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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로즈파피(Rosepoppy) (제 7회)

by 허슬똑띠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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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협죽도 로즈베이와 양귀비

 

 

 

 

두 사람은 마고도에게 조용진조사에서 제가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방문이 있었음을 보고했다.

마고도는 가람에게 실제 조용진을 방문했었는지 여부와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로 오도록 했다.

“조용진이라는 사람 알고 있지요?”

마고도는 가람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주시하면서 물었다.

가람은 질문을 받았을 때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그는 이제 저세상사람인데도 찾아내셨네요.

한 달 전쯤인가 남회장과 관련한 정보를 캐보려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찾아간 날 아무런 소득이 없어 다음 날 다시 갔더니

식중독사했다고 하더라고요.

찜찜했지만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겨

그 사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가람은 조용진과 대면 당시를 떠올리고 있었다.

 

조용진이라는 존재를 알아내고는 그를 어떻게 설득해야

적확한 정보를 캘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재산을 되찾으려는 사람으로부터 사건을 수임 받은

변호사를 사칭하기로 했다.

이번 소송 건에 제대로 도움을 주면 거금을 쥘 수 있다고

꼬드겨보기로 했다.

겨우 겨우 소재지를 파악한 뒤 그의 집을 방문했다.

산동네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을 찾아냈다.

듬성듬성 구멍이 나있는 나무대문을 두드리자

삐거덕거리며 방문이 열렸다.

새치도 많고 나이도 꽤나 들어 보이는 꾀죄죄한 사내가

덥수룩한 머리를 내밀었다.

‘조용진씨 맞으시죠?’ 하자 누구냐고 되받았다.

재산반환소송 건을 맡은 변호사인데 알아볼 것이 있어

에오스팜의 전임 부회장 소개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갸웃하더니 잘못 찾아 왔다며 방문을 닫아버렸다.

 

냉큼 구멍가게로 달려가서 소주와 안주 등을 사들고 되돌아왔다.

대문 틈바구니로 손을 집어넣어 빗장을 풀고 들어가 방문 앞에 섰다.

“소주 좀 사왔습니다. 마시면서 얘기 좀 나누시죠.

요번 일이 잘만 되면 선생님에게도 한 몫 돌아갈 수 있어요.”

꾀어봤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난감했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봉투를 흔들어 병을 부딪치면서 현혹했다.

그의 몰골은 술에 찌들어 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약점을 건드리면 계속 참고 있기 힘들 것이리라.

그게 적중했다.

“허! 거 참 되게 귀찮은 사람 이고만. 낮잠도 못 자게 웬 난리야, 난리긴.”

투덜대면서도 마침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만가지 역겨운 잡냄새가 진동했다.

개의치 않고 태연히 입구에 덜퍼덕 주저앉아

봉투에서 소주와 안주를 내어놓았다.

작은 옷장 하나, 바닥에 깔린 요와 이불이 전 가산이었다.

구석에는 씻지도 않은 식기와 수저 나부랭이들이 아무렇게 널려 있었다.

가람은 소주병 마개를 따고 술을 잔에다 그득 부어 그에게 권했다.

그가 잔을 받자 다른 분들에게 듣기로는 큰 음식점을 운영한다고

들었었는데 웬일이냐며 거볍게 떠보았다.

그는 술 한 잔을 단번에 들이키고 나서

손으로 입을 쓰윽 훔치더니 씰룩댔다.

음식점이 잘 되어 돈이 쌓이니 주색잡기로 흥청망청하다가

고스란히 탕진했다.

그 뒤 집사람에게 이혼 당하여 빈털터리로

홀로 살고 있는 거 뻔히 보면서 괜한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가람은 ‘그런 줄 미처 몰랐네요.’ 라며 공손히 대꾸했다.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그는 맨 손으로 안주를 한 움큼 쥐어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웬일로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가람은 정영길씨를 아느냐고 되물었다.

저승에 가있는 사람은 왜 들 먹이냐고 퇴박을 주었다.

가람은 그 사람이 제갈명사장의 재산을 넘겨받기 위해

사기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갈명씨 먼 친척이 그 재산을 반환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꾸며댔다.

말미에 당신이 적당한 역할을 해주면 적잖은 돈을 벌 수 있는

호재임을 강조했다. 그는 구미가 당기는 듯 했다.

뭐를 도와주면 되겠는지 물었다가

다음 말에 움칠하더니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제갈사장이 사망한 것은 정영길이 사고를 유도해서 그랬다고

증언만 해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게 화근이었던 같았다.

가람은 그 낌새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전 어벌쩡했던 태도는 그에게 제갈명사장의 사고와 관련하여

꺼림칙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었다.

헌데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낸 것은 아닌가?

다소 후회는 됐지만 끈덕지게 설득해나갔다.

게다가 한술 더 떠 남민희까지 끌어들였다.

정사장 부인이었던 남민희가 정영길을 종용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는 방구들이 꺼지라 한숨을 내리 쉬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 여잔 말도 못할 독종이야. 그래서 그만큼 승승장구하게 된 게지.”

“그래요? 지독스런 독종이라 한다면 그런 일을 벌일 만하지 않을까요?”

가람이 엇비슷하게 맞장구를 쳤으나 그는 대꾸 없이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큰 보험회사에서 근무했었다고 해서 새파란 게 대리로 들어와

시끄러웠는데 말이야, 반년도 안 돼 과장으로 승진하더라고.

하긴 머리도 좋았고 일도 잘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기는 했지.

헌데 그런 것 다 제쳐두고 빽이 든든하다는 것이 정평이었어.”

“빽이라니요?”

“나중에 그 여자가 남편으로 데리고 살았던 정영길이라는 멍충이었지.”

“멍충이라니요?”

“내가 보건 데 정영길이는 그 여자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는 좀생이에 불과했어. 그러니 멍충이 아니겠냐고?”

“네 그랬군요. 남자를 갖고 노는 여자라면 남민희가 웬만한 일은 다 처리할 수 있었겠네요?”

가람은 그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회해서 물어보았다. 망설이는듯해서 마른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뜸 들이는가 싶더니 빗물에 덕지덕지 얼룩진 천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답답하지만 기다려보았다.

재촉하려다 노파심이 그를 말렸다.

잘못하면 철저히 입을 닫치게 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물러서기로 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언행은 그와 남민희와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여유를 갖고 끈질기게 설복시키다보면 변심하여

내막을 털어놓을 수 있으리라.

자작으로 술을 들이켜고 있는 그에게 모래 올 테니

그때까지 제의 수락여부를 결심하라고 하면서 그 집을 나섰다.

 

밖은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뿌연 빛 백열전구의 보안 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는 골목 언덕길을 내려와

도로변에 이르렀을 즈음이었다.

저 멀리서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가 쇼핑봉투를 들고

그 골목길로 향해오는 것이 보였다.

가벼운 등산복차림에 길쭉한 차양이 달린 모자를 푹 눌러썼다.

짙은 빛이 감도는 큰 안경을 쓰고 있는데다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어 가냘픈 톤의 어둠에서도

인상이 또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관심을 거두고 그가 온 길 반대방향으로 가려는데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갸우뚱하며 돌아가서 다름없이 고개를 숙인 채 털레털레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가람이란 존재는 관심 밖인 듯 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도 아닌데

괜한 짓을 했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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