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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17회)

by 허슬똑띠 2022.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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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검거 작전

 

22. 두 번째 실패

샐러리맨들의 퇴근시간을 2~3 시간 남겨둔 오후의 어느 지하철역 입구에는 사람의 통행이 별로 많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출입구에서부터는 약간 오르막길을 이루고 있었다. 지하철 입구 방향으로 유모차를 밀고 내려오던 한 젊은 여인이 반대방향에서 오던 다른 여인과 마주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약간 경사진 내리막길에서 그 여인과 담소하던 유모차의 여인은 뭔가를 찾느라 그녀가 잡고 있던 유모차의 손잡이를 잠시 놓았다.

유모차의 앞바퀴가 길 반대편으로 향해 있었으나 그녀가 손을 놓자 약간 앞으로 움직이면서 차도 방향으로 틀어지더니 그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유모차를 확인한 때에는 막 차도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는데 마침 주변에 길을 가고 있던 여자 몇 명이 비명을 질러대었다. 이 때 달려오는 승용차의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유모차에 거의 부딪치려는 순간 어느새 나타난 키 큰 여인이 그 유모차를 잽싸게 잡아채었다. 그러나 유모차를 바로 잡고 자신은 도로가에 넘어지고 말았다.

승용차의 급정거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주변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유모차를 구하려 몸을 날렸던 여인의 가발이 비스듬하게 벗겨지면서 짧은 머리가 들어났고, 상의도 약간 찢겨지면서 튀어 나온 브래지어로부터 이상스런 것이 삐져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한 듯 쳐다보았지만 그 여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가발을 대충 원위치 시키고 상의와 바지의 먼지를 턴 후 던져 놓았던 검은 색 가방을 집어 들었다. 상당한 외모의 그 여인은 당초 가려던 길의 앞을 보더니 지하철 역 입구로 향해 오던 두 명의 정복 경찰관이 뛰어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가슴부분에서 삐져나온 것을 찢겨진 상의 속에 우겨 넣으며 나왔던 지하철입구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쫓아오던 경찰이 급히 무전연락을 하고 여인을 뒤쫓기 시작했다.

놀래서 계속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면서도 아이 엄마는 그 여인이 급하게 되돌아간 출입구를 연신 바라보았다. 아이 엄마와 얘기하던 그 여인도 아이와 애 엄마를 번갈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 엄마는 이상한 차림의 여인에게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것에 미안해하면서 그녀가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지하철 역내의 승강장에는 대기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승강장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기 위한 기둥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 때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건너편에서도 동시에 안내방송이 나와 엉겨서 무슨 뜻인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철길 양 편에서 전동차가 다가오는 불빛이 보이며 동시에 진입하고 있었다. 순간 막 승강장으로 뛰어 내려온 여인은 멈추지 않고 철길로 그냥 뛰어 들었다. 두 열차에서 모두 경적이 두어 번 크게 울리며 전조등 불빛이 점멸했다. 승강장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경적 소리에 잠겼다. 철길 한편에 안착한 그녀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잽싸게 반대편 철길로 옮기는 찰라 왼편으로 들어 전동차가 플랫홈으로 막 진입하면서 여인의 모습을 가렸다. 그리고 서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건너편으로 진입하는 전동차가 연신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 편의 전동차가 완전히 정지할 무렵 플랫홈 중간 정도에 진입하고 있는 상대편 전동차의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어느 새인가 이미 반대편 플랫홈에 올라가 있었다. 키가 큰 여자의 날렵한 동작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전동차에 올랐다. 전동차에 타자마자 사람들이 반대편 창가로 몰려가서 반대편 전동차에 그녀가 타는 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겹쳐있는 전동차 유리창 사이사이로, 전동차에 탄 여인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경찰 두 명이 숨을 헐떡이며 승강장에 도착했다. 문이 닫히려 하는 순간 억지로 몸을 끼워 넣자 다시 문이 열려 겨우 전동차에 탔다.

