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수사회의에서 이 경위와 오 경사는
마고도가 지시한 내용에 대해 보고했다.
정사장의 전 부인이 알기로 제갈사장부부는 3대 독자, 외동딸이었고
친인척들도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국내에는 그의 집안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작은 아들과 함께 사망하자
남편이 큰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이름은 일량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아이가 사라졌다.
회사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와서 와서
자기가 맡아 키우겠다고 하며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 때 그녀는 남편이 무슨 짓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집에 왔을 때 따졌다고 한다.
남편은 재산도 일부 나눠주었으니 더 이상 따지지 말라며 화를 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남편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미 회사에서는 남모라는 여직원과 남편사이에
염문이 자자하다는 말을 직원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남모라는 여직원이 사주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남편은 그런 짓을 할 정도의 악질은 아니었다.
이 말대로라면 남회장이 사주했건 정사장이 직접 했던지 간에
제갈사장의 맏아들은 외삼촌이라는 사람에게 입양되어 살아 왔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외삼촌이라는 사람의 존재여부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남회장 살인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으므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정영길 건에서는 특별히 건질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은 에오스그룹과 관련된 기업과 인수합병에 참여했던
기업들의 임직원을 조사한 결과도 보고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결같이 남회장의 능력과 미모에 대해 칭찬 일색이군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겨보려 했지만 그분의 뛰어난 지략은
당해낼 재주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남회장의 수법에 치를 떨었다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원한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자 그럼 방향을 바꿔봅시다.
나는 남회장의 다른 주변인물을 조사할 테니...”
그러면서 마고도는 이 경위와 오 경사에게 남회장과 관련된 자료는
모두 수집하도록 지시했다.
두 사람은 에오스그룹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였다.
그룹 홈페이지에서 주요 내용을 확인한 후 남민희, 신명자원, 제갈명
그리고 정영길로 검색하기로 했다.
먼저 에오스그룹을 검색한 결과이다.
신명자원이라는 회사를 모체로 한 그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반적인 그룹 현황에서 주요 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신명자원의 설립자인 제갈명과 동업자였던 정영길에 대한 소개는
아무데도 없다. 이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남민희회장에 대한 것 역시 이미 알고 있는 것 외에 유의미한 내용은 없다.
남민희가 그룹형성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장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녀에 대한 비중이 상식이하로 적다.
그녀의 종적을 별반 남기려 하지 않은 듯 하다.
그룹 기획실 직원으로부터 은밀히 들은 바로는
그녀는 대외활동도 워낙 기밀하게 수행하였고 이의 내막을 아는 사람은
사장과 비서실장을 포함한 극히 일부 임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러 베일에 가려놓은 것 같아 보인다.
이번에는 사건사고 데이터에서 ‘남민희’로 검색했다.
검출된 항목에서 그녀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거나
에오스와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았다. 정영길 건은 거기에서 묻어 나왔다.
첫 번째로 튀어나온 것은 그녀 아버지인 남지욱 화재사망 건이었다.
집에 화재가 났었으나 그만 빼고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녀 성명이 걸려나온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생명보험과 집 화재보험이 가입되어 있었는데
터무니없게도 수혜자가 남민희로 되어 있었다.
보험금은 당시로서도 무척이나 큰 금액이었다.
보험 가입 건은 그녀가 보험회사에 근무한다는 것을 참작한다면
그럴만하다 여길 수 있다.
헌데 남편이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도, 수혜자가 딸이었다는 것도
그녀 어머니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개운하지 않다.
의붓아버지에 대한 사망사건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 있기는 하다.
화재감식 후 남지욱이 술에 취해 잠든 사이 피우던 담뱃불에 의한 것으로
결말이 나서 별 문제없이 종결되었으니
이도 더 이상 다툼의 여지는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연계된 건은 선계윤이라는 레지던트 실종사건이다.
그녀는 그와 사귀고 있었던 탓으로 제일의 용의자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선계윤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휴가를 내고 집에서만 있었던 것으로
알리바이가 입증되어 이 역시 무혐의로 끝났다.
선계윤은 시신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세 번째 건은 어째 유난하다고 여겨지는 살인사건이다.
경주시소재의 호텔에서 발생했다. 살해범은 정영길이었는데
남민희 이름이 뜨게 된 것은 그의 부인이었던 까닭이다.
그가 지방출장을 가면서 애인을 데려갔었던 것이 화근일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울산공장을 시찰한 후 임원들과의 만찬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신 정회장이 호텔에 와서도 거듭 술을 마시다가
불거진 다툼이 원인이었다.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라
임신 중인 아이가 남의 씨일 수도 있다면서 추궁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여자가 그의 추궁에 반발하자 격노하여 마시던 술병으로
그녀의 머리를 쳐서 즉사케 했다.
본인은 아침에 깨어보니 그런 상황이었을 뿐이라고 극구 부인했으나
이를 뒤집을만한 물증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경찰은 범행현장을 조사한 결과 그가 만취하여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것으로 종결지었다.
이례적으로 신속히 진행된 재판에서도 끈질기게 무죄를 주장했으나
최종심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자 옥중에서 자진하여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와 같은 일들은 그녀가 치부로 여길 수 있다.
그 중 특히 밀접하게 연루된 선계윤과 정영길 건은
그녀가 단단히 단속을 하게 된 충분한 빌미이지 않겠는가.
아리송한 부분은 있었다.
첫째는 보험사 직원이었던 남민희가 어떤 경로로
정영길의 부인이 되었는가, 둘째는 정영길이 실제로
사소한 다툼 끝에 살인을 저질렀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게 다 아닐 수 있는 사건이 또 하나 있다.
그녀가 관계되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중대하다면 아주 중대한 건이다.
제갈명으로 검색하여 나온 사고 건인데
교통사고로 제갈사장부부가 사망했다. 이 사고가 발생한 것이
그녀가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이다.
이처럼 은밀한 면이 많은 여자라면
이 교통사고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을까?
단순한 사고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와 연계된 사건 사고가 여러 건이다 보니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이 사고는 그녀가 신명자원으로 입사하고 난 뒤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입사경위는 물론
정영길과 결혼하게 된 경위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의 조사를 위해서는 그녀의 안테나에 잡히지 않게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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