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살길이 생겼구나 싶어 뭐든 말만하라면서 재촉했다.
가람은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해가면서 연습했던 각본대로 둘러댔다.
“마약 사범 거물을 뒤밟다보니 30여 년 전 광주시에서 일어났었던
교통사고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소.
그것은 일상적인 사고가 아니고, 보스를 살해하기 위해
사고로 위장했던 거였소.
중요한 것은 옛날 당신차가 다른 데도 아니고
그 사고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요.
게다가 차에다 마약까지 소지하고 다니는 것을 보니
당신이 그 일을 주도했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드러난 셈이란 말이오.”
그러자 공봉춘은 펄쩍 뛰었다.
“난 마약의 마자도 모르고 당시 그곳에 간 적도 없어요, 절대로!“
“허어! 이러지 맙시다. 솔직히 털어놓기만 하면
눈 감아 줄 수 있다고 했잖아요!”
가람은 강온을 조절하며 그를 달랬다.
그러자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그 때 고년이 수상하다 했더니만 나를 물 먹이려고
작정했었나 보구나, 이년이…“
“이거 참… 비 맞은 중놈처럼 쭝얼거리지 말고 다 털어놔 보란 말이요!”
가람이 언성을 높이자 화들짝 놀랐다가 옛날을 더듬어 올라갔다.
“언젠가 딱 한 번 조카가 차를 빌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 날이 아닌가 싶네요. 그년이 그곳에 갔었으니 내차가 거기에 있었겠지요?”
“조카 이름이 뭔데요?”
“남민희라고, 거 있잖아요. 에오슨지 뭔지 하는 회사에
떡하니 회장으로 앉아있는 그 여자 말입니다.”
“남? 뭐라고요?”
드디어 남민희라는 이름이 튀어나왔으나 가람은 짐짓 딴청을 부렸다.
“그럼 남민희라는 조카가 그런 일을 벌였단 겁니까?”남민희라는 이름이 자꾸 거론되자 그는 쌍심지를 돋우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민희 고년은 정말 못돼 먹은 계집년입니다.
지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면서도 지 일만 딱 챙기고는
남보다도 더 모른 척했어요.
그년이 어릴 적부터 그러긴 했는데, 글쎄 요따위 일도 있었습니다.
집에 화재가 나서 의붓아버지가 타죽고 난 뒤에 말입니다,
아 글쎄 나중에 알고 보니 눈깔 뒤집히게
무지막지한 보험금을 타먹었었더라고요.
분명 요망스런 꽁수를 썼겠지요?
후후 참 웃기는 일이죠?
의붓아버지 재산이 졸지에 그년에게 홀라당 가버리고 말았으니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입니까?”
그는 눈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다른 곳으로 훌쩍 이사 가더라고요.
그건 좋은 데 새 집에 이사 가고 나서 누님이 느닷없이
병으로 쓰러지더니 몇 개월 버티지 못하더라고요.
그 때도 고년은 제 어미 병간호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았더랬습니다.
저게 자식인가 싶어 한 소리 했지만 귓구멍이 막혔는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디다.
화가 치밀어 올랐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이 말에서 그녀의 또 다른 성품을 알아낸 셈이었으나
늘어지는 말이 가람의 조급증을 증폭시켰다.
빨리 나머지 것들을 꺼내도록 재촉했다.
“참 못되게 굴었군요. 다시 핵심으로 돌아갑시다.”
“맞아요. 바로 그날이었을 겁니다.
차를 빌려갔던 고년이 난데없이 2살짜리 어린 애를 데려왔었으니
여지없을 겁니다.
이년이 그것도 모자라 맡아달라는 거지 뭡니까.
돈은 주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는 어처구니없었다는 듯 또 인상을 썼다.
“고년은 워낙 반반해서 사내자식들이 졸졸 따라다녔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놈팡이하고 일을 저지르고 애까지 낳았을 거라고요.
차를 빌려갔던 건 어디서 남모르게 낳은 아이를 키우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 가지고
데려오려 그랬던 거겠지 하고 말았지요.
그땐 이런 요상한 일 때문이란 걸 어이 알았겠습니까.
어쨌거나 애를 데려온 게 진짜 그거하고 상관이 있는 건가요?”
그는 이 말을 해놓고 아차 하는 듯 했다.
공연히 잘못했다가는 조카에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 모양이었다.
그녀의 성격이나 사회적 지위로 봐서 그럴 만도 했다.
가람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기막힌 연극을 통하여 당일 남민희가 외삼촌 차를 빌려서
그곳에 갔었던 사실과 덤으로 그녀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었다는 것까지 밝혀냈다.
공봉춘은 남민희가 직접 사고 장소에 갔었던 것은
생판 모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잇따른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수시로 찾아와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는 했는데
차가운 성격답지 않게 매우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나자 이제부터는 손수 키우겠다면서
그 아이를 데려갔는데 아마도 그녀에게 입적시켰을 것이라고 했다.
진상은 거의 다 밝혀진 셈이다.
가람은 잘못 짚은 것 같은데 라고 부러 난감해 하는 척하다가
죄를 덮어준다면서 그를 보냈다.
마고도는 가람이 자신들보다 한 수 위의 방법을 쓴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엔 수사관 흉내를 냈던데...”
“남정균사장신상에 관련된 건이라 기자라고 하면
있는 그대로 말을 하지 않을 거라 판단해서 그랬습니다.”
가람은 죄송하다며 변명했다.
이 경위와 오 경사가 조사한 내용가 대부분 일치했으나
이번에는 가람으로부터 유의미한 정보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공봉춘을 찾아냈는가 물었더니
역시 취재원 보호명목으로 공봉춘을 알려 준 사람신상은 비밀로 했다.
“그 아이가 제갈사장의 교통사고 당시 찾지 못했던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미고도의 날카로운 질문에 가람은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제가 남회장 사건을 취재하다가 남회장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나름 추리해보았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흥미로울 것 같아 마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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