그리고 갈라져서 전동차를 수색하려 하자 사람들이 건너편 전동차를 가리켰다. 두 경찰이 허탈해 하면서 휴대폰으로 상황보고를 하는 동안 먼저 정차한 전동차가 달리면서 모두의 모습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건너 편 전동차는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전동차 운전기사가 내려서 승강장 쪽으로 나갔다가 이리 저리 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사고를 친 여인이 보이지 않자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와 사령실과 통화했다. 계속 정차해있던 건너 편 전동차도 서서히 움직였다. 전동차 끝 칸까지 갔던 여인은 다음 전철역의 입구와 화장실 위치를 계산하면서 앞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약간 번잡스러운 객차 안의 사람들이 키가 큰 그녀를 바라보나 그리 신경은 쓰지 않는 듯 했다. 다른 칸으로 가는 도중 외국인 몇 명이 약간 큰소리로 떠들고 있다가 지나치는 그녀를 힐끗 보며 약간의 관심을 보인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전동차가 다음 역에 정차할 때까지 천천히 움직였다.

그 사이에 연락을 받은 사이버 수사대에서 출동명령이 떨어지자 남아있던 대부분의 수사대원이 승합차에 타고 출동했다. 그리고 이미 수사를 위해 나가 있던 대원들에게도 지하철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인근 기동대에서 출동한 경찰버스가 여러 지하철역 부근에 도착하자 경찰들이 내리면서 우르르 지하철역으로 몰려 들어갔다. 각 수사과에서 동원된 사복형사들도 속속 도착한 승합차에서 내려 따라 들어갔다.

이렇게 수사요원들과 전투경찰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 순간, 키 큰 여인이 탄 전동차가 다음 역 플랫홈에 도착했다. 전동차가 정차하자마자 기민하게 내린 그녀가 바로 계단으로 뛰다시피 올라가며 하차한 다른 사람과의 간격을 벌렸다. 그녀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화장실 위치를 찾았다. 급하게 뛰어가던 그녀의 바로 앞쪽으로 화장실 표지가 보이자 주변을 휘둘러보며 정황을 살펴보았다.

일반 승객들 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음을 확인하자 화장실 입구에서 가발을 벗고 머리를 만지며 들락거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남자 화장실로 재빨리 들어갔다. 이와 동시에 무장경찰들과 형사들이 지하철 역사 안으로 속속 들이 닥쳐 배치되고 검문검색이 시작되었다. 얼마 후 남자 화장실에서 갈색의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들고 나왔다. 둥근 테의 안경을 쓰고 흰 수염을 길게 드리운 채 회색 빛 도포를 입었다.

지하철에서 도주한 그 여인이 한번 놓친 적이 있는 범인이 변장한 것임을 확신한 차대장은 일단 지하철 사령실에 와서, 번갈아 가며 지하철 역사 내부의 여러 장소를 보여주고 있는 많은 모니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령실에는 지하철 직원들도 함께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더니 한 쪽에서 직원이 차대장을 불렀다.

"방금 전동차 운전자로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전철역 철길로 한 여자가 갑자기 뛰어내리는 바람에 혼이 났었다고 하는데요, 그 여자는 철길에서 잽싸게 자기 전동차의 승강장으로 올라와서 탔는데 계속 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답니다."

차대장은 모니터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그 얘기를 들으며 물었다.

"얼마나 되었답니까?"

"한 15분 전이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가만……."

그 때 한 모니터에 갈색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개찰구를 빠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차대장은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모니터 감시자에게 뭐라고 외치자, 그 화면이 그대로 정지된다. 정지상태의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차대장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 화면 속의 지하철역사 내에서는 경찰들이 곳곳에서 검문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지나쳐 갔다. 그들도 역시 할아버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지팡이를 가볍게 두들기며 출구 쪽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지하철 역 밖으로 나오자 해가 빌딩들 너머로 거의 잠겨가면서 서쪽하늘을 발그스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왔던 출입구를 힐끗 뒤돌아보다가 퇴근시간이 되어 각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 조금씩 파묻혀 가면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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