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를 알아내 찾아가게 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마고도의 질문에 가람은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남민희 회장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보니
제가 직접 나서서라도 찾아보자고 한 거죠.
그저 취재목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굳이 덧붙인다면 남회장을 마지막으로 대면했던
사람으로서의 예의에서 이고요.”
“기자의 근성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용진을 알아냈나요?”
“아무래도 회사사람들에게 확인해보면
작은 소스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룹의 근간이 되었던 신명자원,
지금은 에오스팜이라는 사명으로 바뀌었지만,
그곳에서 초창기부터 오랜 동안 근무했던 사람들을 찾았죠.
대부분 퇴직한지 오래되어 소재를 알 수 없었는데
마침 최근에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가람은 그 당시를 회상했다.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에오스그룹 기사를 쓴 제가람 기자입니까?”
“네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전혀 생소한 목소리에 경계심을 품고 물었다.
“난 에오스팜을 퇴직하고 나서 수목원을 운영하는 박원국이라고 합니다.
에오스그룹의 창립기념 특집기사를 보다가 기자의 이름이
제가람이란 것이 낯이 익어서 확인차 전화한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으로부터 남민희와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자 상대방도 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만날 약속을 했다.
카페에서 박원국이라는 사람과 대면했지만
가람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잠시 가람을 뚜렷이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을 똑 닮은 걸 보니 제가람군이 맞는 거 같네 그려!”
“이버님과요?”
“아주 어릴 때라 아버님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군.
그 당시에도 자네 는 아버님과 판박이로 닳았다고 했지.”
“네에 그렇군요. 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런데 자네 이렇게 성장한 걸 보니 외삼촌댁에서 잘 지냈나 보네그려.”
이 말은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아원에 내팽개쳐졌던 날의 광경이 신기루처럼 펼쳐졌다.
엄마 아빠가 멀리 떠나가셔서 당분간 친구 분 댁에서
지내야 한다고 해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찾아오더니
이제부터 자기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집에 삼촌이라든가 이모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찾아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가기 싫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아빠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말대로 따르라고 채근해서 짐을 꾸렸다.
그 사람이 재촉하는 대로 차에 타고 얼빠진 채 실려 갔는데
최종 도착지는 가정집이 아니었다.
생판 모르는 고아원이라는 데였다.
겁이 덜컥 나서 울며불며 버텨보았으나
구원의 손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 끌려들어가서 보니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군대의 막사와 같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던 아이들이 누군가하고 쳐다보았던 것 같다.
고아원 사람들이 끌고 다니며 이런저런 말을 해주었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하는 어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하소연해보았다.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호소를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을뿐더러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곤혹스러움에
그러는 것쯤으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깨달음 뒤에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혈혈단신이라는 두려움만 넘실대었다.
그것은 지독한 괴로움과 외로움을 수반했었다.
시간이 흐르자 체념으로 변하면서
그곳에서의 일상에 적응하도록 해주었었다.
짜증스럽게 일그러져 보이긴 했으나
이곳이 내 운명이라면 순응하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너무나도 당찬 기개였다.
낮도깨비 같은 사람에 의해 창졸간에 삶의 터전이 뒤바뀌면서
어쩌면 알게 모르게 스스로 베이비시터가 되었는지 모른다.
“네... 외삼촌 덕분에 공부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기자까지 될 수 있었지요.”
가람은 박원국씨가 사실을 전혀 모르는데 구태여 아니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자네 부모님이 그렇게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었을 텐데...”
“저는 그저 부모님이 안 돌아오신다는 말만 들어서
그런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그 때 상황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시나요?”
박원국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말해주었다.
부모님이 아버지 친구의 부친상 조문을 다녀오던 길이었다는 것.
길이 다소 험한데다 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굉장히 열정적이고 머리가 비상했는데
매우 안타깝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 등.
대부분은 남민희회장을 조사하면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던 내용과
엇비슷한지라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희망회로를 돌렸다.
“뜻밖에 아버님 지인을 만나 몰랐던 기억을 떠올려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부모님 교통사고와 관련해서
떠도는 소문은 없었나요. 직원들의 뒷담화라도요.”
가람의 표정에서 반가움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던지라
고심하는 것 같던 그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운수반에 조용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갈사장 사망 직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주사를 부렸고
항상 돈에 쪼들려 지내면서 직원들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여서
모두들 싫어했다.
그러던 그가 거액의 돈이 드는 큰 음식점을 차렸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가 로또에 맞았다는 소문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가 제갈사장교통사고와 관련이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박원국으로부터 주요한 정보를 들은 가람은 취재로 해서
안면이 있는 비서실 사람을 통해 조용진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전화로 남회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회사에서 근무했었다고는 하나 강산이 바뀌어도 한참이나 되었는데
세상물정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척 곤궁하기 짝이 없이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다만 그가 남긴 말이 단순히 절박감의 표시만은 아닌 듯해서
남사장을 통해 회장에게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보고했다고 한다.
무슨 말이었는가 묻자 그는 웃으면서 남회장이 전화를 안 받으면
자기도 방법이 있다고 전하라는 뜻 모를 소리였다고 했다.
그는 이 말을 회사로 찾아와 깽판을 부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자세한 정보를 입수한 가람은 그의 소재를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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