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으로 검색해서 나온 사건들 중 맨 처음 건은
의붓아버지의 화재로 인한 사망이었다.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해 보인다.
의붓아버지의 생명보험 가입, 집을 화재 보험에 가입한 것까지는
그녀가 보험사에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보험금의 수혜자가 어머니도 아닌 그녀였던 점이다.
그러나 경찰수사결과 화재사고에 별 다른 특이점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하므로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다음 그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선계윤실종사건이다.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었어도 그녀는 나름 큰돈을 모아두었다.
보험회사에 입사한 뒤 주식에 눈을 뜬 이후 의붓아버지 사망과
집의 화재로 챙긴 보험금으로 과감히 투자했다.
영리하기도 한데다가 투자 감각이 남달랐고 운도 기막히게 따라주어
단 기간에 어지간히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곧이어 부동산으로 갈아타고 난 뒤에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으로 가만히 있어도 자산은 끊이지 않고 불어갔다.
미래를 위한 또 다른 계획에 들어갔다.
보험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선배로부터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부자들의 신상을 파악했다.
그 정보를 통해 한 갑부를 찍어 그의 신상명세를 확인한 다음
인턴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아들 선계윤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고혹적인 체향으로
그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여 사귀게 되었고
아주 깊은 관계로 발전하였다.
당초 선계윤과 결혼하면 그를 뒷받침해서 개인병원으로부터 출발해
종합병원으로 키워나가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녀의 꿈이 허황된 것만도 아니었으리라.
선계윤의 병원개업에 소요되는 자금은 충분했을 테고
그때껏 발휘했던 투자 수완을 감안한다면 종국에는
그녀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도 남았으리라.
필경 그보다 더한 야심도 지녔을 법했다.
스탕달은 ‘아름답다는 것은 바로 행복의 약속이다’라고 갈파했다.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특출한 미모에다가
금상첨화 격으로 이를 최대한 활용할 줄도 아는 명석한 두뇌까지 지녔으니
그야말로 필요충분조건의 무기를 지닌 셈이었다.
선계윤에게는 그러한 그녀의 꿈이 도리어 독이 되지 않았나 보였다.
제어하기 어려운 그녀가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애시 당초 그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서
즐기는데 이용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임신하자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아이를 떼어내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녀를 멀리했다.
자신만만했던 그녀는 뜻하지 않은 선계윤의 이와 같은 태도에
이글거리는 증오의 불길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끝내 혼자서 아이를 떼어내고 그와 완전히 결별할
모종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이는 깊은 밤 깊은 곳이라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프랑스 처녀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파리로 입성한 한 미군병사와 사랑하다가 임신하였으나
그 미군이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떠나가자
그녀는 증오심에 불타 혼자서 아이를 떼어낸다. 그
후 그녀는 미모를 이용하여 대부호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부호의 개인비행기조종사가 옛날 자신을 버린 미군병사였다.
오비이락일까? 선계윤이 실종된다.
경찰수사를 기반으로 한 어느 신문기사는
그와 사귀고 있었던 남민희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았다고 했다.
갑자기 휴가를 냈었으나 그 기간 한 번도 집에서 외출하지 않았음이
증명됨으로써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이외에 그녀의 집안을 수색해보아도
선계윤과 관련된 물증은 일절 나오지 않아 무혐의로 끝났다.
그 뒤로 수사는 답보를 거듭하다 흐지부지되어
사건은 미궁에 빠진 셈이라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이것만으로 본다면 일견 하자가 없는 듯 했지만
가람은 그녀가 실종사건에서 백퍼센트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보았다.
수사기록에 선계윤에게 살의를 품을 만한 인물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해서였다.
집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가장 쉽게 집으로 그를 유인할 수 있었던
남민희가 여전히 유력한 용의자로 남는다.
더구나 그녀는 혼자 살고 있었다.
지나친 처사일지 모르겠으나 그녀가
선계윤을 살해했다는 기본가설을 세웠다.
그녀로 하여금 선계윤을 살해하도록 만든
확실하고도 유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그녀가 어떤 수법으로 그를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었을 가에 대해 추리해보았다.
일단 누구의 눈에도 띠지 않게 선계윤을 집으로 유인한다.
이어서 독이 든 음식 나부랭이로 간단히 살해한다.
관건은 사체처분이다.
선계윤이 한동안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실종신고가 접수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되기까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꼼짝하지 않고도 그의 자취를
물샐틈없이 지워버리는 모순을 어떻게 구상해냈을까?
가람은 비행기 바퀴에 대한 모순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
비행기 이착륙 시에는 바퀴가 있어야 하는데 공기저항을 줄이려면
바퀴가 없어야 된다.’ 이게 바로 모순이었다.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는데도 시간 좀 걸렸더랬다.
이착륙할 적에 사용하던 바퀴를 비행할 땐
동체 안으로 쏙 집어넣으면 그만이었던 것을 말이디.
그 여자는 교활하기 그지없고 두뇌회전도 기막히게 빠르다고 했으니
이런 역발상으로 엽기적인 방안을 강구해냈을 것이라 추측된다.
국내 추리작가가 쓴 수출살인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외국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본모델을 관찰하던
어느 수사관은 그게 인조모조품이 아님을 느낀다.
한쪽 다리뼈에 거의 드러나지 않은 실금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또 한 가지 확인한 것은 그것이 국내에서 제조되어
수출된 상품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그것을 구입하여 국내로 들어와서
수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멀리 않은 과거에 실종되어 찾지 못한 여인을 주목한다.
결국 그녀와 사귀던 남자의 주변을 추적하다가 그
가 범인임을 밝혀낸다는 줄거리였다.
그녀는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대단합니다. 상당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기자의 추리대로라면 남회장이 범죄피해자이기 전에 범죄자이겠군요.
이 추리가 완벽하다면 남회장을 살해할 의도를 품은
용의자도 추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마고도는 살짝 박수를 치며 가람을 추켜세웠다.
“정영길씨 건은 어떻게 보았나요?
외견 상 그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정황은 희박한 것 같은데...”
마고도는 기대감 섞인 표정으로 가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체 없이 가람은 추리를 이어나갔다.
경찰수사에는 그가 출장을 가면서 데리고 간 애인을 호텔 객실에서
마시던 술병으로 머리를 쳐 즉사케 한 것으로 돼있다.
범행시각은 새벽이었으나 아침에 비서가 전화하자
그 시각 일어난 것처럼 신고했다.
정회장 본인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발뺌했으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완벽한 현행범이었다.
사람이란 치솟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사회적 지위를 망각하고 부지불식간에 상상외의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을 참작한다면 그럴 만 할 수도 있었다.
허지만 살해된 여인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은 주목하지 않는 듯 하다.
정영길과 남민희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고 들었다.
현 남정균 회장은 정영길 사망 후 그녀가 외삼촌에게서
입양했던 아들이니 당시까지는 무자식이었다. 만
에 하나 그 여인이 아이를 낳는다면 남민희는
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지 않을까?
즉, 석녀라는 꼬투리를 잡혀 이혼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다.
그녀가 만만히 물러서지는 않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자칫하면 그녀가 꿈꿔왔던 것이
일시에 엉망으로 틀어지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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