를 고용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우리나라에선 그럴 가능은 희박하겠지만 말이죠.”

“수고들 했어요. 범인이라면 그 정도의 사전 사후조치는

마땅히 했을 거라고 봅니다.

추정되는 범행 현장조사에서도 단서를 잡지 못했으니

더 판다고 해서 나올 것은 없으리라 판단되는데...

두 사람 의견은 어떤가요?”

보고가 끝나자 마고도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들 의견도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주력하도록 합니다.

먼저 정영길 전부인의 동향, 그리고 에오스그룹과 거래했거나

현재 거래 중인 기업 중에서 그룹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거나

거래가 중단된 기업들과 기업주, 특히 공기업 인수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업체와 그들이 탈락하게 된 배경 등 입니다.

인수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밝혀지지 않은 불법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하고

이것으로 인한 원한관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나는 남회장의 신변과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를 해볼 예정입니다.”

마고도는 제기자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녀에 대한

세밀한 탐문조사가 단서를 찾는데 필요하다고 보았었다.

특히 제기자가 두 번 째 그녀를 만났을 때 그가 느꼈던 감정과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는 말의 의미가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제가람은 마치 독순술을 익힌 것처럼 그녀의 입술을 보고

‘참 묘하네. 어쩜 그리도 그 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까?’라고

하는 혼잣말을 알아낸 것이다.

그녀가 말한 그 분이라고 표현한 사람의 정체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제가람이 ‘그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한 점도 중

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녀가 풍겼다는 체취에 대해서다.

편집장과 함께 인터뷰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가람이 그녀와 단둘이 했을 때는 아찔할 정도를 넘어

사람의 정신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강열한 힘을 가진

체취를 뿜어댔다고 했다.

이는 그녀의 선택적 의지에 따라

체취가 발현됨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고도는 우선 제가람이 조사했었던 남회장의

전 남편인 정영길에 대한 조사부터 착수했다.

정영길은 그보다 앞서 사망한 동업자인 제갈명사장과 함께

‘신명자원’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혼을 불사하면서까지 회사의 여직원과 결혼한 것은

흔하지 않은 유별난 사건인 것이다.

게다가 회사가 순탄대로를 달리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살인을 저질렀고

결국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사안이 있었다.

그저 개인적인 방어적 하소연이라고 넘겨짚기에는

다소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체포되는 순간부터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기까지

일관되게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이고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고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규명하기도 불가능했다.

또한 그의 죽음이 남회장과 연계시킬 만한 고리도 없었다.

다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초적 근원이 있을지 파보기로 했다.

그의 예전 가족관계를 확인해보니 전부인 외에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미고도는 아들인 정현수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제가람과 비슷한 또래였는데 현재 한 중견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별 거부감 없이 마고도의 요청에 응했다.

 

“유감스러운 말이지만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힘들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별달리 느끼지 않았어요.

그저 아버지가 멀리 가 계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혼자 고생하셨지요.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제 양육비는 지원했다고 하더라고요.

전 아버지를 그렇게 탓하지 않습니다.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아주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살인사건 역시 아버님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부친이 모종의 덫에 걸린 것이라면 누가 무엇 때문에

살인혐의를 씌웠을까요?“

마고도가 묻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 남민희라는 여자가 꾸민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마고도가 묻기도 전에 뒤이어 그런 추측을 하게 된 연유에 대해 설명했다.

“기억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동업자인 사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난 뒤

집에 혼자 남았다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였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얘기가 잘 통했는데 얼마 뒤에 사라졌어요.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혹시 어디로 갔는지 얘기 들은 것은 없었나요?”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외삼촌이라는 사람에게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줄로만 알았지요.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달랐어요.

그 애한테는 삼촌이라든가 친척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갑자기 외삼촌이라는 작자가 등장했다는 것이죠.

어머니는 남민희라는 고년이 교사해서 한 짓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곤 했어요.”

 

“그럼 부친 건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겠네요?”

“네... 아버지가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과정에서도

어머니는 남민희가 악녀라고 몇 번이고 말하고는 했습니다.

얼마든지 경찰에 손을 써서 철저한 수사를 유도할 수 있었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또한 재판과정에서도 고급 변호사를 통원하여

형량을 최대한 낮출 수 있었음에도 전혀 노력을 쏟지 않았다고

흥분해서 욕을 해대곤 했지요.” 

마고도는 그가 어릴 적에 들었던 제갈사장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정사장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는

인지능력이 갖추어진 나이 때였으므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모친이 남회장에게 원한을 품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

래서 근황을 물었다.

“어머니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모든 것을 잊으셨어요.

이혼 후 시작했던 장사에 전념하고 계시죠.”

그는 덤덤히 답했다. 그런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의 모친이

남민희에게 끝없는 원망을 품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남회장이 술수를 부려 제갈사장의 아이를 있지도 않은 친척에게

보낸 것이 사실인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현수를 보내고 나서 마고도는 이 경위에게 연락했다.

정사장 전 부인에 대해 그 사이 조사한 내용을 간단히 보고받았는데

정현수의 이야기와 일치했다.

그녀에게서 제갈사장의 아들을 데려간 친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있는지 파악해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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